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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Feb 29. 2020

48. 속초를 스치며(3)_완벽한 타인의 땅

CHAPTER 2. 첩첩산중에서 망망대해까지 (춘천-속초)


대학시절 친구들이 서울에서 내려와 연락을 해오곤 했다. 가성비 좋은 횟집을 찾는다. 속초엔 그런데가 없다고 말하면 놀리는 줄 안다. 속초를 관광지로 알고 찾는 사람들이 늘 당면해야 하는 이 문제는 도착 즉시 '싸가지 없는' 장사꾼들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여기서 오래 살아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하기 힘든 문화의 일부분이다. 예를 들면 횟집의 기본인 밑반찬(곁들이찬)이 없다. 장례식장도 아닌데 자기들이 불편하다고 모든 밥상에 비닐을 깐다. 심지어 처음 만난 손아랫사람에게 자연스레 반말을 건네는  상인들도 있다. 술 먹고 싶은 마음이 뚝딱 떨어진다.



아무것도 없는 이 척박한 땅에서 힘들게 삶을 일궈냈다. 그것이 관광객 모드의 외지 사람들을 대하는 별난 타박스러움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물론 건너편 동네 양양이나 강릉의 텃세에 비길 것은 아니지만 속초도 분명 까칠한 정서가 있다. 말투의 뽄새부터일단 외지인들에겐 상당히 불편하다.


"야~이 호로 간나이 새끼야. 니 애비에미 시퍼러 둥둥한 바다에 나가 올레뛰고 내레뛰고 괴기 잡아서 핵교엘 보내 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암캐 수캐 냄새 맡고 댕기니. 야이~ 쌍 깔라야. 니 언제 인간이 돼갔니, 빨리 안 처 들어갈래?"


사실 속초가 어떤 동네인가를 말하는 것은 나에겐 별 의미가 없다. 속초의 인문과 역사, 환경생태 등에 애초에 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현재 여기서 살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속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유년시절에 멈춰져 있다. 그 기억의 정점은 고향에 대한 연민이다. 인간이 연어도 아닌데 일생을 속초에 살면서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 바로 속초다. 하지만 원한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 속초는 여전히 유배의 땅이며 염원은 긴 시련으로 각인되었다. 내가 너에게 뭔가를 베풀어도 나의 욕망과 좌절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하나다. 인생살이만큼은 내가 너보다 편해야 한다.



속초를 잘 들여다보면 여긴 서비스란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밑반찬과 비닐은 애교 수준이다. 대포항에서 난전 생선장사를 하며 자식들을 먹여 살린 할머니가 대야에 담긴 닭새우가 신기해서 만지려고 하는 서울 아이에게 바가지로 물을 뿌리는 것을 봤다. 몇 년을 고발당해도 여전히 중량을 속이며 회를 파는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여기 있는 건 나의 의지가 아니며 고로 여기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장사를 한다고 해서 그들을 존중할 필요는 없다. 고향을 연민하다가 좌절한 사람들의 이중적 잣대가 시장에서, 식당에서 그리고 속초 전체에서 떵떵거리며 울려 퍼지고 있다.


‘살려면 사고, 말라면 말고’



유동인구 12만의 작은 소도시. 바람도 재산이라며 바람까지 팔아먹어가며 희대의 사기극으로 만들어진 리조트. 정체성이 없는 지역축제로 몸살을 앓는 도시. 원조라는 순두부 할머니만 대략 3백 여명이 먹고사는 이상한 원조도시. 여름 한철 장사로 일 년을 버텨야 하는 자원 태부족의 소비도시. 이제 친구들도, 동네 아이들의 소음도, 양아치들의 우격다짐도, 중앙동 서울 오락실 제비우스 효과음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텃세가 없다지만 안온함을 나누진 않는다. 그걸 발견하는 순간, 당신은 속초를 진짜로 좋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서로 완벽한 남이 되는 순간, 바로 그때 속초 사람들은 환하게 웃는다. 언제 한번 경험해보시라. 인생관이 바뀔지도 모르니 조심하시고.

#버스오딧세이 #속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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