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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제주댁 Mar 14. 2021

제주인의 희로애락을 담은 술, 고소리술

할머니의 땀 한방울 한방울 모여 만든  그 술, 한주(汗酒)

2년 전만 해도 제주의 할망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습관처럼 질문을 하곤 했다.


“어르신, 오메기술이 귀해요? 고소리술이 귀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현재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주인데, 당연히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술이 있겠나 싶은데 그땐 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제주 전통음식이나 술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고 일부 책이나 인터넷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제주의 전통주인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에 대해서는 대부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제주의 오메기술은 흐린조(차조) 가루로 밑떡인 오메기떡을 만들고 그 밑떡과 누룩을 섞어 발효시켜서 만든 것이고, 이 오메기술을 증류기인 고소리에 넣어 끓인 후 증류한 증류주가 바로 고소리술이라는 것.


고소리라고 불리는 증류기에 술을 담아 끓이면 티없이 맑고 투명한 증류주가 한방울 한방울 맺혀 모이는데, 이렇게 고소리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오메기술이 귀한 술이라는 이야기는 제주음식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어르신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였다. 때문에 나는 그 귀한 오메기술을 증류시켜 한방울 한방울 내려 만든 고소리술은 오메기술보다 정성과 노력이 더 들어가는 술이며, 때문에 당연히 오메기술보다는 고소리술이 더 귀한 술이었을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떤 술이 더 귀한 술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위의 결론을 바탕으로 “고소리술이 좀 더 귀한 술이 아니었을까요” 하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나의 이 말이 부끄러운 이야기가 되어 버린 계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운 좋게도 제주의 학자들이 고소리술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을 곁에서 참관하는 좋은 기회를 얻었고, 당시 제주 곳곳에 사는 70세 이상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고소리술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회에 꼭 확인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고소리술은 오메기술을 증류시켜 만든 거지요?” 라고 물어봤다. 물론 이 질문은 당연히 어르신들의 입에서 “그럼” 이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고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대답은 나를 혼돈 속에 빠뜨렸다.


“아이코, 오메기술은 막 귀한 거라 그걸로 어떵 고소리술을 만드느냐게. 오메기술로 고소리술 만들지 않아서.”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고소리술의 정체성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5명 남짓 만났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면 이렇다.


지금 현재 어르신들 나이가 70대~80대시니까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적어도 1940년대 이후의 고소리술은 차조로 빚은 오메기술을 이용해서 만든 술이 아니었단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으로 고소리술을 만들었을까? 어르신들은 다시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겉보리!”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민속주, 가양주들은 그 지역에서 났던 주곡으로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쌀이 지금처럼 흔해지기 이전 제주의 어르신들은 보리를 주곡으로 드셨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주의 고소리술은 보리로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그렇다면 오메기술은? 궁금해져서 또 어르신들에게 그럼 오메기술도 겉보리로 만드냐고 물어보았다.


“오메기술은 귀한 술이라서 차조로 만들어야해.”


많은 어르신들이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나, 어르신들의 부모님이 만든 고소리술을 종합해서 정리해보자면 고소리술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곡류는 역시나 겉보리였다. 그런데 특이했던 것은 겉보리 만으로 고소리술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귀포의 하논지역에서는 쌀이 다른 지역보다 풍성했기 때문에 쌀로 만든 청주를 이용하여 고소리술을 얻었다. 쌀 까지는 그래도 수긍이 갔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썩은 고구마를 발효시킨 것도, 심지어 쉰다리로도 고소리술을 증류했다는 것이다. 썩은 고구마와 쉰다리로도 고소리술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지 않았었다. 그런데 함께 제주음식을 공부하는 동학이 살짝 귀띔을 해 주었다.


“선생님, 어떤 술이라도 끓여서 증류시키면 소주(증류주)가 돼요. 맛 차이도 크지 않고요.”


이렇게 제주의 어르신들은 차조로 정성껏 빚은 귀한 오메기술보다는 다른 흔한 곡류나 전분성 식물을 가지고 술을 만들어 증류시켜 고소리술을 빚었던 것이다. 고소리라고 불리는 증류기에 술을 담아 끓이면 티없이 맑고 투명한 증류주가 한방울 한방울 맺혀 모이는데, 이렇게 고소리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소주를 증류기인 고소리의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고소리술이라고 불렀다. 또는  한방울 한방울이 땀과 같아 한주(汗酒)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고소리에 술을 증류하는 것을 “ 다끈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고소리술은 언제부터 제주 사람들과 함께  왔을까?



