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tobadesign Jul 24. 2021

어느 여행 작가의 성모상

두 번째 인터뷰

눈을 들면 한동안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었다.

일을 하며 원고를 들여다보다가도 딴짓을 하다가도 자꾸 시선이 갔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더 자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책상 한쪽에 조용히 놓여 있던 성모상.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종교가 기독교라고 이제는 말할 수도 없다. 차라리 무교라고 하는 편이 정직할지도. 어느 날 둘로 깨져서 망가진 작은 성모상의 수선을 의뢰받았다. 그리고 킨츠기로 수선하는 내내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분명 킨츠기를 의뢰한 분도 그동안 성모상을 바라보며 수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상이 망가졌을 때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을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여행작가에게서 성모상과 함께 일본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mina perhonen)의 나비 접시, 어머니께서 쓰시던 잔 등의 수리를 의뢰받았다. 좋은 것을 아껴가며 오래 사용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물들에 기억과 추억과 이야기가 그대로 농축되어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미나 페르호넨 브랜드의 그릇을 수선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기쁨이기도 했다.


조심조심 작업을 시작한다. 성모상 외에는 크게 깨진 그릇들이 아니고 이가 나간 정도였지만, 킨츠기로 수리하는 시간은 일주일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최소 한 달 반에서 두 달. 성모상은 기물 특성상 접착제를 사용했지만 보통 깨진 기물은 먼저 옻과 밀가루로 만든 천연 접착제로 붙여 건조한다. 그리고 이후 과정은 이가 나갔거나 금이 간 그릇 작업 과정과 같다. 파인 곳을 채우고 건조하고 갈아내고 미흡한 부분을 다시 채워 건조하고 갈아낸다. 그리고 금이나 은을 올리기 전에 바탕을 만들고 건조하는 과정을 최소 세 번 진행한다. 이러한 시간들이 더해지면서 잠시 멈추었던 기물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과정을 반복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리해 보일 수 있지만 손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들은 작업하는 내내 마음을 투명하게 해 준다.


얼마 전에 여행작가분에게서 밤에 급하게 연락이 왔다. 새로 시작하는 책방을 위해 구매한 조명을 상자에서 꺼내다 깨져서 킨츠기로 수선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이번에는 킨츠기 도구를 준비해 이야기가 잠시 멈춘 기물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한 이야기를 잇기 위해.




        먼저 자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여행작가로 활동하다 콜링북스라는 3평 서점을 운영하게 된 작가 겸 책방지기입니다. 인생을 여행으로 생각하며 일상 여행에 관한 글쓰기와 좋아하는 책과 공간을 잇는 워크숍 등을 기획하면서 올 하반기에는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발산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도쿄를 수없이 여행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으며 24절기에 깨어 있고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고 하며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의 물건을 구매하면 오랫동안 사용하시는 편이신가요?

잔이나 그릇 등은 신중하게 구매하고 오래 사용하는 편이어서 킨츠기로 의뢰한 그릇과 성모상도 다 오래된 물건들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서점을 준비하면서 공간을 위해 처음으로 조금 비싼 조명을 구매하게 되었어요.


        수리를 맡기신 그릇은 언제 어떻게 구매하셨고 얼마나 사용하셨나요?

먼저 성모상은 도쿄 여행 중에 건축가 단게 겐조가 설계한 성당의 성물방에서 발견하고 구매했는데 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나비가 들어간 접시는 언제 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도쿄 오모테산도 힐즈 지하에 있는 패스더바톤(pass the baton)에서 구입했어요. 평소 도쿄에 자주 가서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그릇을 종종 샀는데 패스더바톤과 일본 디자이너 미나가와 아키라(皆川明)의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이 협업한 접시를 발견해 구매했던 것 같아요.


작은 잔은 엄마가 쓰시던 그릇인데 아마 유럽 여행 중에 사 오신 것 같아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엄마가 사용하시던 물건들이 하나하나 새롭게 다가옵니다.


위의 기물들 이외에 이번에 새로 킨츠기로 맡긴 기물은 제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공간에 포인트를 주고 싶어 산 조명이었어요. 미나 페르호넨의 웹사이트에서 구입한 뒤 배송대행업체를 통해 받았습니다.


        기물은 주로 언제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함께했던 기억나는 추억이 있나요?

성모상은 여행지에서 처음 만났기 때문에 여행을 가거나 타지에 갈 일이 있을 때 늘 손수건에 돌돌 싸서 가방 안에 넣어 다녔어요. 저의 작은 휴대용 성모님이랄까요. 저 혹은 다른 사람의 부주의로 잃어버릴 뻔한 적도 있었지만 다시 저에게 무사히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미나 페르호넨의 접시는 리사이클의 의미가 담긴 그릇인 데다가 평상시에 자주 먹는 과일이나 케이크를 놓기에 크기가 적당해서 여러 그릇 가운데 킨츠기로 의뢰한 그릇 하나만 구매했어요. 이 그릇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 여름날 미나 페르호넨 매장을 찾아 골목길을 걷던 제가 떠오릅니다. 요즘에는 일본에 가지 못하니까 더욱 소중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그릇에 나비 그림이 들어가 있어 음식을 놓고 먹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서 혼자 즐기는 디저트 시간에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3, 4년에 한 번씩 지인, 성당분 들과 여행을 떠나셨어요. 엄마도 그릇과 잔을 좋아하셔서 여행 중에 눈에 띄는 그릇은 꼭 한두 개 기념품으로 사 오셨고 이 작은 잔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종종 사용했어요.


