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정체가 궁금하다
인터넷 상에서 까르보나라 레시피를 수식하는 단어 중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죠. 위의 단어들을 대충 원조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테니,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원조가 아닌 까르보나라'가 많다는 거겠죠? 크림 넣은... 그거 있잖아요 왜.
몇 년 새, 우리나라에도 크림을 사용하지 않는, 오리지널 까르보나라 레시피가 많이 알려졌는데요, 오히려 기존의 크림 파스타가 '까르보나라'로 남고, '오리지널 까르보나라!'라는 이름의 새로운 레시피가 등장한 것 같아 재밌기는 하더라고요.
뭐, 제가 이탈리아 사람이나 로마 사람도 아닌데 크림을 넣는 까르보나라를 보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자격은 없을 겁니다. 그냥 항상 그래 왔듯이, 제 기본적인 생각은 그거예요, 호기심입니다. 뭐가 까르보나라고,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우리에게 익숙한 크림 파스타로서의 까르보나라는 이탈리아의 까르보나라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까르보나라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 생각이에요! 할 말이 많아서 글이 좀 길어질 것 같긴 해도, 바쁜 와중에도 힘들게 쓴 글이니, 이를 악 물고 달려봅시다.
먼저, 까르보나라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요. 하지만 그 중 어느 하나가 확실하다, 정설이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일단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그 이름에서 유추한 것인데요. '광부(Carbonaro)'라는 단어와 유사하기 때문에, 중부 이탈리아의 광부들이 먹던 음식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설로,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등장했던 급진 비밀 조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스스로를 광부로 위장했다는데요, 그래서 조직 이름이 '광부들(Carbonari)'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까르보나라 레시피가 문헌상에 등장한 시기가 2차 대전 이후라는 점, 그리고 레시피의 발생지가 로마시로 추정되는 점 등을 바탕으로 연합군의 로마 해방 이후, 미군이 들여온 다량의 계란과 베이컨이 레시피 출현의 계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은근슬쩍 부대찌개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럴듯한 것 같은데 뭐... 이탈리아 사람들이 되게 싫어하지 않을까요?
까르보나라의 유래에 대한 유력한 설들은 이 정도입니다. 그 유명세에 비해서 역사도 그리 길지 않은 것 같고, 명확한 스토리도 딱 없어서 놀라기는 했어요. 그러면 배경 지식은 여기까지만 알아보고, 실제로 한번 만들어봅시다.
필요한 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1인분)
'스파게티 카치오 에 페페'에서 사용했던 페코리노 치즈입니다. 코스트코에서 묵직한 걸로다가 사뒀더니 꽤 오래 쓰네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까르보나라는 로마 쪽 음식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로마 쪽에서는 페코리노 치즈를 많이 사용하니, 소위 '오리지널' 레시피에는 보통 페코리노 치즈를 많이 쓰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또는 파마산)를 사용하셔도 문제없습니다.
흰자를 같이 써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저는 노른자에 면수를 좀 더 넣어주는 쪽이 좀 더 좋더라고요. 개수는 달걀 크기에 따라서 조절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풍미도 더해주고, 베이컨이 눌어붙지 않도록 도와줄 겸 올리브 오일을 넣어줬습니다. 기름이 너무 많다, 혹은 베이컨에서 나오는 기름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하시는 분들은 생략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까르보나라의 포인트죠. 맛으로나, 겉보기로나 그렇습니다. 보통 동행하는 친구인 소금은 오늘 등장하지 않습니다. 치즈와 베이컨에 이미 짭짤함이 많기 때문인데요, 만들어 보니까 내 입맛에는 너무 싱겁다! 하시는 분은 소스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 추가해주셔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까르보나라에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재료는 구안찰레입니다. 돼지 볼살 또는 턱살을 소금과 후추에 절인 육가공품인데요. 부드럽고, 열을 가하면 맛있는 기름이 많이 나와서 별미랍니다.