제주의 소주에 대한 기록은 중종실록(中宗實錄) 처음 등장한다. 1515(중종10)조에 제주에서 사망한 제주목사 성수재의 시신을 호상해 오는 내용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성수재는 일찍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여러 번 변방 소임을 역임하여 자못 청렴하고 유능하고 명망이 있는 자였다. (중략) 그는 소주를 좋아하여 병을 얻어서 죽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또한 충암 김정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1520)에서도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벼는 매우 적기에 지방 토호들은 육지에서 사들여다 먹고, 힘없는 자는 밭곡식을 먹으므로 청주는 매우 귀하며, 겨울이나 여름은 물론이고 소주를 쓴다.”


마지막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이러한 기록이 있다.

제주에선 소주를 많이 빚는다.(多用燒酒)”
“봄과 가을에는 광양당과 차귀당에 남녀가 무리지어 술과 고기를 갖추어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기록에서 등장하는 소주는 고소리술이며 청주는 오메기술임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귀한 술이었던 오메기술은 신에게 바치는 제주로 쓰이거나 집에서 약으로 마실 용도로 빚었고, 가문잔치 날 신랑신부를 위해 만들기도 했다. 오메기술은 오메기술 자체로도 마시기도 했지만 오메기술에 참기름, 꿀, 생강, 달걀노른자를 넣어 오합주를 만들어 약으로 마셨다.


그런데, 오메기술은 청주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쉽게 받아 보관기간이 길지 않았다. 반면, 고소리술은 곡류나 서류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것을 끓여서 증류시켰기 때문에 미생물들이 거의 없고 도수도 무척 높아지면서 장기간 보관이 용이해진다. 지금의 어르신들이 술을 빚을 때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곡류가 보리였기 때문에 지금 제주의 어르신들이 말하는 고소리술은 주로 겉보리를 이용했다. 이렇게 증류한 고소리술이 워낙에 독한 술이라 마실 때에는 물에 희석시켜 마셨다고 한다.(물론 원액 그대로 마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어르신들을 만났을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가지 더 들었다. 많은 어르신들이 고소리술을 만들 때 어떤 ‘약’을 넣기도 한다고 이야기 해 주셨다. 어르신들이 술 만들 때 넣는 그 비밀의 약은 무엇일까? 어르신들에 따르면 그 약은 직접 그 약을 팔러 마을에 오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사기도 하고 혹은 점빵(마을가게)에 가면 흰 종이에 싸서 팔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은 주정공장에서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이 고소리술을 빚을때 넣었던 비밀의 약은 아마 술을 잘 발효시키는 촉진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1950년대 경 제주사람들은 만들기 어려운 오메기술보다는 어떠한 밑술이든지 알코올기만 있으면 빚을 수 있는 고소리술을 더 많이 빚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소리술은 사계절 내내 제주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술이었고, 오메기술은 중요한 날이나 귀하게 빚어 그때만 음용할 수 있었던 술이었다. 제주사람들에게 대중적인 술은 소주, 즉 고소리술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소리술은 과연 언제부터 제주사람들에게 전해졌던 것일까?


서귀포 지역에서는 소주를 아랑주라고도 하는데 몽골어로 증류주를 뜻 하는 말이 바로 아랑주와 비슷한 ‘아라키’이다. 아라키는 아랍어로 증류주를 뜻하는 아라크에서 비롯했는데 일설에서는 칭기즈칸이 서역원정 때 아라비아의 아라크를 몽골로 들여왔고, 이를 다시 원나라의 초대 황제인 쿠빌라이칸(kublai Khan)이 일본 원정길에 한국에 전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서귀포 지역에서 아랑주라고 불리는 소주를 평북지역에서도 아랑주, 개성지역에서는 아락주라고 불린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슷하다.


흔히 우리나라 3대 소주인 안동소주, 개성소주, 제주소주(고소리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세 지역에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다.


우선, 고려시대 삼별초항쟁 이후 제주는 원나라의 지배를 100여년 정도 받았다. 1273년(원종 14)에 병사들을 먼저 주둔시키고 1275년(충열왕 원년)에는 국영목장을 제주에 설치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왕후·왕족, 다루가치(원나라에서 파견한 관리)와 죄수들이 제주에 유입이 되었다. 몽골의 지배를 받는 이 100여년의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몽골의 ‘아라키’도 제주에 정착하였고 이 술이 제주에서 ‘아랑주’라고 불렸을 것이다. 또한, 원나라는 1282년 일본 정벌에서 패한 이후 다시 일본 정벌을 위해 제주 뿐 아니라 개성과 안동지역에도 병참기지를 만들었다. 이처럼, 한반도 전 지역 중 몽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세 지역, 안동, 개성, 제주에서 몽골식 증류기법으로 소주가 처음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 세 지역의 소주를 우리나라 3대 소주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제주의 고소리술로 돌아와 보자.


