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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14. 2020

95. 아화리_시내버스는 ‘미시사’를 지난다

CHAPTER 5.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발품 길 (영주-대구)


아화 CU편의점 앞 고양이를 보고 문득 든 생각


서양학 역사연구 방법 중에 '미시사(microstora)'라는 것이 있다. 미시(微視)란 세밀하게 역사를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전체적인 시각보다 개별적으로 포착한 아주 작은 사실들을 파헤치는 역사다. 공적인 문서나 기록은 거시사, 서간이나 일기 등은 미시사로 취급한다. 예를 들면 이중원의 ‘택리지’가 거시적 서사라면 ‘버스오딧세이’는 미시적 관찰여행인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학계에서 조금씩 미시적 기록들이 역사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역사관은 출판을 통해 활발하게 보급됐는데, 이 당시 대중의 큰 반향을 일으킨 저서가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다. 16세기 이탈리아 북부 시골마을의 한 방앗간 주인은 창조론을 부정하고 생명체의 탄생 과정을 치즈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것으로 설명, 이단으로 몰려 화형 당한다. 저자는 당시 종교가 지배하는 거시적 세계사를 주인공의 눈을 통해 미시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리는 늘 미시적으로 인간을 대하면서도 역사를 말할 땐 의례 거시사를 거들먹거린다. 내면적 배신이다.


이런 흐름을 이은 미시사의 문제작이 있다.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다. 이 책은 18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사료로서 가치가 불투명하다는 의심을 받아 왔던 글 속에서 숨어있던 의미를 찾아낸다. 그중에 한 이야기가 ‘생-세브랭 가의 고양이 학살’이다. 산업화 시절 인쇄공장에서 일하던 소년들은 학대를 받으며 일하면서도 찌꺼기 같은 음식으로 근근이 연명했는데, 주방장이 몰래 남은 음식을 팔고 소년들에게 고양이 밥을 준 것이다. 노동자 니콜라스 콩타는 25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애지중지 키우면서도 노동자는 천대한 부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꾀를 낸다. 고양이 소리를 잘 흉내 내는 소년이 주인의 침실로 기어가 고양이 울음을 밤마다 울어대자 주인은 고양이가 마법에 걸렸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후 고양이는 세례 요한 성축일에 잔인하게 학살을 당하게 된다. 생-세브랭 고양이 학살사건은 부르주아를 향한 울분의 표출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시사의 매력은 현존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개인들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TV나 미디어는 세계를 논하지만 하루 일을 끝내고 쓰디쓴 소주를 들이켜는 우리는 언제나 미시적 존재일 따름이다. 오일장 골목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 수구레국밥을 드시며 코로나 19 걱정을 하시는 아저씨, 그 풍경 사이로 하루 수십 번씩 지나다니는 시골버스는 이 시대를 담고 있는 미시적 역사의 총람 그 자체이다. 작가 단튼은 말한다.


“밑바닥 수준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 물정에 밝아지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철학자만큼이나 지성적일 수 있는 것이다. _16p”

#버스오딧세이 #아화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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