다음 선택지는 판체타입니다. 돼지 뱃살 부위를 소금에 절인 것으로, 접근성 때문인지 지역색 때문인지(판체타는 염장 과정에서 향신료나 채소를 더하기도 하기 때문에,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가 존재합니다) 이탈리아 내에서도 구안찰레 대신 판체타를 쓰는 것에 큰 거부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이 베이컨인데요. 다른 두 재료에 비해서 가지는 가장 큰 차이점은, 훈연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사용 부위는 판체타와 같은 뱃살 부분이지만, 훈제향이 더해진 것입니다.
까르보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위 세 가지 재료 중 하나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구안찰레와 판체타는 이탈리아 전통 재료니까, 뭐 본토에서 많이 쓰겠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우리는 베이컨을 씁시다. 좋은 베이컨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까르보나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이마트 PB상품인 '제대로 만든 두툼한 베이컨'이 구하기도 쉽고 맛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파스타 용으로는 살짝 두툼한 게 괜찮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사용한 제품은 '햄스빌 베이컨 스테이크'라는 제품인데요. 두툼하기는 했지만 맛은 그냥 그랬습니다...
보통 1인분에 2줄 정도로 생각하고 넣습니다.
스파게티, 링귀네, 펜네, 부카티니... 웬만한 건면이랑 잘 어울려요. 옛날에 한번 생면으로도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맛은 둘째치고 좀 뭐랄까... 무거워서 별로였네요.
기호에 따라 향신료나 채소를 넣어주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만, 엄격하게 '오리지널'이라는 의미에서 해당되는 재료는 아닌 듯하네요. 어디까지나 개인 기호 차원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싶습니다.
알프레도, 크림을 넣은 까르보나라처럼 '크림 파스타'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사실은 미국식이에요. 미국 사람들 요리에 크림 참 많이 넣던데... 전 왜 그러는지 잘...;;; 어쨌든 애초에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이탈리아 요리에 크림이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이탈리아 사람들한테 크림은 자기네 나라 요리 재료라고 딱!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안 그래도 식문화와 전통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보니 '우리는 저런 거(크림) 잘 쓰지도 않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전통을 망가뜨린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 같아요. 뭐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가는 것이, 만약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주문했더니 생크림 넣은 육수가 나온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요?
무엇보다 드셔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크림 파스타와 까르보나라는 맛과 식감, 형태까지 완~전히 다릅니다. 다시 말해서, 그냥 다른 요리인 건데요, 그러니까 '까르보나라에 크림을 넣냐 마냐' 이 문제는 어떤 방법이 우월하냐, 맛있냐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조리과정을 알아봅시다.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치즈를 미리 갈아 놓읍시다. 불에 뭐 올려놓고 하면 되게 급하고, 실제로 시간에 쫓기게 될 수도 있거든요.
까르보나라 소스 자체는 굉장히 간단해서, 5분 정도면 됩니다. 사실상 베이컨이 익는 시간이 소스 조리 시간이기 때문에, 소스 조리 전에 파스타를 올려놓읍시다. 그리고 한 숨 돌린 다음에 소스를 만들기 시작하시면 시간이 얼추 맞을 것 같네요.
팬에 기름을 두르고 베이컨을 구워줍니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베이컨 기름이 이 소스의 숨은 실력자 같은 느낌이거든요.
베이컨 굽는 정도는 기호에 따라서 결정하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뭔가 생고기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햄이든 베이컨이든 상당히 바짝 익히는 경향이 있어요.
갈아놓은 치즈 위에 노른자를 살포시 얹고, 후추를 넉넉히 뿌려주세요.
그리고 노른자를 풀어서 모두 섞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치즈와 노른자가 섞이면 상당히 뻑뻑하다는 느낌이 드실 텐데요, 소스라기보다 일종의 반죽처럼 보이기도 하죠? 일단 지금 상태에서는 걱정하지 마시고 잘 섞어만 주셔도 되겠습니다.
