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를 모르겠는데, 어렸을 때 이집트 관련된 것들을 상당히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미라" 같은 영화 때문인지, 스핑크스나 피라미드같이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유적 때문인지 아무튼 이집트의 신비로움이 어린 나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었던 것 같다.
솔직히 이집트사는 그 방대한 양과 깊이 탓에 나이를 먹을수록 눈이 잘 가지 않다보니 오히려 지금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종종 이집트 관련 콘텐츠를 마주칠 때마다 어릴적 갖고 있었던 마음이 새록새록 다시 생각나는 것 같다.
그러던 차에 마침 국립중앙박물관 3층 이집트실에서 [이집트-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보러 갔다.
이집트실은 지난 2019년 아시아관이 '세계문화관'으로 개편되면서 신설된 전시실로,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의 이집트 유물을 2년여간 전시하고 있으며, 올해 3월 1일까지 유지될 예정이다.(진짜 얼마 안 남았다) 관람료는 무료다.
사실 국중박에 이집트실이 2년 동안 상설전시처럼 유지된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면 약간 뜬금없어 보이긴 한다. 거기다 전시된 유물들이 우리나라에서 출토되었을 리는 만무하고(...) 누군가가 기증을 한 것도 아닌,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온 것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 확장된 시선"이라는 문구처럼 보다 넓은 시선으로 다양한 문명과 문화, 역사에 대한 궁금증 및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 아닌가 싶다.
솔직히 말해 전시 규모나 형식상으로는 솔직히 뭐 되게 감동적이다 싶은 유물은 없다.
전시를 들어가면 이것 전시된 유물들이 많은데 텍스트와 함께 공부하듯이 보기 좋게 구성되어 있으니 여유있는 마음으로 설명문과 유물을 비교해가면서 감상하면 되겠다.
위 사진은 이번 전시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 중 하나인 나무 고양이 조각상. 사실적으로 잘 만든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역사, 환경, 생활상, 신앙 등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본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전시된 유물과 설명문들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양이와 함께 정교하고 화려해서 인상 깊었던 따오기의 관. 따오기는 이집트에서 한때 최고신으로 받들어진 '토트'를 상징하는 동물인데, 토트신의 형상을 재현하기 위해 이런 조각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 이름이 '관'인 것은 실제로 안에 따오기 미라가 들어있기 때문. 토트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이라는 설명이다.
오른쪽 사진은 이집트 신화 관련 영상물이다. 전시실 곳곳에 영상이 나오는데, 따분한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 아니라 만화처럼 표현된 영상들이라서 어린이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이집트 하면 빠질 수 없는 미라와 관.
사자의 서 등 이집트 장례 절차나 매장 풍습을 알 수 있는 공간도 잘 마련되어 있다.
부장품으로 들어가는 부적들인데 세세하게 조각되어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상형문자 관련 조각이나 비석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음. 이건 어디 신전에 놓여 있었던 조각상이라고. 취하고 있는 포즈나 표정이 뭔가 재밌어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전시 규모가 크거나 아주 막 무슨 이집트 관련 역사상 최고의 명품의 있으니 꼭 와서 봐야 한다 이런 평가까지는 할 수 없겠으나 실제 유물과 함께 이집트의 다양한 면모를 알아볼 수 있는 전시였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전시라서 그런지 내 어렸을 적 모습처럼 이집트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느끼는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전시를 즐기고 있었다.
보통은 그렇게 사람, 특히 애들 많은 걸 싫어하는데 그들이 전시에 집중하는 모습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보고 들으니 나에게는 그게 전시의 또 다른 재미가 되었다. 이를테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거리면서도 전시된 유물이 무섭게 느껴지는지 가까이서 들여다보기를 꺼려 하는 아이의 모습이라든지, 누워있는 미라를 보고 "갑자기 살아나면 어떡해?", "왜 휴지로 이렇게 해놨어?" 등등 재밌는 질문을 던지는 모습들은 꽤나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험상 유일하게 사람 많을 때 봐서 좋았던 전시인 듯.
사실 나도 어릴 적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가 2005년 부산에서 열린 대영박물관 전시다. 물론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의 경험이 지금까지도 나의 관심사나 취미활동에 나름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확장된 시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생각을 해본다.
아쉽게도 이번 전시는 3월 1일에 끝난다. 국중박에 직접 확인해 보니 이집트 전시가 끝나면 메소포타미아 관련 전시실로 꾸며진다고 한다. 해당 전시는 준비를 거쳐 올여름쯤 전시실을 열 계획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 관련 유물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상당히 기대가 되는 바다. 아닌 게 아니라 올해 5월부터는 특별전으로 아즈텍 관련 전시도 예정되어 있음.
블로그 운영 차원이기도 하지만 각 잡고 전시에 취미를 들이니 너무 볼 게 많아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아무튼, 이번 포스팅에서 다룬 [이집트-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는 이집트 관련해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전시인만큼 아직 못 본 분들이 있다면 끝나기 전에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시라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