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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워도우 이야기

스타터 (starter)

by 고부엉씨

나는 좋아하는 음식은 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빵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1. 사워도우 빵


빵이라고 하면 또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내가 즐겨먹고 또 만들고 싶어 하는 빵은 두껍고 퍽퍽한 '주식용 빵'이다. 버터나 설탕을 안 쓰고 밀가루와 물, 그리고 효모로 발효시켜 만든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효모'란 놈을 뭘 쓰느냐에 따라 또 차이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해서 나는 이른바 '천연 효모(또는 발효종)'라고 불리는 것을 사용했다.


이것을 사용해 빵을 만들면 특유의 신맛이 나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이를 '사워도우'(Sourdough, sour: 맛이 신, 시큼한)를 라고 부른다. 사워도우를 만드는 과정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드라이 이스트를 이용하는 과정보다 훨씬 느리고 또 관리하기가 힘들다.


온갖 마케팅 술수와 현대적 미신이 결합돼서 이 천연 발효종을 건강에 좋다든지, 뭐 순수하고 맛있고...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렇진 않다고 한다. 신맛이 독특하고 유럽 주식 빵 감성이 물씬 풍긴다는 점이 신비로운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면 나는 왜 굳이 사워도우를 만드는가? (1)나는 감성충이다 (2)그래도 뭐해보고 블로그에 써야 된다는 이유에서다.


2. 사워도우 스타터 만들기


사워도우 빵을 만들려면 스타터(starter)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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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 저울과 적당한 그릇을 준비한다. 나는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그릇을 사용하였다. 이후 유리병에 옮겨 담아야 하는데, 밀가루와 물 양이 얼마 되지 않을 때는 저 정도가 편하다.


스타터를 만들 재료로는 밀가루와 물, 그리고 넉넉잡아 2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2.1. 어떤 밀가루를 쓸 것인가?


물은 생수를 쓴다고 해도, 어떤 밀가루를 써야 할지는 참 고민이 됐다. 보통 유튜브 영상에서는 초심자에게 100% 중력분을 추천한다. 제일 무난하게 부풀어 오른다고.


다만, 꼭 'unbleached', 즉 무표백 제품을 사용하라고 강조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뭐 건강이나 그런 차원에서 하는 얘기겠지... 시중에서 무표백 밀가루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일단 구하기 쉬운 것으로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중력분에서 시작해서 다양하게 바꿔볼 수도 있다. 보통은 호밀을 많이 섞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래 두 밀가루를 배합했을 때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왔고, 따라서 오늘 포스팅에도 해당 배합 사진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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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해표 우리밀 통밀가루(네이버 스토어 "사조해표 몰") / 오른쪽: 바우크 유기농 호밀가루(B&C 마켓)


이 둘을 5:5로 섞었다.


2.2. 계량


사워도우 스타터의 원칙은 간단하다. 물 반 밀가루 반이다. 예컨대, 물 70g을 넣었으면 밀가루 70g을 넣으면 된다. 이후에 스타터에 밥 줄 때도 마찬가지다. 남은 스타터에 같은 양의 물과 밀가루를 넣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단, 새로 추가하는 물+밀가루의 합이 남아있는 스타터의 양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2.3.1. 1일차


자, 이제 하루하루 노동의 세계로 떠나볼 시간이다. 적은 양의 물과 밀가루부터 시작해서 점점 그 크기를 불려나가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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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에서 보았듯이 계량을 해준다. 소수점 한자리까지 계량하는 건 너무 변태 같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한다. 물 70g+우리밀 통밀가루 35g+호밀가루 35g이다.


각각 70g을 사용한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가 참고한 유튜브 영상을 따라 했을 뿐이다. 50g부터 시작해도 되고 뭐 사정에 따라서... 굳이 시작부터 많이 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나중 가면 일부분 버려야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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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어리 지지 않도록 잘 섞어준다. 앞으로 이 과정을 하루에 한 번 정도씩 해 줄텐데 이를 '밥 주기'라고 부르도록 하자.