고소리술에는 제주사람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주사람들은 술을 워낙에 좋아해서 고소리술 양동이에 가득 담아 이고 아침 일찍 내천에 나가 해가 질 때 까지 가족친지들과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일년 내내 밭농사 바다농사에 바쁜 일상에서 위로와 힐링을 주는 순간은 바로 그 순간, 고소리술로 그 피로를 푸는 순간이라고 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고소리술 맛은 술을 만드는 곡류나 서류보다는 물의 맛에 가장 크게 좌우된다고 말씀하신다. 한 어르신은 본인이 살았던 지역은 물이 워낙 깨끗하고 좋아서 다른 동네 사람들도 이 물을 얻으러 올 정도였다고 하셨다. 반대로 좋은 물이 나지 않는 동네는 술을 잘 빚지 않았다고 한다.


왼쪽 :(www.beveragenews.co.kr/2013, 소주의 역사)/오른쪽 사진 '제주여성사자료총서 사진자료집 2- 제주여성, 時代를 어떻게 만났을까(2003)'


지금의 희석식 소주가 대중화되기 , 가문잔치에 하객들에게 대접했던 술은 오메기술이 아닌 고소리술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집에서 고소리술을 장만하지 못하면 다른 마을 사람에게 고소리술을 구입해서 하객들을 대접했다. 오메기술은 신랑신부나, 가문 사람들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상을 당했을 때에도 오메기술보다는 고소리술을  많이 사용하였다. 사계절 내내 제주의  한편에 자리잡고 있었던 고소리술은 오랫동안 제주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곁에서 지켜보았을 것이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웃음과 눈물, 경사와 고통을 함께  술은 고소리술이었던 것이다.


물론, 오메기술로 고소리술을 빚는 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르신들의 가양주를 빚을 때 당시 주곡이 보리였기 때문에 1940년대 이후의 고소리술의 주재료 또한 겉보리였다는 것이다. 제주의 오메기술을 차조로 빚었던 이유는 차조가 오랜 과거 제주의 주곡이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1920년대까지는 보리보다는 차조가 보다 더 많이 생산되었다. 따라서 증류주 제조기술에 제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원나라 시대 부터 1920년대까지는 오메기술도 고소리술을 증류했을 것이다.


, 다양한 원물로 얻은 청주를 고소리를 걸어 끓인 증류주를 통칭하는   광범위한 술이 바로 고소리술이라고   있다.


제주의 집집마다, 마을마다, 웃음과 눈물, 경사와 고통을 함께 한 술은 고소리술이었다. 이로이로


을사늑약(1905) 이후 술에 세금을 물리는 주세법과 주세령이 반포되면서 전국적으로 가양주의 명맥이 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1920년 한림읍 명월소주, 1928년 제주읍 제주주조주식회사 등 희석식 소주 공장들이 등장하면서 증류식 소주인 고소리술은 점점 더 어르신들의 기억에서만 남아있는 술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1970년 제주소주합동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희석식 소주는 더욱 대중화되고 제주 증류 소주인 고소리술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고소리술 이야기만 한참 했지만 제주에는 고소리술이나 오메기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 어른들은 몸이 아프거나 건강을 챙겨야 할 때 오합주를 만들어 마셨으며, 각종 약초나 열매를 넣어 만든 담금주를 만들었다. 일하러 밖으로 나갈 때에는 휴대가 간편한 고체 술인 강술을 만들어 가져갔다. 제사나 차례 때에는 차조에 골(엿기름)을 넣어 삭혀 끓인 골감주를 만들어 바쳤다. 남거나 쉬어버린 밥으로는 누룩을 넣어 저알콜발효주인 쉰다리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이런 매력적인 제주의 맛과 멋을 가지고 있는 제주의 술이 곧 그 명맥이 끊길까 아쉽다. 그래서 올해 버킷리스트에 한 줄 적어 놓았다.


제주의 술 만들어보기!!


누룩 빚기부터 오메기술, 고소리술, 오합주, 강술까지. 소중한 제주의 술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 올해 나의 목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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