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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제주댁 Sep 14. 2020

제주에서 가장 정성 들여 만드는 떡

할머니의 가장 간절한 소원

삼 년 전, 제주의 동쪽 해안가에 자리 잡은 북촌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마침 마을제인 ‘포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마을회관 주방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무언가 만들고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려 했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내시며 외지 사람은 이 주방에 들어와서도, 봐서도 안 된다고 하셨다. 서럽게도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나는 주방 문 너머 마을 어르신들이 무엇을 만들고 계신지 쿵쾅대는 가슴을 누르며 몰래 살폈다. 마을에서 만들고 있었던 것은 분명 돌레떡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신이 모셔진 신당을 갈 때 집집마다 대체로 돌레떡, 메(곤밥, 쌀밥), 옥돔구이, 한라봉, 사과, 배, 소주(과거엔 오메기술이나 고소리술), 삶은 달걀을 구덕이나 차롱에 담아 제물로 가져간다. 제주대학교 국문학과 허남춘 교수님에 따르면 더 과거에는 사과, 배가 아니라 당시 귀하디 귀했던 귤만 단일로 올렸을 것이라 한다. 그러다 조선시대 후반 유교적 제의가 제주에 들어오면서 육지부에서 반드시 제물로 올라갔던 조율이시(棗栗梨柿), 즉 대추, 밤, 배, 사과 중 사과와 배가 제물로 등장했을 것이며, 현재에는 대중적 과일이 되어버린 귤은 고가의 고급 과일인 한라봉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께 바치는 음식들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정성과 성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친정엄마는 외가댁 식게(제사)가 있던 날에는 항상 새벽이 되어서야 제주시에 오셨다. 자정이 넘은 시간 칠흑 같은 밤에 외삼촌 배를 타고 가파도에서 모슬포로 들어온 후, 다시 운전을 하고 제주시로 오시는 엄마의 안위 따윈 사실 나의 관심 밖이었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엄마의 손에 들려 가파도에서 제주시까지 넘어온 은색 쿠킹포일 속의 식게 음식에 쏠려 있었다. 상어 적갈, 고기 적갈, 무늬오징어 적갈, 구쟁기 적갈, 옥돔구이에, 해녀 외숙모들이 싸주신 구쟁기 젓, 성게.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지만 특히 내가 가장 반겼던 음식은 외할머니도 좋아하셨던 기름떡이었다. 설탕이 뿌려진 달콤하고 고소하고 쫄깃한 그 기름떡! 생전의 나의 외할머니는 하루 지난 식게 기름떡을 다시 프라이팬에 올려 구워주셨다. 찹쌀로 만든 기름떡들은 프라이팬에 올려 구우면 하나로 합쳐지며 한 덩어리가 되는데 포크를 하나씩 들어 그 쭉쭉 늘어나는 기름떡을 떼어먹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친정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떡은 달지도 않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백옥같이 희고 둥근 떡, 메밀 묵적, 빙떡이었다. 그 희고 둥근 떡의 이름이 절벤(둥근 판으로 눌러 만든 흰떡으로 곤떡, 절변으로도 부른다)인지 돌레떡인지 본인도 헷갈리셨던 것 같다. 어떤 날은 절벤이라고, 또 다른 날은 돌레떡이라고 부르셨다. 그 돌레떡 외에도 세미떡, 만듸떡 등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제주 떡은 왜 그렇게 이름도 생소하고 낯선지, 우리나라 모든 떡집에서 파는 꿀떡, 인절미, 송편의 맛에 길들여져 있는 80년대 생 자녀들에게 제주의 어른들이 좋아하는 전통 떡은 참으로 어색하고 맛이 없었다(말 그대로 정말 無味).

그런데 그 아무 맛도 없던 돌레떡을 우리 엄마만 좋아했던 건 아닌 것 같다. 제주 할망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제주떡을 여쭤보면 꼭 세 손가락 안에 돌레떡, 빙떡, 세미떡을 꼽으신다. 나는 상애떡을 제일 좋아하시지 않을까 했는데 늘 상애떡은 그 뒤로 밀려나곤 했다. 그런데 제주의 할망들이 좋아하는 이 떡들에게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메밀가루로 만든 떡이라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씀하시는 떡은 내가 북촌의 마을회관에서 심장이 쿵쾅거리며 훔쳐보았던 그 떡, 바로 돌레떡이다.