조명은 제가 앞으로 운영할 책방인 콜링북스의 카운터 위에 달릴 예정이에요. 미나 페르호넨 웹사이트에서 이 조명을 처음 발견했을 때 한눈에 반했는데 저녁에 그 불빛만 켜고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20 볼트에도 쓸 수 있는 제품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구입했어요. 도자기 조명이었기 때문에 서점 공사 현장에서 소켓을 하나 추가할 때도 관련된 분들이 모두 섬세하게 다루어주셨어요.


        기물이 어떤 이유로 손상되었나요? 그리고 그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성모상은 1박 2일 정도의 짧은 여행에도 꼭 함께했는데 어느 날 숙소에 도착해서 잘 보이는 곳에 꺼내 놓으려다가 손에서 미끄러졌어요. 바닥이 대리석이어서 그대로 두 동강이 나고 말았지요. 여행 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다른 지역에 갈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항상 챙겨 다녔고 낯선 여행지의 하루를 지켜주는 성모상이었어요. 그래서 깨졌을 때 정말 슬펐습니다.


미나 페르호넨의 그릇은 사실 이가 나간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킨츠키 수리를 맡길 기회가 생겨 집안의 그릇을 다시 살펴보다가 발견했어요. 킨츠키를 알게 된 뒤로는 깨진 그릇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

 

엄마의 작은 잔은 아마 닦다가 살짝 이가 나간 것 같아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의 물건이 정말 귀하게 느껴져요. 함부로 버릴 수 없고 또 엄마와의 추억이 유난히 많은 저에게는 그 하나하나가 귀한 기억이거든요. 많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꼭 잘 고쳐서 쓰고 싶었어요.


미나 페르호넨의 조명은 조명 공사 담당자분들이 최대한 공사가 마무리된 뒤에 꺼내라고 하셨는데 제가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조명을 꺼내다가 그만 조명 갓 부분과 위의 연결 부분이 부딪히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깨졌습니다.


        대부분 그릇이 깨지거나 금이 가면 버리는 일이 많잖아요. 그런데 버리지 못하시고 간직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접시와 잔과 성모상에 담긴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런 것 같아요. 오래 간직하고 싶은 물건은 곧 함께한 추억과 기억, 사람과 순간을 불러일으키니까요.


비교적 최근에 깨져서 킨츠기로 수선을 받은 조명은 큰돈을 주고 구입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깨져도 킨츠키로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버릴 수 없었어요. 오히려 이 조명이 깨진 뒤 '아, 이야기가 하나 더 생겼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정말 속상할 상황인데 제가 지닌 긍정적 낙관론(?)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릇을 수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이미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분이 킨츠기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해서 깨지거나 금이 간 것을 발견하면 바로 수선하면 된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조명도 깨졌을 때가 늦은 밤이었지만 바로 메시지를 드렸어요.


        그릇을 기다리는 동안의 마음이 궁금해요.

그저 다시 붙이고 사용하고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 같아요. 조명 같은 경우는 그걸 들고 움직이기가 어려워 아직 정돈이 덜 된 서점이었지만 출장(?) 방문을 부탁해 수리를 받았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킨츠키로 깨진 조각을 붙여가는 과정을 본 것도 서점을 완성해가며 느낀 큰 기쁨이었습니다.


        앞으로 그릇과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으세요?

오래오래 잘 쓰고 싶어요. 그리고 혹시 다시 깨져도 킨츠기로 수선을 부탁해 사용하려고요.

조명은 제가 앉아 있는 카운터 쪽에 달아둘 예정인데 눈에도 잘 띄고 뒷벽 포인트 컬러와도 무척 잘 어울려서 사진 촬영이나 크고 작은 아름다움을 담을 때 잘 사용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브랜드의 조명이 비추는 빛을 매일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라 앞으로 서점에서 지낼 시간이 길어지겠지만 기쁩니다.

깨지고 금 간 곳을 이어주고 <킨츠기: 우연의 이음> 프로젝트에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끼는 물건이 망가졌을 때, 그 순간에는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올라온다. 어딘가가 살짝 무너지는 느낌. 그 뒤에 몰려오는 자책하는 마음. 킨츠기는 어쩌면 그런 마음들에 자책하지 말라고, 다시 이야기를 이으면 된다고 다독여주며 버리는 선택지 외에 수선해 다시 쓴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킨츠기를 통해 상처 입은 기물과 바닥으로 치닫던 마음을 아름다운 선으로 이어 되돌리는 그 과정은 그 기물을 수리하는 이의 깨지고 상처 입어 조각난 마음까지도 다시 이어준다.


두 개로 조각났던 성모상은 어디에서든 다시 함께 할 것이며, 핀란드어로 '빛'을 뜻하는 Valo라는 이름의 조명은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콜링북스와 함께 이야기를 쌓아갈 것이다. 부디 이야기가 모이고 전해지고 연결되는 책방에서 책방지기에게 든든하고 환한 빛이 되어주길.




기물을 맡기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

여행 작가 그리고 콜링북스 책방지기, 이지나

콜링북스 @iam.callingbooks



*모든 인터뷰는 킨츠기 수리를 완료하고 기물을 전달한 뒤 서면으로 진행해 기획에 맞게 정리했습니다.

*이곳에 올리지 않은 킨츠기 작업 이미지는 인스타그램 @kotobadesign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미술가의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