CHAPTER 2. 첩첩산중에서 망망대해까지 (춘천-속초)
속초에는 자연석호가 두 개 있다. 영랑호와 청초호다. 그중 영랑동에 위치해 동해바다랑 연결되는 영랑호는 속초의 역사를 대변하는 자연유산으로 호수 너머로 설악산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영랑호는 우리 집 내력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호수다.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한 겨울 이 호숫가에서 미군 부대의 군복과 모포를 언 손으로 빨아가며 자식들을 키웠고, 그렇게 자란 아버지는 영랑초교 1기 신입생이 되었다. 우리 세대에겐 범바위로 대변되는 소풍길이자 혈기왕성한 아이들의 은밀한 욕망이 소문으로 구현되는 상상적 공간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영랑호가 내려다 보이는 낡은 아파트에 살고 계신다.
오래전 영랑호에 리조트가 건설되어 펜션과 산책로가 조성된 이후 속초시민들의 중요한 휴식처가 되어왔다. 그래도 이 호수 자체를 훼손하는 난개발은 지금까지 없었는데 요즘 말이 많은 듯하다. 속초시가 영랑호를 친환경 생태관광지로 개발하겠다며 탐방로, 수변데크, 학습장 등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슬로건은 ‘영랑호에 빠지다’이다.
이 계획이 실행되면 호수 한가운데 길이 700m, 폭 2m의 생태탐방로와 길이 60m, 폭 2.5m의 흉칙한 인도교가 설치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그냥 바라만 봐도 뿌듯한 자연유산을 굳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망가뜨리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간 속초시 개발에서 소외됐다고 주장하는 속초 북측 주민들이 자기들 역시 개발혜택을 보겠다며 자기 집 앞마당에 있는 영랑호를 물고 늘어지는 건, 배고픈 건 참겠지만 배 아픈 건 못 참겠다는 억지 심보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뭐~내가 지금은 속초 주민이 아니지만 고향과도 같은 영랑호가 훼손되지 않고 지금처럼 철새가 도래하고 생태가 유지되는 그런 호수로 오래 남아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도 꼭 개발을 해야겠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남긴다.
‘영랑호 개발? 너님들이나 빠지세요’
#버스오딧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