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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08. 2020

74.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_’떼돈’의 유래

CHAPTER 4. 산골 오지에서 삶을 돌아보다 (동해-영주)


자동차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가장 빠른 운송수단이 강물을 이용한 뗏목 운송이었다. 그 뗏목이 가장 발달했던 곳이 한강의 상류지역이었는데, 그중 제천에서 단양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매포읍 하괴리는 이 뗏목과 관련된 주요한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영월 동강에서 서울 한강까지의 강물이 뗏목으로 가장 붐볐을 때는 구한말 대원군 집권 시기였다. 당시 화재로 소실된 경복궁 중건에 나선 대원군은 필요한 목재를 영월과 정선에서 구했는데, 여기 소나무가 좋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운송의 편리함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동강에서 소나무를 뗏목으로 엮어 나르기 시작했고, 운이 좋아 나무에 깔리거나, 급류에 빠지거나 하지 않고 살아서 한양을 한번 다녀오면 소를 살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자 전국에서 한 밑천 잡겠다고 떼꾼들이 모여들었고, 떼꾼의 몸값도 수직 상승했다. 그때부터 '떼돈'을 번다는 말이 생겼다.



당시 떼꾼들이 나르던 목재는 길이 30미터, 폭 4미터의 동가리 12개를 묶어 서울 노량진, 뚝섬과 마포로 날랐다. 물이 좋을 때는 사나흘에 도달했지만 가물 때는 달포가 걸리기도 했다. 정선 아우라지 나루가 출발점이었는데 뗏목 길이가 무려 36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3-4월에 첫 운송을 시작해 늦가을까지 날랐는데, 정선 아우라지에서 영월 덕포 구간이 제일 험해서 사고가 많이 났다. 그래서 이 구간만 운행해주는 일명 선수들도 있었다고 한다. 동강변으로 영월 만지 나루에 있던 전산옥 주막은 떼꾼들의 이런 고됨을 위로해주는 장소로 서울에까지 유명세를 떨쳤다고 한다.



그런 주막집 나루 중에 가장 번창했던 곳이 바로 단양 도담나루와 하괴나루였다고 한다. 한강을 오고 가는 모든 소금배와 목재를 나르는 떼꾼들이 한꺼번에 모여 물산이 넘쳐나고, 덩달아 경강상인들과 봇짐장수들이 흥청거린 곳이 이곳 하괴리 지역이었다. 한국전쟁이 나기 전까지 떼꾼을 했다는 어느 주민의 말을 전하면 왜 이곳에서 ‘띠뱃노래’와 ‘뗏목아리랑’이 전해지고 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이 근처 강가에 총총히 주막이 있었지. 한 주전자에 3전인가 했어. 가물 때는 배로 막걸리를 실어와 밤새 마셨지. 그렇게 마시니 돈이 남아날 턱이 있을까. 남들은 우리더러 떼돈을 번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냥 돈을 떼거지로 쓴 거야.”


#버스오딧세이 #단양군_매포읍_하괴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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