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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05. 2020

56. 강릉 중앙시장_그리운 추억의 북새통

CHAPTER 3. 바다가 내어준 푸른빛 길 (속초-묵호)


나는 군생활을 강릉에서 했다. 대학 진학 후 본가가 강릉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단기병 생활을 낯선 이 곳에서 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에서 조그만 여관을 운영하셨는데 내가 일병을 달았을 때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그 청천벽력 같은 상실감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제대를 할 때까지 시간만 나면 상처를 잊기 위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장엘 찾았다. 그곳이 강릉 중앙시장이었다.



내 고향 동해안 작은 마을에는 그 작은 마을만큼 더 조그만 로터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로터리를 신작로라고 불렀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1리에서 10리까지의 경계선이 되는 그곳은 작은 마을의 하나밖에 없는 시장이 있는 곳이었다. 좁은 건물 사이로 길게 나 있는 조그만 시장에는 근처 촌에서 올라온 야채며 채소 그리고 갓 바다에서 잡아온 오만가지 해산물과 생선들이 펄떡이고 있었고 그 생선들을 파는 아주머니들은 모두 어머니 친구 분들이었다.



어머니는 늘 시장에 계셨다. 당시에는 '일수'라고 하는 계를 모든 시장 상인들이 가입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계주가 되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수를 걷으러 좁디좁은 시장통을 활보하며 다니셨다. 당시에는 내가 어려서 집에 따로 두지 못하고, 시장 통을 누빌 때 늘 내 손을 잡고 다니신 탓에 나 역시도 하루도 빠짐없이 시장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자전거를 배우면서 일수를 찍는 일은 내 차지가 되었는데, 덕분에 작은 어촌마을 시장통에 있었던 모든 풍경들이 후일 나를 살아있게 하는 추억 중 가장 큰 밑천이 되었다. 시장에서 본 것을 집안에 굴러다니던 형 스케치 북에 그리곤 했던 나는 사생대회에 나가면 아이들이 항상 그리는 산과 들 대신 어머니가 다니던 그 조그만 시장을 그려 넣곤 했다. 담임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우리 집이 시장 한가운데 있는 줄 알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대학시절에는 가끔 밀물이 들이닥치듯이 고향생각이 나면 학교 근처의 청량리 경동시장을 찾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사람들과 청과류, 한약재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경동시장엘 가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수다 소리, 요란한 상인들의 호객소리, 짐꾼들의 호루라기 소리까지 시장에서 넘쳐나는 소리는 살아있는 소리였다. 그 소리 뒤로 또 다른 짐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나에게 시장은 그렇게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생명 넘치는 뻘 같은 생존의 현장이었다.



내게는 깊은 상처가 배어있는 중앙시장을 오랜만에 다시 걸었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떠들썩한 요즘 그래도 시장엔 생기가 넘친다. 하지만 오후 일찍 장을 파하는 가게도 여전히 많이 보였다. 과일 한 개라도 싸게 사려고 하는 어머니들의 알뜰함이 느껴지는 시장통이었다. 시장엔 언제나 나의 어머니들이 있다. 하루를 길바닥에 주저앉아 일을 하는 탓에 허리에 무릎 다리까지 쑤시고 고생스러워도 아들 하나 번듯하게 키워놓고 옆집 아줌마에게 자랑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있다.


추억의 북새통. 사금을 채취하는 용도로 쓰인다는 복대기 통에 온갖 시장 소리와 사람들을 넣어 흔들면 앙금처럼 환하게 남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금보다 값진 나만의 시장에 대한 추억이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 흔적들이 시끄럽고 어수선해도 아직 시장 골목이 나에겐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버스오딧세이 #강릉중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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