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이야기 2
10월부터 다도 수업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업에 다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견습생이라서 뭘 직접 배우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선생님 지도를 받으며 연습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저렇게 하는구나 하며 열심히 눈으로 좇고 분위기를 익히며 돌아오곤 한다. 이런 과정을 3개월 거친 후에야 다도에 입문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쉽지 않다.
다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건 꽤 오래전부터였다.
일본에 있었을 때도 관심이 있었지만 거기에서 그쳤을 뿐 열심히 알아봐 배우러 다니거나 하지 않았다.
사실 다가가기 어려웠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일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소개를 받아야 다도 세계에 입문할 수 있다고도 했으니 유학생 신분으로는 너무 허들이 높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정말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시도는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는 관심은 있었지만 그런 절실함은 없었던 것 같다. 일본어 학교의 방과 후 수업에 다도가 있었음에도 아르바이트하느라 정신이 없어 하지 않았으니 뭐.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만 한구석에 계속 품고 있다가 작년에 레너드 코렌의 책 <와비사비-그저 여기에>를 편집하고 영화 <일일시호일>을 보고 난 뒤 어떤 절실함이 생겼던 것 같다.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비우며 사는 미학에 관한 와비사비와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몸으로 익혀 따라가는 다도가 내 안에서 융합되면서 배움의 의지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퇴사라는 하나의 과정을 거치고 혼자 일하는 것에 적응기를 가지며 힘들어한던 때, 다도를 만났다.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이제 고작 4번 참가한 다도 수업이지만 나는 매번 무언가를 비우고 오는 느낌이 든다. 조용히 끓는 찻물 소리를 그리고 도코노마에 걸려 있는 족자와 꽃을 멍하니 듣고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에 있던 것이 조금씩 비워지는 듯하다. 그것은 내 안 어딘가에 담겨 있던 화나 질투, 나쁜 마음이 될 수 있고 어떤 슬픔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다실에 들어서면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짧지 않은 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해 준다. 그리고 수강생분들이 정성 들여 만들어준 말차와 와가시를 먹고 있으면 몸은 긴장되어 있어도 마음의 긴장은 풀리는 듯해 편안하다.(나는 견학생이라 말하자면 손님이라고 할 수 있다.) 말차가 쓰지 않고 이렇게 맛있다니, 일본에 있었을 때도 잘 먹지 않았던 와가시가 이렇게 예쁘고 달콤하다니. 늦게 알게 된 게 아쉽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어딘지.
다도 수업이 끝나고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앉아 살짝 불편해진 다리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다 보면 마음은 차분해지고 머릿속은 비어 있어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일주일은 왠지 조금 더 나답게 잘 살아질 것 같다. 영화 <일일시호일>에서 여주인공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다도 수업을 쉬기로 했다가 차를 마시러 선생님 댁으로 달려가 차를 마시는 장면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 요즘은 그 기분을 조금 알 것 같다. 아니 알 것 같다고 하면 건방질 것 같고 그 기분이 조금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할까.
늦게라도 다도를 배우게 되어서 그리고 평생 공부로 삼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아직 갈길이 멀고 이제 첫 발을 내디뎠다고도 할 수 없지만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다 보면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고 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무언가가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