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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10. 2020

80. 봉화터미널_임당 가시는 할머니와 잡담하다

CHAPTER 5.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발품 길 (영주-대구)



봉화에서 춘양을 가기 전에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려 봉화 공용터미널에 갔다. 춘양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5번 버스다. 시간을 확인하고 투어 일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승차장에서 꽤 오랫동안 앉아 계신다.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물으니 임당을 가신다고 하신다. 얼레? 기다리시는 승차장엔 6번 버스가 들어오는데 임당은 없다.

“저기 신라리라고 보이지. 저기가 상운면 끝 동네인데 거기서도 끝 마을이 임당이여. 신라시대 어느 왕이 지 아들하고 여기로 피난 와서 신라라고 했다네”



임당은 해발 500m의 산들로 둘러싸인 오지마을이다. 봉화군의 제일 남쪽 마을로 김해김씨 삼현파 후손들이 사는 집성촌이다. 재미있는 건 임당 마을 뒷산을 넘으면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가 나온다. 왕이 왔으니 아들인 태자도 당연히 같이 와서 이곳에 정착했다는 전설이 그저 괜히 나온 말은 아닌 듯싶다. 

“마을을 첨으로 만들 당시에 소나무 숲이 울창한 한가운데에 연못이 있다고 해서 임당이라고 했다지”

할머니는 임당 마을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만한  진짜 오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릴 적 콩 15되를 짊어지고 예안장에 가서 검정고무신 한 켤레로 바꾸어 오던 추억담을 들려주셨다. 주변의 봉성장, 봉화장, 상운장 예안장 들을 보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

“처음 우리 마을에 버스가 개통되었을 때 말도 말어. 승객이 적으면 버스가 안 다닐까 봐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몇 없는 마을 주민들이 순서를 정해서 일없이 버스를 타고 봉화에 오고 가곤 했어. 그 바쁜 시절에”

추억담은 점점 고난의 여정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안동의 녹전면에서 신라로 들어오는 새마을 길을 닦을 당시 주민들이 직접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고 지게로 흙과 돌을 저 나르면서 길을 내셨다고 한다. 그뿐이랴. 눈이라도 펑펑 오는 날엔 주민들이 직접 문촌리에서 신라재를 오르는 응달길의 제설작업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고 하신다. 이 길이 막히면 신라리 주민들이 봉화 쪽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외딴섬이 되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그 고생을 다 하셨다며 긴 한숨을 뱉으셨다.

현재 신라리 끝 동네 임당 마을은 상운면사무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오지마을이지만 안동과 봉화로 길이 뚫린 이후엔 한우 사육으로 상운면에서 가장 잘 사는 마을이 되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 마을을 가보지는 못하고 행선지 이정표로만 보고 있자니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여행이란 구술의 맛도 있는 법이지 하고 발걸음을 억지춘양으로 돌렸다.

#버스오딧세이 #봉화읍_상운면_신라리_임당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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