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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Mar 20. 2022

화승畫僧-끝나지 않은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 교체 전시

다니는 병원이 이촌동에 있어서 약 타러 가는 김에 중박에 들렀다. 무려 월요일 오후 반차... 조금 오바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어 보이지만 안 그래도 요즘 중박간지 너무 오래돼서 잘 됐다 싶었음. 마침 볼 전시도 몇 개 있었다.

봄비가 꽤 많이 내린 날이었다. 월요일 오후인데다 날씨가 안 좋아서인지 박물관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중박에 올 때마다 반가사유상 두 분 잘 계신지 문안 인사도 드릴 겸 사유의 방은 꼭 한 번씩 들르는데 이날 역대급으로 사람도 없고 조용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사유'의 방에서는 뭘 사유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 불상의 자태야 몇 번을 보더라도 감탄이 아깝지 않지만, 뭐 무슨 소원이라도 빌어야 하는 건지... 내 개인적인 고민은 꼭 사유의 방 아니더라도 많이 하니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고. 세계 평화나 요즘 화두인 국민 대통합을 고민해야 할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가운데 '사유'라는 테마 아래서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진 않을까 하는 정도로 정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의 목적지 중 하나는 203호, 불교회화실이었다. 여기서는 3월 초로 종료된 [조선의 승려 장인] 연계 전시인 [화승 -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워낙 감명 깊게 본 전시라서 연계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빨리 다녀와야지 싶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통도사 팔상도 밑그림을 포함한 불화 14건, 14점이 전시된다. 시작한 시기는 2월쯤으로 보이는데 종료 시점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

[승려 장인] 본전시 관람 당시 구성이나 표현이 복잡해 보이는 회화보다는 아무래도 목각탱을 비롯한 조각 작품에 더 많은 눈길이 간 것이 사실이었는데 불국사 팔상도는 커다란 스케일, 높은 예술성, 밑그림과 완성작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물관 측에서도 따로 공간을 꾸밀 만큼 공들여 전시하기도 했었고.


위 사진은 [승려 장인] 전시에서 공개되지 않았었던 팔상도 밑그림인 '유성출가도'(踰城出家)다. 부처님이 성(벽)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통도사 팔상도 초본은 중박 소장품인데 이게 어떤 배경으로 중박 소장품이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왼쪽부터)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_의균 등 4명 / 지장보살과 지옥의 왕_석민 등 5명

다양한 불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의균과 석민이라는 분들은 승려 장인 전시 때 뵈었던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다. 그리고 스승인 의균은 은퇴한 이후에도 석민이 주도한 불사에서 대중의 식사를 책임지는 공양주로 참여했다고 한다. 당시 화승 사이의 관계나 승려 장인의 여러 면모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더 재밌는 것은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첨부한 정명희 큐레이터님의 글을 읽어보면 좋겠다.

(왼쪽) 약사정도에서 설법하는 약사불_신겸 등 7명 / 시왕도 밑그림과 완성작_밑그림은 신겸, 완성작은 신겸 등 2명

화승 신겸의 작품들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신겸은 [승려 장인] 전시에서 초상화까지 봐서 기억이 난다.

(왼쪽) 불상과 불화 조성의 공덕을 표현한 법화경 그림 / 조선 전기에 새긴 목판화

큰 불화 외에 불교 서적과 그림도 몇 점 전시되어 있다.

각수승 연희가 새긴 목판화

각수승 연희는 [승려 장인] 전시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승장이었다. 당시에는 목판화가 아닌 목판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원래 일할 때도 그렇고 좋아하는 운동선수도 그렇고 근면 성실한 하드 워커형을 선호하는 편이라 연희는 유독 기억에 남는 승장 중 한 명이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음.

조선 후기 유명한 화승 축연이 그렸거나 축연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불화도 전시된다. 축연의 작품으로는 [승려 장인] 전시에서는 첫 번째 파트에서 '금강산을 유람하는 나한'이 전시된 바 있다.

옆쪽으로 이동하면 구례 화엄사 괘불과 관련된 미디어아트가 재생된다. 미디어아트 관련해서는 아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올해 4월 13일부터 10월 16일까지 예산 수덕사 괘불 전시가 예정되어 있는데 전시가 시작되면 미디어아트 대신 수덕사 괘불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그런 거긴 한데, 이렇게 괘불 전시를 위한 공간이 따로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긴 하다.

동선상 3층 불교조각실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동선이다. 불교조각실에도 워낙 귀중한 작품이 많기 때문에 꼭 함께 들르길 추천. 나는 중앙아시아관에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전시 보러 가야 해서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승려 장인 전시가 끝난 지금, 서방정토로 오르는 승려의 옷자락을 붙잡고 남은 여운을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 싶다면 중박 불교회화실에 들러 [화승畫僧-끝나지 않은 이야기] 전시를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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