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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Feb 21. 2022

고궁연화(古宮年華)

국립고궁박물관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특별전

학교 국사/근현대사 교육과정이나 여말선초를 다룬 드라마, 온라인 게시물 등을 통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경복궁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경복궁은 조선 건국 당시 정도전의 주도로 세워진 새 수도의 중심이자 정궁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잿더미가 되었고 고종 즉위 이후 흥선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위해 중건했지만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는 등등의 것들 말이다.


그러나 조금 휑한 느낌이 들긴 해도 여러 볼거리들이 많은 만큼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가고 이를 즐기고 있기 때문에 경복궁에서 아직도 고고학 발굴과 복원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도 경복궁을 종종 갈 때마다 전각 복원이나 보수를 위한 가림막이 쳐져 있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뭐 그냥 그러려니 했지 경복궁에 대해 장기간 체계적인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경복궁 복원사업 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경복궁이라는 문화유산이 옛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중간점검이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는 전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시 전반부에는 미디어아트와 함께 경복궁 훼손과 복원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시에서 대략적인 내용은 설명이 되고 있긴 하지만 아마 1990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복원사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면 전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먼저, 1990년 시작되어 2010년 끝난 1차 복원 사업의 경우 "경복궁의 중심축선상의 주요 전각(구 조선총독부철거, 광화문, 흥례문, 강령전, 교태전 복원 등)"*이 복원되었다. 90년대 초, 지방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다소 체감하기가 힘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철거와 수경사 30경비단 이전 등이 이 과정에서 이뤄졌으니 근현대사 측면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2차 복원 사업의 경우 2011년부터 지금도 진행 중이다. '고궁연화' 전시는 2차 복원 사업 중에서도 소주방 및 흥복전 등 궁중생활권역, 그리고 향원정에 대해 2021년까지 진행된 1단계 복원수리사업*의 과정과 성과를 주로 조명하고 있다.


*"제2차 경복궁 종합정비 사업 개요", 문화재청 행정자료, 링크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 홈페이지 자료마당, 링크

입구쪽 통로를 지나면 복원을 위한 실측이나 발굴 내용을 정리한 노트들이 전시되어 있다.


'복원' 사업인 만큼 과거의 형태를 제대로 확인하고 옛사람들의 행적을 더듬어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느낌을 주었다.

솔직히 말해 이 전시가 내 기준에서 '볼 것'이 많은 전시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경복궁의 고고학자들' 영상은 되게 볼 만했다. 경복궁 발굴에 참여한 교수님이랑 학예연구사분들 세 분 정도 나오는 대담 영상이다. 발굴 과정이나 고고학적 관점에서 보는 경복궁, 그리고 경복궁 복원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전문가의 입으로 알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거 빔프로젝터 설치나 영상 나오게 하는 구도는 되게 멋있긴 하다. 하지만 영상 분량이 꽤 긴 편이고 내용이 정말 재밌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보기 편하게 넓은 자리를 마련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나중에 유튜브나 이런데 따로 좀 올려줬으면...

그 외 전시된 출토 유물들이나 궁궐 건물에 사용된 자재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면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경복궁의 모습과 훼손된 후의 경복궁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공간상의 제약으로 인해 층을 다르게 배치해둔 것 같은데 이 모형 역시 전시의 일부이니 꼭 보고 가도록 하자 직접 보면 되게 멋있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다.

앞에서 말했듯이, 서울 한복판에 그냥 '운치 있고 보기 좋은' 관광지로 존재하는 경복궁이 아니라, 지금 현재도 발굴과 복원 및 보존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경복궁이 가지는 생명력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서 새롭고 좋았던 전시였다.


전시 제목 고궁연화의 '연화'가 '年華'(빛나는 해), '煙花'(봄의 경치) 두 가지 중의적인 뜻으로 경복궁 복원이 끝난 뒤 맞이할 경복궁의 빛나는 시간이자 봄을 뜻한다*는데 이런 측면에서도 상당히 어울리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내가 이 전시를 볼 때쯤 김포 검단 신도시 왕릉 아파트 논란이 가장 뜨거웠기 때문에 문화재의 복원과 보존이라는 테마와 겹쳐서 많이 생각을 해보게 되기도 했다. 이게 뭐 여기서 내 생각이 어떻다 저떻다 할 문제는 아니고, 그런 입장을 당사자에게 강요하기도 힘들다고는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런 문화재의 가치를 왜, 그리고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한 번쯤 고민할 필요가 있는 시점인 것 같다.


여러모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나 느껴지는 바도 많고 국립고궁박물관이 경복궁 바로 옆에 위치한 만큼 경복궁을 들르면서 한 번 보면 참 좋을 만한 전시라는 생각이다. 올해 2월 말까지 진행되니 아직 시간도 꽤 남았다.


*"30년간의 경복궁 복원 이야기, 전시회로 만난다", 뉴스1, 윤슬빈 기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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