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특별전
미국 대사관 옆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12년 완공된 근현대사 박물관이다.
이번 전시는 고궁박물관 [고궁연화] 전시(올해 2월로 끝남), 서울역사박물관 [육조거리] 전시와 함께 광화문 일대의 역사를 다루는 세 기획전 중 하나다. 나는 조금 시간에 쫓기긴 했지만 다행히 세 전시를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 [고궁연화] 전시와 [육조거리] 전시 후기는 아래 포스팅들을 참고 바람.
[공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광화문] 전시는 3월 31일까지 진행되며 무료다.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2022년 3월 초 기준으로 따로 예약 없이 방문이 가능했으나 이런 유의 방역조치는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 홈페이지 또는 전화를 통해 예약이 필요한지를 한 번쯤은 확인해 보도록 하자.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전시실 건너편 다목적홀에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경치가 아주 좋았다. 뒤에 일정이 있어서 바삐 나오느라 사진으로 못 담아온 게 좀 아쉬움. 광화문 가는 거 어려운 일 아니니 다음에 또 가지 뭐...
전시를 보기 전, '광화문'이라는 공간의 범위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광화문이라고 하면 정말 말 그대로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 개인적으로는 광화문이라는 공간을 위 지도처럼 남북으로는 '광화문'부터 동아일보 사옥까지, 동서로는 포시즌스호텔부터 D타워까지 정도로 규정하고, 이 전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이정도로 생각하면 큰 무리는 없을듯?
전시는 광화문 일대의 변화를 시대순으로 조명하고 있다. 다만,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전시다 보니 시대 구분을 아주 칼같이 하기가 어려워서 마냥 '시간순'으로만 이해하려면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다. 특정 시기의 변화상을 테마별로도 잘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굳이 시간 순서에 얽매이지 말고 그런 다양한 모습들을 충분히 감상해 보자.
현대사 전시라는 특성상 사진자료를 비롯해서 포스터 등 당시 광화문과 그곳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내가 방문했던 날이 마침 20대 대선 본 투표날이어서 선거 관련 포스터를 사진으로 찍었다. 역대급 박빙이었는데 다들 투표는 하셨었죠?
신식 건물들이 들어서며 광화문이 현대적인 모습을 갖춰가는 시대의 모습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서울시의회 건물인 줄 알았더니 서울시민회관이라는 공연장이었지만 72년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대규모 화재가 나 철거된 뒤 들어선 건물이 세종문화회관이라고.
세종로 도로 폭이 확장되고 지하보도와 육교 등이 건설되면서 자동차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어가는 광화문의 모습이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핸들을 돌리면 당시 사진이 화면에 나온다. 조금 유치하게 보이긴 해도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전시 흐름 가운데 나름 귀엽고 재미있는 요소였다.
광화문 뒤 쪽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총독부 건물을 가린다는 이유로 경복궁 동쪽으로 옮겨졌다가 6.25 전쟁 때 심하게 훼손됐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것을 원래 자리(조선총독부 청사, 당시 중앙청 앞)로 옮겨 복원했다. 이때 복원된 광화문은 석조가 아닌 콘크리트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2000년대 다시 복원되었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광화문광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순신 장군 동상도 이 시기 세워진다. 군사정권의 정치적인 의도도 있었겠으나 폐허 속에 세워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이자 세종로 일대가 서울, 그리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 부근에서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흘러나온다. 갑작스러운 음악 감상 시간 ㅎㅎ;;;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경제, 문화, 사회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광화문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강남이 개발되고 과천에 정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에 몰려 있던 여러 기능들이 분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3부 '광화문 거리의 현대적 재구성' 파트다.
우리나라가 외형적 성장과 군부독재, 민주화 운동, 그리고 88올림픽 개최 등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광화문에도 하나둘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지금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쓰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중앙청 건물로 이전하는 등 큰 변화가 이뤄진다.
마지막 파트인 4부 '광화문 공간의 전환'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광화문의 변화를 보여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총독부 철거.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일이긴 하지만 내가 저 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 일단 건물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나 광복 50주년이라는 시기적인 의미를 고려해 보면 최소한 원래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건축사적인 의미도 있고 한국 현대사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한 건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철거보다는 이전 재조립 쪽을 지지했을 것 같다.
다만 이전 후 재조립은 철거보다 예산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 예산 등 여러 문제들까지 고려했을 때는 결국 철거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었겠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90년대 이후 광장이 조성되면서 지금 내가 기억하는 광화문의 이미지가 자리를 잡는다.
나가는 길에 무슨 체험형 장치가 있더라. '미래의 광화문에 바라는 점'을 써서 어디다가 뭘 비추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엽서 뒷면이 아니라 앞면에 그대로 써야 했었던 것 같다. 결국 불손한 답변을 쓰고 체험에도 실패해버린 슬픈 이야기...
부산에서 올라온 내가 처음으로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하고 느낀 때가 바로 광화문 광장을 찾았을 때였다. 경복궁 쪽을 바라봤을 때 보이는 잘 생긴 산봉우리들과 쭉 뻗은 대로, 관광객, 크고 작은 시위, 행인, 직장인으로 북적이는 거리,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해 멋들어진 건물들 등등,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싫어하는 말이지만 속된 말로 국뽕이라는 걸 느끼지 않았나 싶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내가 그때 그런 감정을 느낀 광화문이라는 공간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우여곡절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성은 나름 성공적이고 긍정적이지 않았나 하는 조심스러운 평가도 내려본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정치적 격변 속에서 시끌시끌한 시절을 보냈던 광화문은 또다시 변화를 앞두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광화문 광장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며 올해 여름 마무리될 예정이다.
또,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고 밝히면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동일한 공약을 문재인 대통령도 내놓았던 적이 있으나 경호와 시민 불편 등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무산된 바 있기 때문에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래도 일단 당선인의 의지만큼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들이 이후 어떻게 평가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광화문이라는 공간이야말로 역동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아닌가 싶고, 이런 측면에서 그 변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가 참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현대사 전시도 재밌네. 괜히 사진전 같은 것도 보러 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