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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tobadesign Jul 10. 2021

어느 미술가의 그릇

첫 번째 인터뷰

무광에 약간 초록이 감도는 회색, 각이 진 모서리마다 하얀 줄이 길게 들어가 있던 일자로 쭉 뻗은 컵.

2020년 초봄 즈음, 집 근처 빵집 2층 카페에서 이 기물을 처음 만났다.

컵은 얌전한 듯하면서 어딘가 강했고 왠지 따듯한 차를 따라 두 손으로 호호 불며 마시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추운 겨울날 어느 식당에서 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컵에 담긴 따듯한 차를 마셨던 기억과 중첩되어서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차가운 차보다는 따뜻한 차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컵.


우연히 킨츠기를 배우고 처음으로 내 그릇이 아닌 다른 분의 그릇을 작업하게 되었고 그것이 어느 미술가분의 컵이었다. 지금도 나는 킨츠기 초보 작업자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정말 이제 막 킨츠기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였다. 집으로 들고 온 컵은 물을 담아 보니 몸체와 바닥 부분에 얇게 금이 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였다.

그 주에 바로 킨츠기 선생님에게 상의한 뒤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컵, 초보에게는 너무 어려운 기물이라는 사실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된다.

일단 컵 입구가 좁아 손이 들어가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금이 간 부분의 틈을 메우기 위해 안쪽에 바른 사비(さび, 옻과 토분을 섞은 것)를 겨우겨우 갈아냈고 붓이 안쪽까지 잘 닿지 않아 바닥의 금 간 부분 일부는 사비 단계에서 멈춰야 하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붉은색 안료인 벤가라 작업을 할 때는 표면에 붉은색이 번져 안료가 남지 않도록 선생님과 둘이서 정말 열심히 닦아 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그만큼 시간도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기물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집중해서 메꾸고 갈아내고 선을 긋고 또 그었다. 그리고 그 작업들이 이어지는 동안 텅 비어 있던 내 마음도 정화되고 채워졌다. 당시는 퇴사라는 속 시원하면서 불안정한 상태로 돌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 시기 내게 이 컵과 함께하는 킨츠기 시간은 온전히 조용하게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먼저 자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쓸데없이 이쁜 것을 만들지만, 예쁘고 쓸모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하나의 물건을 구매하면 오랫동안 사용하시는 편이신가요?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면 옷도 그렇고 해지고 낡아질 정도로 입고 써요. 이런 습관을 계속 기르려고 합니다. 충동구매를 하거나 급하다고 아무거나 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물건을 오래 사용할 생각을 하고 고민하지요. 장바구니에 오래 담아 두고 꼭 필요한지 심사숙고해서 사려고 해요.


        수리를 맡기신 그릇은 언제 어떻게 구매하셨고 얼마나 사용하셨나요?

서울대학교 도예과에서는 학생이나 졸업생들이 자기가 만든 물건 가운데 B품이나 여러 이유를 지닌 작업과 제품을 가지고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오픈 스튜디오를 열어요. 킨츠기 수리를 맡긴 컵은 그때 가서 고른 것인데 컵을 만드신 분의 작업을 보고 정말 마음에 들어 정보를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분의 도예 작업이 좋아 구매했는데 정말 싸게 샀어요. 컵 입구가 약간 넓은 거 하나랑 컵 모양이 전체적으로 일자로 떨어지는 두 버전으로 샀지요. 이 컵들은 제 생각에 캐스팅 기법으로 만든 것 같은데 견고함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입구가 넓은 컵은 아직도 잘 쓰고 있지만 일자 컵은 금이 갔어요. 금이 간 컵은 킨츠기로 수리를 부탁드렸고 지금까지 잘 쓰고 있습니다.


        그릇은 주로 언제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함께했던 기억나는 추억이 있나요?

