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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Jan 15. 2017

바른 젓가락질

밥만 잘 먹더라

취업하려면 젓가락질까지 연습해야하더라구요


취준생인 제 눈을 의심케한 기사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우리 기업들이 으레 하곤하는, 수많은 덜떨어진 짓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습니다. 사기업에서 뭘 하든간에 제가 알 바 아니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시 댓글을 통해 벌어진, 젓가락질 그 자체에 대한 논쟁은 그냥 넘길 일은 아니었습니다. '바른 젓가락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 부터 '젓가락질이 우리의 전통 문화이냐' 까지, 우리 식문화 속 젓가락질에 대한 물음들은 가치있는 논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이와 관련된 재밌는 기사를 또 봤습니다.

 이 기사에 나온 김필수 한국젓가락협회 회장님에 따르면, 우리 성인 10명 중 6명은 "젓가락질을 잘못된 방식"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이 "1000년간 이어진, 전통적인 젓가락 문화"를 훼손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젓가락협회 회장님의 우려 그리고 기사 밑에 어김없이 열린 댓글 콜로세움을 보면서, 저는 '젓가락질 면접' 때와 비슷한 의문과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것을 좀 찾아본 뒤 글로 풀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1. 한국 식문화에서 젓가락


한국, 중국, 일본은 젓가락을 사용하는 식문화를 가진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그리고 세 국가는 각국의 식습관에 맞는 독특한 젓가락 문화를 발전시켜왔죠. 삼국 중 우리나라만 쇠젓가락을 사용하고... 뭐 그런 얘기 들어보셨죠? 그러니까, 젓가락 자체는 분명 문화적인 특수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우리는 젓가락보다, 숟가락과 더 친숙했다는 사실도 들어보셨나요? 

 발굴조사나 연구 자료를 보면 국과 밥이 주된 식사였던 우리 조상님들은 밥상에서 젓가락보다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젓가락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것은 조선 후기에나 일어난 일이라고 하네요. 그마저도 숟가락이 우세한 상황이었구요.(1) 지금까지도 한국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병용하는 유일한 젓가락 문화권 국가입니다.(2)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젓가락을 주제로 논쟁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1000년간 이어진 우리의 젓가락 문화"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젓가락이 아닌, 숟가락이라는 역설적인 결론이 나오네요.


2. "바른 젓가락질"이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른 젓가락질은 '음식을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젓가락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뭐, 바른 젓가락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른 이유이겠죠?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영하 교수님은 소위 우리가 바르다고 알고 있는 젓가락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른바 올바른 젓가락질은 옛날 무거운 유기 젓가락을 사용하던 시절 만들어진 자세다. 유기 젓가락이 사라졌는데도 그 자세만 관습처럼 남아 있는 것(3)


유기 젓가락은 현대의 스테인리스 젓가락보다 두껍고 2~3배 무겁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가볍고 가는 젓가락이 보편화된 지금 시대에 과거의 젓가락질이 바르다며 표준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닐까요?


3. "바른 젓가락질"이 "바른 식사예절"일까?


제가 보기에 바른 젓가락질과 바른 식사예절은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만, 한국젓가락협회 회장님과 같은 주장을 하는 분들은 바른 젓가락질을 곧 바른 식사예절로 간주하고 계십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사고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바로 위에서도 등장한 주영하 교수님은 이러한 인식을 일제의 잔재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인에 의한 쌀 품종 변화, 총독부의 정책 등이 젓가락에 대한 우리 고유의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것이죠.(4)

 또한 일본 사람들이 원래 젓가락질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젓가락에 대한 금기나 예절이 엄격하고 '바른 젓가락질에 대한 책', '젓가락 박물관' 등 관련 단체와 행사등이 풍부하다고 하네요.


 이쯤되니, '기업철학을 반영해' 젓가락 면접을 봤던 기업의 철학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지네요.


4. 전통도 아니고 바를 필요도 없다면...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저는 소위 '바른 젓가락질'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의 1000년 전통도 아닐 뿐더러, 그것을 식사 예절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일본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물론 젓가락 사용 자체의 효용 그리고 문화적 특수성과 가치는 지켜가야겠습니다만, 아무리 젓가락이 소중하다고 한들, '젓가락'과 '젓가락질'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는 점을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이제 쓸데없는거갖고 감정 상하지말고, 밥이나 맛있게 먹읍시다.




나름대로 자료조사를 했고, 그 근거를 밝혀놓기 위해서 미주를 달았는데요. 레포트 쓴지 너무 오래돼서 형식같은건 다 까먹었으니... 이해바랍니다. 죄송해요, 저를 가르치신 존경스러운 교수님들!

 


(1)고고자료로 본 조선시대의 젓가락 연구, 정의도, p67.

(2)중국은 국물 요리를 먹을 때 숟가락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일본은 젓가락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한식 젓가락의 문화적 특성에 관한 연구, 이승은, 윤민희,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20(4), 2014.12, pp487~488.

(3)국민일보 기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986343.

(4)위와 동일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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