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부엉씨 Jun 17. 2017

급식이 미래다

잘 먹는 것도 배워야 된다

급식


 이 단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제가 급식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의미할 뿐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좌우 이념을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여겨지더니, 곧 뒤에 벌레충(蟲) 자를 붙여 미성년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다가, 이제는 아주 모든 미성년자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처럼 굳어졌더라고요.


테레사 메이 vs 제이미 올리버


 이처럼 변화무쌍한 급식의 매력(?)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며칠 전, 영국 총선 과정에서 급식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진 것을 봤는데요.

사진1

 

 집권당인 보수당이 현재 초등학교 1~3학년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점심 급식을 중단하고, 대신 아침 급식을 제공한다는 공약을 발표한 것입니다. 보수당은 그 결과 절감되는 60억 파운드 가량의 예산을 교사 및 교육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보수당의 공약은 제한적이나마 시행되고 있던 무상 급식을 축소한 것인데요. 이에 영국 급식의 아이콘, 제이미 올리버가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사진2

 

 제이미 올리버는 영국 학교의 급식 문제를 공론화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요리사입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학교 급식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교육을 강조해왔기에 그는 보수당의 급식 축소 정책에 대하여 몹시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메이 총리와 보수당의 정책이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한 비만 및 성인병 발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바른 식습관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고 교육함으로써 오히려 향후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테레사 메이 총리와 제이미 올리버의 논쟁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의 무상 급식 논쟁과 닮아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먼저 복지 예산 문제를 지적하는 보수당의 논리는 비슷하네요. 반면 제이미 올리버가 보여주듯, 급식 제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급식이 할 수 있는 일


 아마도 우리는 '무상'이라는 말에 너무 사로잡혀서는 급식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왜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무상 급식에 찬성하는 분들조차 '고작 애들 밥 주는 일'이라는 말을 하십니다만, 정말 그런가요?

 '먹는 일'은 더 이상 그저 '열량을 보충하는 일'이 아닙니다. 방송, 책, SNS 같은 매체를 보시면 그 점은 확연히 드러납니다. 빵 한쪽을 먹어도 나름의 의미를 찾고, 또 그것이 문화가 되는 게 요즘 세상인데, 유독 급식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쟁점이 되는 말이 '비용'이더라고요. 많은 분들께서 급식을 단순히 '애들 공부하는데 필요한 연료를 주입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따름입니다.


 사실 급식이 할 수 있는 일은 엄청 많거든요. 제이미 올리버를 통해 살펴본 영국의 사례 이외에도, 코스로 제공되는 점심 식사를 통해 식사 예절과 자국 식문화를 조기에 교육하는 프랑스의 사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로 유명한 일본의 사례는 우리가 급식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보여줍니다.

 즉, 급식은 식문화를 교육하는 일입니다. 복지와 인권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미덕을 존속시키기 위한 사회화 수단으로 급식은 큰 가치를 지닙니다. 물론 과거에는 그러한 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가정이 더 이상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수행해서도 안 되는 시대가 되었어요. 제가 급식에 대해서 사회와 국가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사진3

 

 우리 사회에서 급식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무상' 급식을 두고 시작됐다는 사실이 참 불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무상'이라는 말은, 코끼리거든요. 무상이냐 유상이냐, 비용이 얼마나 들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논박하는 일은, 모두가 그 코끼리 등에 올라탄 채로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맙시다!'라고 외치는 일과 다름없어 보이네요.

 하지만 이제는 시간도 많이 흘렀고 세상도 바뀌었습니다. 최근 흐름을 보면 적어도 복지 영역에서는 급식에 대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된 분위기더라고요. 이제는 좀 시야를 넓힐 때도 된 것 같습니다. '먹는 것은 본능이지만 잘 먹는 것은 기술이다'라는 프랑스 속담으로 글을 마무리 지을게요.

 감사합니다~



참고 자료


사진1. 테레사 메이 총리 사진

사진2. 제이미 올리버 인터뷰(영상 캡처)

사진3. '다음 침공은 어디?', 마이클 무어, 2016. 중 프랑스 급식 부분(영상 캡처)


문서1. [열린 포럼] 학교 급식, '요리로 가르치는' 기회 돼야.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 교수. 2017. 04. 06, 조선일보.

문서2. 무상급식. Di, 2015. 08. 27, 브런치.

문서3. 무상급식 논란 - 영국과 프랑스 이야기. Nasica. 2015. 02. 05, ㅍㅍㅅㅅ.

매거진의 이전글 고부엉씨 브런치 이야기(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