이렇게요. 베이컨에도 관심을 계속 가져 주시고요. 잘 익고 있네요.
면이 적절하게 삶아진 뒤에는 팬에 넣어주세요. 베이컨 기름에 면이 잘 코팅되도록 이리저리 잘 저어주시면 되겠습니다.
2에서 만든 노른자+치즈+후추의 농도를 '소스'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조절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방법은 간단한데요, 따뜻한 면수를 조금씩 넣어주는 거죠.
반국자, 한국자씩 넣어가면서 농도를 확인해주세요. 더 이상 뭔가 뭉쳐져 있다거나 빡빡한 느낌 없이 잘 흐르는 모양새가 된다면 파스타에 버무릴 준비가 된 것입니다.
'전통적인' 조리법은 불을 끄고,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팬에 소스를 부어 면과 버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살짝 까다로운 게, 팬이 덜 식은 상태에서 소스를 올리면 계란이 너무 익어서 스크램블 에그처럼 된단 말이죠.
그래서 저는 차라리 반대로, 뜨거운 면과 기름을 소스 그릇으로 옮겨 버무리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카치오 에 페페를 만들 때랑 비슷하게요. 실제로 이탈리아 사람이 제작한 레시피 영상에서 이런 방식으로 한 경우가 있었는데요, 어김없이 '나 로마 사람인데...'로 시작하는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제가 볼 땐 맛이나 식감에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참 재밌습니다~
어쨌든, 면을 버무리시면서도 소스 점도를 확인해주세요. 너무 뻑뻑한 것 같으면 면수를 조금 더 추가해주시고요, 너무 묽은 것 같으면 치즈를 더 갈아 넣어주시면 돼요.
잘 버무린 파스타를 접시에 담고, 간 치즈와 후추를 살살살 뿌려주시면 완성입니다!
만들다 보니 어째 2인분에 가까운 양이돼서 좀 많았어요. 파스타의 경우에는 계속 플레이팅 연습을 하는 중이긴 한데, 되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느끼는 점이라면, 아무래도 플레이팅 이전에 적당한 양(포션:portion... 이라고 하나요?)을 먼저 잡아야 예쁘게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소한 소스가 면에 잘 코팅되어있는데요, 치즈와 노른자가 입에 와서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에요. 포인트로 치고 올라오는 후추향이나 바삭하게 씹히는 베이컨의 맛도 상당히 조화가 잘 어우러지고, 치즈향도 놓칠 수 없겠죠?
제가 지금까지 다뤄온 파스타 레시피가 다 그렇긴 했지만, 까르보나라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쉬우면서 맛있는 파스타입니다. 기름지고, 고소하고, 씹는 맛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은데, 음... 좀 느끼하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제 입맛에는 잘 맞습니다! 저는 어차피 이제는 완전히 양식에 익숙해져서요 ㅎㅎ
솔직히 말해서 크림을 넣은 까르보나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워낙 나쁜 소리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잘 먹게 되질 않더라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글을 통해서 '그건 가짜다!'라는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한국인인 제가 굳이 그럴 이유도 없고, 또 음식이라는 것은 먹는 사람이 맛있어야지 그게 최고니까요.
다만,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서로 주장이 다르고, 싸울 일이 생겨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왜 저런 말을 하나, 과연 팩트는 무엇인가,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냐 아니냐는 차이가 크잖아요.
자소서를 하도 쓰다 보니 별 거 아닌 말도 장황하게 포장하는 것 같네요. 어쨌든 3월에는 그야말로 바빴습니다. 글도 많이 못 썼고... 아마 당분간은 또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마음 같아서는 올 상반기 나머지는 쭉~바빴으면 좋겠습니다. 인적성도 보고, 면접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취직이 되면 보다 더 안정적으로 좋은 글을 꾸준히 쓸 수 있게 될 것 같네요! 인사담당자님 보고 계신가요?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