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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14. 2020

96. 영천 753번 버스_오다쿠들의 희망버스

CHAPTER 5.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발품 길 (영주-대구)


시내버스에도 ‘오다쿠들이 있다. 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만으로 종주하는 마니아들인데 급이 높아질수록 당일치기를 선호한다. 지리산 종주가 며칠 종주냐에 따라 품위가 달라지는 거와 비슷한데, 버스 종주에서는 지구력보단 순발력이 우선 덕목이다. , 개인적으론 이런  안 했으면 하지만, 덕후들 세계는  다르니까.



서울에서 부산, 부산에서 서울을 시내버스로   가장 중요한 구간 버스가 바로 영천버스 753번이다. 내가 아화에서 영천을   올라탄  버스는 일반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버스노선이지만, 버스 마니아는 누구나  번쯤 들어봤을 노선이다. 서울과 부산을 하루 만에 시내버스로 오갈  반드시 영천과 경주를 거쳐야 하는데, 영천과 경주를 잇는 시내버스 노선은  노선뿐이다. 문제는 하루 4번만 운행한다는 사실. 서울-부산 당일 종주의 성패가  버스에 달린 셈이다.



그런데 이런 버스 오타쿠들을 슬프게 하는 사건이 
생겼다. 2018 9 6일부로  노선의 막차가 17 50분으로 단축됨에 따라 이제 무박 2일로 하지 않는 이상, 서울발 부산행 당일치기 시내버스 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753 버스는 영천에서 임포까지만 가는 750번을 아화까지 연장한 지선이다. 영천터미널에서 바로 시외로 나가지 않고, 시내를  바퀴  돌고 나간다. 영천시  시내버스 노선  경주로 들어가는 유일한 노선이다. 753번을 타고 영천시내를 한 바퀴 돌아본다. 마치 관광버스를  기분이다.



영천에는 고대에 골벌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 사람인 백석이 김춘추와 김유신을 속여 고구려로 데려가려고 하자  산신이 여인으로 나타나 백석의 의도를 알려줘서 김춘추와 김유신이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설화의 배경이 바로 영천이자, 당시의 골벌국이다.


신라를 위기에서 구해준  설화의 내용만큼 보상이
 있어야 할 텐데, 사정은 그러지 못한 듯하다. 영천은 전국을 잇는 교통의 요지인데도 실제 차량과 철도는 그냥 지나쳐 가기만  , 정작 도시 경제에는 도움이  된다. 과거엔 구미-대구-포항으로 이어지던 국도를 탈 때는 반드시 영천을 통과해야 했지만 새만금 포항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완벽한 육지의 섬으로 고립됐다.



옛말에 ‘잘 가는 말도 영천장, 못 가는 말도 영천장이란 ‘ 있다. 빠르게 달리는 것들은 무시하고 주마간산의 속도를 중요시하는 말산업 같은 아이템을 활성화하면  좋은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까. 그전에 단축된 753 버스의 막차시간도 넉넉하게 늘려주면 좋을 텐데.


#버스오딧세이 #영천시_한바퀴 #영천753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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