일단 북촌에서도 그러했듯이 마을제 등 제주의 신을 위한 굿이 펼쳐질 때면 이 돌레떡이 빠지는 법이 없다. 마을제 때면 집마다 제물을 정성으로 만들어 구덕에 담아 신당으로 가져가는 데 그중 이 돌레떡이 빠지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제주 사람들의 주곡을 보리, 메밀, 차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제주의 주곡은 차조와 보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메밀은 알곡 그대로 밥을 해 먹지 않고 가루로 만들어 보관했다가 썼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은 메밀가루를 장만했다가 조배기를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신께 올리는 중요한 제물을 만들 때도 사용했다. 즉, 돌레떡을 만들어 신에게 제물로 바치거나 고리 동반을 만들어 제물상 위에 두었다. 또, 상을 당했을 때 죽은 자의 손과 가슴에 얹어 저승문 앞에 있다는 개에게 던져 무사히 저승문을 통과하게끔 하였다. 또, 장지에 가는 사람들에게 피력떡이라고, 메밀로 만듸나 세미떡을 만들어 나눠주었다. 이웃이나 친척이 잔치나 큰일이 있을 때는 빙떡을 만들어 부조로 보냈고 제사상에 올리는 두 종류의 메밀묵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이때 메밀가루로 쑨 묵은 모멀묵, 알곡을 우려 묵은 모멀청묵이라 부른다. 그리고 아픈 사람에게는 메밀죽이나 미음을 쑤어 먹여 원기를 회복하게 하였고 출산한 산모에게는 메밀가루를 물이나 오메기술에 풀어 주거나 모멀조배기를 만들어 해산 음식으로 주었다. 이렇듯 메밀은 주곡으로 먹기보다는 가루로 만들어 상비해두고 귀한 일에 썼다. 반면 보리나 차조는 이런 특별식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주로 밥, 즉 주식으로 이용하였다. 이렇게 메밀은 제주 음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식재료였기 때문에 농경의 신 자청비도 다시 천상으로 올라가 이 메밀 씨앗을 가지고 왔나 보다.



제주의 돌레떡은 제주를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우리 마을의 풍년과 풍어, 가족의 안녕을 기원할 때 바치는 떡이자 굿을 보러 온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떡이다. ‘굿 본 김에 떡이나 먹는다’는 속담에서 떡이라 함은 제주 어르신들에게 바로 돌레떡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제주 사람들에게 돌레떡은 곧 만든 사람의 정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돌레떡을 보며 제주의 일만 팔천 신들이 그 지극한 정성을 알아보고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했었다.


돌레떡을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쉽다. 제주는 쌀이 귀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육지부의 멥쌀과 찹쌀을 주로 하여 만드는 떡과는 차이가 있다. 제주에서는 주로 메밀을 이용해 이 떡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메밀을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을 넣어가며 말랑하게 익반죽 한 후에 손바닥만큼 한 크기로 동글납작하게 만들어 끓는 물에 삶아낸다. 제주의 떡이 육지부의 떡과 다른 점은 삶는 떡이 많다는 점이다. 육지부의 떡은 멥쌀이나 찹쌀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찌거나 치거나 지져서 만들어도 쉽게 떡이 된다. 하지만 찰기가 없는 메밀, 잡곡으로 만드는 제주의 떡은 물에 삶아내야만 떡의 질감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떡 삶은 물을 버린다면 제주의 할망들에게 호되게 혼이 난다는 점이다. 제주의 할망들은 떡 삶은 물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거기에 나물이나 놈삐를 넣어 국을 끓여 먹었다. 신에게 바치는 돌레떡도 역시 물에 삶아 만든 떡이다. 돌레떡을 만들 때는 소금을 넣지 않고 빚었다 한다. 형태는 동글납작하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둥글게만 하면 잘 굴러다녀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또, 여러 개를 쌓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잘 쌓을 수 있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지금은 메밀이 귀한 작물이 되어 버려서 메밀보다는 흰쌀로 돌레떡을 더 많이 만든다. 메밀가루뿐 아니라 보리, 조를 사용해서도 돌레떡을 만들었는데 흰쌀로 만든 것을 ‘흰돌레’, 좁쌀로 만든 것은 ‘조돌레’, 보리로 만든 것을 ‘보리돌레’라 부른다. 그래서 친정엄마도 흰돌레와 제펜을 헷갈려 하기도 한 것 같다. 아무튼 제주의 할망들에게 가장 정성을 들여 만든 떡이 무엇이었냐고 여쭤본다면 그 재료가 메밀이든 조든 보리든 멥쌀이든 ‘돌레떡’임은 분명하다.

