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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끼 디 파타테

세상은 넓고 맛있는 것은 많다

by 고부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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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트윗들을 접하고는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식재료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트윗인데, 각각 칠레의 고추와 페루의 감자 사례가 나오더라고요. 저도 사실 '고추'나 '감자'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맛과 형태가 아주 한정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요리를 하면서 나름 견문이 늘어나다 보니 저 트윗을 올린 분들처럼 '아쉬운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감자인데요. 안 그래도 많은 분들이 수년 전부터 '분질감자'와 '점질감자'의 차이에 대해 논하고 계시기도 하죠.


복잡한 얘기는 건너뛰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점질감자는 수분이 많고, 매끈하고 단단한 반면 분질감자는 수분 함량이 적고 포슬포슬 잘 부스러져요. 이런 성질 때문에 보통 점질감자는 국물요리에, 분질감자는 튀김 등에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죠. 물론 이런 통념이 어떤 '공식' 같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좋으면 눅눅한 감자튀김도 먹을 수 있는 거고 감자가 다 부스러져서 걸쭉해진 찌개를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 유통되는 감자의 대부분이 점질감자의 일종인 '수미'다 보니 가정에서는 사실상 감자의 한 단면만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감자 요리라고 해도 다른 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꼴이죠.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서양 감자 요리의 경우 대부분 분질감자를 쓰라고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최근 식재료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그에 따른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기업들도 노력을 이어간 끝에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덕분에 저도 더욱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해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오늘 소개해드릴 '뇨끼'처럼 말이죠!



필요한 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확한 양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이 레시피대로 만들면 3~4인분 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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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자(러셋감자 500g)


러셋 감자는 미국의 분질감자로 다양한 서양 요리에 많이 쓰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맥도날드 감자튀김인데요. 실제로 우리나라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만들기 위해서 러셋 감자를 수입해 사용한다고 하네요.


러셋 감자는 아주 가끔 이마트에 들어와요. 항상 들여놓는 것은 아닌 듯하고, 지금(18년 2월19일)은 품절 상태입니다. 이마트가 러셋감자를 들여오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마트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는 국내 1등 유통업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시도가 아주 좋은 것 같아요.

러셋감자는 과거 '포슬포슬한 감자'를 그리워하는 중장년층의 수요, 그리고 입맛이 서구화되고 있는 청년층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식문화를 확대·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감자의 맛에 눈을 떠 분질감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이에 맞춰 국내에서도 분질감자 생산과 유통이 활발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유통업체 이마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CSR인 것 같네요.

흠흠, 글이 약간 자소서 느낌처럼 되긴 했으나... 어쨌든 결론은, "나 뇨끼 만들게 일단 수입 좀 더 해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감자 무게는 500g을 딱 맞추기가 힘드니까요, 대략 400~600g 사이로 생각하고 맞췄습니다.


2. 밀가루(다목적 밀가루, 75g)


뇨끼에서 또 중요한 부분이 밀가루의 양입니다. 밀가루가 너무 적으면 반죽이 잘 안 나오고, 밀가루가 너무 많으면 뇨끼라기보다 일반적인 국수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이 비율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에요.


여러 레시피를 참고했는데, 레시피에 따라 밀가루의 양은 감자 1kg 당 150g에서 300g으로 다양합니다. 저는 일단 150g짜리 레시피를 채택해 75g의 밀가루를(감자가 500g이기 때문) 썼습니다. 이 비율은 취향과 반죽의 상태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좋아 보이네요.


3. 달걀(노른자 하나)


달걀도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역시 감자 1kg을 기준으로 달걀 두 개의 노른자만 사용하는 방법과 온전한 달걀 하나를 사용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저는 전자의 방법을 따라, 노른자 하나만 사용했어요(500g이니까)


4. 소금, 후추


소금과 후추는 양을 특정하기가 좀 그렇네요. 넉넉하게 뿌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뇨끼 반죽을 구성하는 재료는 4번까지고 4번 이후 목록들은 필요한 도구와 부수적인 재료들입니다.


5. 포테이토 라이서

20180124_090112.jpg 영롱하다

감자를 으깰 때 사용하는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보통은 '포테이토 매셔'라고 해서 손으로 꾹꾹 눌러 다지는 도구를 많이 쓰고, 그냥 포크를 사용하거나 체에다 놓고 으깨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자를 가장 편하고 적당하게 으깰 수 있는 도구는 이 '포테이토 라이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포테이토 라이서는 대개 옥소(OXO) 제품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하지만 문제는 그것 가격이 4~5만 원이라는 것입니다. 감자 으깨자고 저 돈을 쓸 수 없어 좌절하고 있던 차에, 이케아에서 발견했습니다. 값이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1만 원 이하인 것은 확실해요. 그러고 보니 이케아랑 되게 잘 어울리는 제품이긴 하네요. 걔네 식당 가면 매쉬드 포테이토 엄청 많이 주니까...

이케아의 상품들이 항상 그렇듯이, 싼 게 비지떡이라고, 후기를 찾아보면 금방 망가지고 별로라는 평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번 써보기로는 대만족이었는데요. 자세한 사용 모습은 아래에서 보기로 합시다.


