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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Feb 27. 2020

46. 속초를 스치며(1)_풀들이 만든 거친 황무지

CHAPTER 2. 첩첩산중에서 망망대해까지 (춘천-속초)


살면서 조금 귀찮은 것들이 있다. 이름이 뭐냐는 것까지는 서로 묻는  예의 같고 좋은데 거기서 조금만  들어가면 사실  감흥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이 바로 호구조사다.  고향이 속초가 아닌 고성군 거진이다. 거기는 완전 깡촌이라 남들에게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 때가 많아 가끔은 그냥 속초가 고향이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4학년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대학교  때까지 살았으니 실상 고향이 속초라 해도  무리는 없다. 그렇지만 속초는 고향이라는 신득한 감정을 전해줄 만큼 내게는 단란한 이미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사로 보자면  재산  털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터전을 잡은 곳이 속초이며, 할머니가  겨울 영랑호 칼바람에 미군 모포를 빨며 자식을 키워낸 곳도 여기 속초였다. 어머니를 여의고 드센 도시 강릉을 떠나 본가가 이사한 곳도 역시 이곳 속초였다. 속초는 내가 태어난  이상의 의미가 있는 동네였고, 지금도 저기 영랑동 양우아파트에 나의 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내가  속초의  느낌은 이곳이 전형적인 깡패 도시라는 것이었다. 길거리에 지천인 깡패들과 건달들은 많아도  정도면 전국 최고 수준 정도는 되겠다 싶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조폭은 당시 평범한 꼬마들에겐 간지작살의 트렌드였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에겐 우상이었다. 당연히 평일 학교 운동장에서는 퇴학당한 친구가 학교를 다니는 젓갈 같은 친구 대갈빠리를 박살내기 위해 삽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풍경이 일상적이었다.



 역시 하교길 오락실 골목에서 단념하듯 무지하게 센터를 당하곤 했다. 이런 일상이 보편화되다 보니 친구들  깡패가 여럿 있었다. 더러는 건달 짓 못할 만큼 착한 놈들도 있었는데, 방학기간 특수교육을 거치더니 순식간에 인성이 바뀌어 버렸다. 사실 좀 놀랐다. 성악설, 성선설.. 이런   개구라라는 것을 몸소 입증해 보여 주시던 당대의 형님들  내가 아는 여럿이 험하게 맞아 죽었고, 살아있는 녀석들도 병신이 많다.


꿈을 키우는 어린이라는 명제를 달고 ‘공교육 의무화 과정' 성실하게 거친 죄밖에 없던 이들은  최후가 참으로 비참했으며 아직도  결과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속초가 과거에 그렇게 척박했던 이유는 지리학적인 연유에 기인한다. 속초는 한국전쟁 이후 수복된 땅이다. 본래가 38 이북에 있었던 북쪽 동네다.



그런 연유로 잠시 이곳에 피난  많은 이북의 실향민들이 휴전 이후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처음엔 되돌아갈 심산이 마냥 컸으므로 실상 제대로 삶을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이후 그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하는 직접적 이유가 되었다. 그저 지나가는 잠시의 피난처가 어찌어찌하다가 삶의  무대가 되어버린 탓에 실향민 1세들과 2세들은  괴리감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리고 피난과 상관없이 과거  곳을 찾은 이들은 인근의 토박이들이 아니었다. 속초는 과거 황량한 땅이었다. 이방인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횟집들로 유명한 대포동만이 초등학교 역사가 100 가까이 되고 나머지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반세기가 고작이다. 그만큼 도시의 문화와 역사가 일천한,  그대로 '풀들이 묶여 나뒹구는 황무지' 그곳이 속초였다.


어르신들이  안주삼아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번 놈들이  쓰러 오는 .  없는 놈들이  벌러 오는 . 그게 속초의 전형적인 정체성이었다. 그들에게는 바다의 끝에 속초가 있었다.

#버스오딧세이 #속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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