돌레떡만 보더라도 육지의 떡과 제주의 떡의 차이는 극명하게 갈린다. 육지의 떡 문화는 논농사의 영향을 받는다. 24절기에 따른 세시풍속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명절을 통해 그 시기에 맞는 음식과 떡을 함께 나누고 이웃들과 놀며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와 결속력을 다졌다. 주기가 긴 논농사의 특성상 정기적인 휴식과 활력의 시간을 세시풍속을 통해 마을 단위로 가지며 추수에 대한 소원과 감사를 담았다. 우리가 아는 설날, 정월대보름, 삼월삼짇날, 단오, 칠석, 추석, 중양절, 동지 등은 모두 그 명절에 맞는 세시풍속이며 이때마다 육지부 사람들은 떡을 만들어 나누어 먹으며 그 날을 즐겼다.




하지만 제주의 떡 문화는 조금은 다르다. 논농사보다 주기가 훨씬 짧은 밭농사는 한 작물의 농사가 끝나면 바로 이어 농사를 할 수 있고 사계절 늘 푸른 채소를 얻을 수 있어 일 년 내내 농사를 해야 했다. 바다농사 역시 계절마다 늘 바빴다. 이런 일정한 패턴을 가늠할 수 없는 제주인의 삶에는 정기적인 휴식과 활력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태풍의 길목에 있는 제주섬의 지형적 특성에 따라 늘 앞을 알 수 없는 자연의 변수 속에서 일 년의 풍년과 풍어를 신에게 빌었어야 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실어 기원할 수 있는 신들을 위한 떡을 많이 만들었다.



제주의 떡은 제주의 자연과 우주의 만물을 닮아있다. 제주 사람들은 제사상에 제주의 땅(제펜), 구름(은절미), 달(솔벤), 해(절벤), 별(총떡 혹은 우찍)을 의미하는 떡들을 만들어 쌓아 우주를 형상화했다. 또한 굿이나 제가 끝나면 신인공식(神人共食) 즉, 신과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는다고 여기며 자연과 우주만물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때문에 뭐하나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았으며 자연이 준 음식을 모두 다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쓸 만큼만 음식을 만들어 향유하였다.

그러고 보니 친정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돌레떡은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어진, 우리 가족의 안녕과 소원을 신에게 빌며 정성껏 만들었던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 넘치는 떡이었다. 이런 우리의 제주 떡이 우리 윗세대 어른들을 마지막으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나는 얼마 전, 우연히 만나게 된 친정엄마의 여고 동창분께 이런 질문을 했다.

“고희선 님(1959년생, 대정읍)의 힐링음식은 무엇인가요?”

“내 힐링음식은 시어머니와 함께 마주 앉아 도란도란 만들었던 세미떡(메밀반죽에 팥소를 넣어 반달 모양으로 만든 떡)이에요. 세미떡을 떠올리면 시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마음이 찡해지네요.”

여러분의 가슴을 울리는 제주의 떡은 무엇인가요?




이 글은 <제주의 소리> "제주댁, 정지에書" 에 연재되는 글과 일러스트입니다.

@jeju_cookinglife
오늘도 제주댁 : 제주 음식을 공부하는 제주토박이 워킹맘
@iroiro.one
이로이로 : 제주도 작은 마을 작은 공방에서 그리고 쓰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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