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산골 오지에서 삶을 돌아보다 (동해-영주)
단양 터미널에서 영주로 가기 위해선 시내버스를 타고 죽령까지 올라가 영주 버스로 갈아타는 노선이 있다. 하지만 이 노선은 하루에 2대 정도만 버스가 다녀서 미리 계획하고 타지 않으면 낭패를 볼 때가 많다. 그래서 서울을 출발해 단양을 경유하는 영주행 시외버스 노선을 타기로 했다. 서울에서 영주까지 가는 버스의 단양 출발시간은 오전 11시 20분과 오후 3시 50분, 그리고 오후 8시에 막차가 있다.
버스는 심곡리, 연천리를 통과하고 단양휴게소의 신라적성비를 지난다. 휴게소 뒤편으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적성에 도착할 수 있다. 신라가 죽령 너머 한강 이남을 엿보던 시대의 치열한 분위기는 이제 없지만 적성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풍경은 땅따먹기에 목숨을 걸었던 신라 장수 이사부와 고구려 장수 온달의 우락부락한 얼굴이 절로 떠올려지게 된다.
휴게소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들어가는 길은 퇴계와 두향의 로맨스가 전해지는 장회나루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버스는 뜬금없는 로맨스를 뒤로하고 죽령으로 향한다. 죽령을 넘으면 영주가 코앞이다. 죽령은 영주와 단양 사이에 있는 고개로 높이가 689m에 달한다.
옛날 어느 고승이 고개가 너무 힘들어 짚었던 대나무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 지팡이가 다시 살아났다 해서 죽령이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죽령에는 대나무가 없다. 죽령이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 ‘죽죽(竹竹)이 죽령을 개척했다’는 기록에 나온다. 대나무 고개가 아닌 죽죽장군이 개척한 길이라는 것이다.
이름이야 어떻든 중요한 건 영남 내륙의 여러 고을이 모두 이 길을 거쳐 서울로 올라갔을 정도로 나라의 관리들은 물론, 온갖 물산들이 보부상들의 등에 업혀 이 고갯길을 넘나들었다는 사실이다. 고갯길 양쪽의 단양과 청풍, 영주와 풍기에는 이런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역참, 마방들이 들어섰으며, 이곳 장터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의 선조수정실록에는 "왜적은 평소 죽령길이 험하여 넘기가 어렵다고 들었기에 그 길을 경유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험한 고개였다. 현재 죽령은 희방사역이 속한 중앙선 철도, 4.6km 죽령터널로 통하는 중앙고속도로에 밀려 과거 영남 3대 관문의 영광을 잃었다곤 하지만 1999년에 복원된 오솔길인 죽령옛길과 소백산 자락을 감싸고도는 5번 국도는 고즈넉하게 역사의 뒤안길을 추억하며 달려 볼만한 멋진 고갯길 드라이브코스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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