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글쓰기 39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을 좋아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겪는 희로애락이 모두 그 안에 담겨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살면서 전혀 겪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이 매일 같이 펼쳐졌고 그런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살면서 가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인생은 시트콤이다
불쑥 벌어지는 황당한 일을 겪을 때마다 이게 다 시트콤의 한 장면이고 나는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도피처럼 보일 수 있고 명랑 쾌활한 시트콤이 아니라 슬픈 시트콤이 될 수도 있지만 시트콤이라고 여기면 그 순간 심각하게만 느껴지던 일이 조금은 가벼워져 그럴 수도 있지 싶어졌다.
몇 주 전 디지털 도어록이 고장 나 집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도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심각해질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시트콤 같은 장면일 수 있다. 룰루랄라 산책을 갔다 와 맞닥뜨린 어이없는 사건으로 벌어지는 일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인생을 시트콤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좋은 면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을 시트콤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 무게도 모두 다르겠지만 일단 예기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생각되던 일에서 무게가 덜어져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지 하며 자신을 다독일 수 있다. 그리고 약간 거리를 두고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할까. 심각한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두 번째 인생을 약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와도 이어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심각한 일이 심각하지 않게 생각되면서 그냥 허허 하고 웃을 수 있다. 부정적으로 기울던 마음에 긍정적인 마음이 조금 더 더해져 긍정적이 되면서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되지 않아 다행이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디지털도어록 사건도 사실 한 주 늦게 벌어졌으면 한파가 몰려와 가장 추웠던 일요일에 밖에서 벌벌 떨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나마 따뜻했던 날에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뭐 그날 일어난 일이 어떻게 보면 시트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기도 했다. 디지털도어록이 고장나는 일이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주변 그리고 그 주변의 주변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으니.
세 번째 나중에 나만의 이야깃거리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시트콤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대부분 나중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웃긴 에피소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추억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할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 비둘기 똥을 두 번 맞았다든지 계단에서 굴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계단 가장 아래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상태였다든지
급출발한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내 어깨를 지하철 손잡이처럼 한참을 잡고 있었다든지 하는 사건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인생은 시트콤이라면서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야기하기도 한다.(뭔 이런 이상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일을 많이 겪는지...)
시트콤이라고 뭉뚱그려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그 무게가 상당한 일들도 많다. 작년 회사를 다니면서 이것도 인생 시트콤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같이 있던 디자이너가 너무 슬픈 시트콤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으니 주변에서 보기에는 시트콤이라고 넘어가기 어려운 일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면 마음이 그래도 조금은 편하기 때문이다.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걸 살아온 날이 많아질수록 깨닫고 있다. 올해는 시트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가다 서다 사이에도 시트콤이라고 생각할 만한, 조금은 인생에서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일은 분명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 일상에 잠식되어 너무 무거운 일상이 되지 않도록 나중에 침대에 누워 허허 하고 웃을 수 있을 만한 일이 생겼을 때 인생은 시트콤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럼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져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