주로 커피를 마실 때 사용했어요. 아침에 드립 커피를 내릴 때 항상 컵을 고르거든요. 이 컵을 많이 썼어요. 손잡이가 없어서 컵이 뜨거우니 반만 채워서 마셨던 것 같아요. 당시 오픈 스튜디오에 가려고 정말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했어요. 이 컵을 고르러 가서 선생님도 뵙고 예전에 대학원 다닐 때 같이 작업한 분들도 다시 만나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릇이 어떤 이유로 손상되었나요? 그리고 그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제 생각에는 온도 변화가 너무 급격하게 일어나서 금이 간 것 같아요. 제가 엄청 뜨거워진 컵에 얼음을 넣었던가 봐요. 얼음이 뜨거운 물에 닿으면 금이 가듯이 그렇게 금이 간 것 같아요. 컵이 그렇게 되었을 때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처음 이 컵을 골랐을 때 경쟁이 정말 치열했어요. 어떤 분들은 자기에게 양보하라고 하고 저는 싫다면서 실랑이를 할 정도였지요. 이 컵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선반 가득히 제품이 몇 줄씩 있었는데 대학교 1학년부터 선생님까지 자신의 작업물을 팔았고 또 이미 활동하는 작가들이 자기 작업을 내놓기도 해서 그걸 사러 온 사람도 많았어요. 여러 사람을 제치고 어렵게 고른 물건이라 그런지 더 마음이 갔지요.


        대부분 그릇이 깨지거나 금이 가면 버리는 일이 많잖아요. 그런데 버리지 못하시고 간직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어떻게든 복구해서 다시 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금이 간 컵을 버리지 못하고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고 직원에게 물어봤어요. 이걸 고칠 방법이 있을까 하고요. 그러자 직원이 킨츠기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서 소개해줬어요.


        그릇을 수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다시 복구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컵을 다시 쓸 수 있게 되는 데다가 킨츠기 기법 자체가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상처를 더 돋보이게 하고 드러내는 거잖아요. 보통은 투명한 접착제를 바르고 상처를 숨기는데 그 상처 자체도 컵의 이야기가 되니까 그걸 드러내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반전이라고 해야 하나. 숨기고 싶은 것이 오히려 드러나니까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이고 말이지요. 기법 자체가 의미가 있었고 실제로 완성되었을 때도 예뻐서 그래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릇을 기다리는 동안의 마음이 궁금해요.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웃음) 삼 개월인가 걸렸을 거예요. 한 달 정도 기다리다가 중간에 물어보기도 하고. 마냥 기다리다가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언젠간 받겠지 하고 기다렸던 것 같아요.


        앞으로 그릇과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으세요?

그냥 오래 쓰고 싶은 마음이에요.




미술가분의 인터뷰지를 읽으며 '상처를 드러내고 더 돋보이게 하는 것' '숨기고 싶은 것이 오히려 드러나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에서 킨츠기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았다. 상처도 소중하게 여기는 그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 본받고 싶어진다.


최근에는 킨츠기를 의뢰받으면 의뢰하신 분에게 오래 걸린다고 미리 말씀드리고 중간 과정 사진도 보내드리는데 이 기물을 작업할 때는 전혀 그 생각을 못 했던 듯싶다. 상대방의 마음에 서서 그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그릇을 많이 기다리셨을 마음이 느껴져 죄송하다. 그리고 정말 미흡한 초보 킨츠기 작업자의 작업이라서 미술하시는 분이 보셨을 때 마감은 분명 거칠고 투박하고 꼼꼼하지 못했을 터인데도 잘 쓰고 계신다는 말에 너무도 감사하다.


이 작업을 할 때는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할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작업 전 사진은 물론이고 완성된 기물 사진도 제대로 찍어놓지 않았었다. 그래서 사진 속 기물에는 멋없고 꼼꼼하지 못한 마감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작업했을 때의 감각과 기분은 그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사진을 보니 마지막 금분 마감 작업은 한 번 더 해드리고 싶은 마음)



킨츠기는 깨지고 다쳐 어쩌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던 어떤 그릇과의 이야기를 상처를 어루만지고 드러내면서 다시 이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제 이 컵은 아름다운 상처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또다시 이어가게 될까.





기물을 맡기시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

미술하는 사람, 최경주



*중간에서 기물을 전해주고 조율해준 호지 님 감사합니다.

*모든 인터뷰는 킨츠기 수리를 완료하고 기물을 전달한  서면으로 진행해 기획에 맞게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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