6. 세몰리나


마지막에 뇨끼를 썰어내는 과정에서 칼과 도마에 반죽이 들러붙는 것을 막기 위해 뿌려주는 용도입니다. 세몰리나가 없다면 쌀가루를 사용해도 된다고... 밀가루도 괜찮을지는 모르겠네요.


7. 냄비, 포크, 칼, 도마 등...


감자 삶고, 껍질 벗기고, 뇨끼 만들고 할 때 사용할 도구들입니다. 기본적인 조리도구이기 때문에 특별할 것은 없겠네요.



조리과정을 알아봅시다.


1. 감자 삶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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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 감자를 담고 찬 물을 감자가 충분히 잠길 때까지 붓습니다. 그리고 감자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끓여주시면 돼요. 시간은 대략 물이 끓기 시작한 뒤 20~25분 정도 걸렸습니다.


삶기 싫으시다면 190도 오븐에서 45분 정도 구워도 돼요.


2. 껍질 벗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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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가 아직 뜨거울 때 포크로 감자를 집어 들어 칼로 껍질을 벗겨주세요. 감자가 뜨거울 때 해야지 껍질이 잘 벗겨진다고 하네요.


3. 감자 으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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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벗긴 감자를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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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포테이토 라이서를 사용합니다!


포테이토 라이서 사용법은 아주 간단해요. 통 안에 감자를 넣고 손잡이를 위아래로 꾹 누르면, 구멍을 통해 감자가 으깨져서 나옵니다.


영상으로 봤을 때는 '저게 편할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힘도 덜 들고 아주 부드럽더라고요. 무엇보다 감자가 곱게 잘 갈려 나오는 것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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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가 한 번 나오고 나면 구멍에 붙어있는 감자들을 칼 등으로 한번 긁어 떼 주시고, 나머지 감자들도 다 으깨주세요.


4. 반죽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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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깬 감자 위에 계란 노른자 한 알, 밀가루, 소금, 후추를 모두 넣습니다.


계란 노른자는 미리 풀어서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저 상태로 반죽을 만드니까 좀 뭉쳐서요. 미리 풀어놓으면 더 잘 섞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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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손으로 주물럭 거리면서 반죽을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천천~히 부드럽~게 해주세요. 너무 강렬하게 반죽을 섞을 경우 감자에서 물이 너무 많이 나와 반죽이 질척거리게 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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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도마 위에서 했으면 더 편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어쨌든 반죽이 어느 정도 모양이 잡힌 다음 도마로 옮겨서 매끈하고 골고루 섞일 때까지 조금 더 만져줬습니다.


5. 뇨끼 모양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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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힘든 부분은 다 지나갔습니다. 실제 우리가 먹는 뇨끼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반죽의 일부분을 잘라 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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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에서 굴려 길쭉하게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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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지면 반으로 잘라 굴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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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반죽이 좀 들러붙는다 싶으시면 세몰리나를 조금씩 뿌려가며 작업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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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가 대략 엄지손가락 정도가 되면 2~3cm 간격으로 잘라내주세요. 뇨끼가 부드러워서 툭툭 하고 잘려나가는데, 이 과정이 꽤 기분이 좋아요. '다 됐구나'하는 성취감도 들고요.


사실상 여기까지만 해도 뇨끼는 완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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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등을 이용해서 홈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포크에 세몰리나를 묻힌 다음, 포크 위에 원통형의 뇨끼를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서 굴립니다. 그러면 포크와 닿은 부분에서는 밭고랑과 이랑처럼 들어가고 나오는 모양이 생기고, 손가락으로 누른 부분은 크게 움푹 파여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소스와 닿는 표면적이 늘어나서 좋다고 해요. 푸질리나 펜네를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6. 완성(뇨끼 삶는 방법)


완성된 뇨끼는 대부분의 파스타 소스와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저는 보통 토마토소스와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해요.


뇨끼를 삶는 방법은 파스타와 거의 동일합니다. 물을 넉넉히 하고, 소금을 치고 뇨끼를 넣으면 돼요.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뇨끼는 다 익으면 물에 뜬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으니 소스를 대강 만들어 놓고, 둥둥 떠오르는 뇨끼를 소스에 던져 넣어 주시기만하면 훌륭한 뇨끼 요리가 완성되겠네요.




지금보다도 더 요리에 서툴 시절, 의욕이 없어 뇨끼에 도전했다가 쓴 맛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감자는 잘 으깨지지도 않고, 억지로~ 억지로~ 으깬 감자 반죽은 너무 질척거려서 아주 식겁을 했더랬죠. 감자 문제였던 것 같은데 그때 생각하면 이번에 러셋감자를 이용해 만든 뇨끼는 아주 감개무량할 정도네요.


과거에는 우리나라에도 '남작' 같은 분질감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에는 생산성이 더 좋고 우리 식생활(국물요리)과 어울리는 수미 감자만 남다시피 했습니다. 사실 과거에는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신경을 쓸 겨를 없이 생산성과 경제논리가 더 중요했던 시기가 있긴 했겠죠.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지 않겠나 싶어요. 다양한 종류의 맛과 향을 인지하고 즐길 수 있는 산업적, 문화적 바탕을 길러나간다면 우리 식생활이 조금이나마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것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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