140g 가량의 아기 스타터가 생겼다. 뚜껑을 덮고 따뜻한 곳에 놓아둔다. '따뜻한'(!)이 꽤 중요하다. 대략 24도에서 29도 정도가 이스트가 자라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봄/여름엔 몰라도 가을/겨울에는 난방을 틀거나 해야 된다는 말이다. 나는 여자친구가 사준 오븐의 발효 기능을 사용하는 편.


그런 의미에서 물도 따뜻한 물을 사용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2.3.2. 2일차(12시간~24시간 뒤)


나는 출퇴근을 해야 하는 관계로 24시간 주기로 밥을 줬다. 12시간 주기로 밥을 주면 더 좋다고 하니 참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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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70g의 밀가루와 70g의 물을 준비한다. 같은 일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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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에겐 280g의 스타터가 생겼다.


2.3.3. 3일차


다시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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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냄새도 뭔가 확 다르고 생긴 것도 심상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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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g이 된 시점, 즉 3일차부터는 가지고 있는 스타터 반을 버리는 과정을 추가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280-140+70(물)+70(밀가루)가 되는 것.


이렇게 해주는 이유는 계속해서 140g씩 더하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 인생의 진리 하나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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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고 더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하루 10분가량 투자하는 단순노동이다. 대략 7일~10일 정도 반복하면 스타터가 두 배가량 부풀었다가 줄어든 자국을 볼 수 있다. 이 시점에는 적당한 유리병에 옮겨 담아 준다.


2.4. 옮겨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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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건 없다. 사실상 지금까지 해 오던 그 과정이다. 스타터를 옮겨 담고, 밥을 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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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의 무게를 미리 알아두면 편하다. 남아있는 스타터가 얼마인지 알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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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준 뒤 스타터의 높이를 체크해둔다. 매직 등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색깔 고무줄을 자주 사용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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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스타터는 밥을 준 뒤 6시간 이내에 최고조에 다다르고 점점 가라앉는다.


2.5. 보관


이 시점의 스타터는 냉장고에 보관해도 된다. 냉장고의 찬 공기가 스타터 내의 이스트의 활동을 느리게 만들되 죽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스타터도 엄연히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활동이 느려졌다 해도 밥은 줘야 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래서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빵을 만들기를 권하고 있다. 빵 만들기 하루 전에 상온에 내놓고 밥을 주면 스타터 유지하는 데 도 도움이 되고 빵도 하나 생기고 일석이조니까 말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냉장고에 오래 있게 된다면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2주 정도는 생존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3. 당부의 말


나부터도 초보(라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의...) 베이커지만, 일단 스타터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에서 당부하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다. 첫째, 온도다. 실제로 가장 관리하기 힘든 것이 온도인데, 앞서 말했듯이 24도~29도를 유지해두면 스타터가 잘 자란다. 물론 온도가 좀 낮다고 해도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추우면 지나치게 지지부진하다.


둘째는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만 해도 스타터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감을 잡는 데 장장 2년이 걸렸다. 조금 하다가 냄새가 이상한 것 같아서 버리고, 질감이 이상한 것 같아서 버리고, 많이 부풀어 오르지 않는 것 같아서 버리고, 빵이 제대로 만들어지질 않는 것 같아서 버리고...


천연 발효종을 이용한 제빵에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작용하지만, 스타터의 경우 정~~~말 관리를 해주지 않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밥을 주면 얼추 살아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곰팡이가 피었거나 완전 딱 봐도 상했다 싶을 정도의 냄새나 모양새가 아니고서는 포기하지 말고 밥을 계속 주자. 밀가루:물의 비율을 어기지 않고 온도만 적당하게 맞춰준다면 당신의 스타터는 언젠가 당신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다.


4. 제빵은 다음 시간에


사진에서 봤다시피 두 배 부풀어 오른 스타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제빵은 또 다른 난관이다. 현재 매주 1번 꼴로 빵을 굽는 중인데 이것도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다음에 좀 그럴듯하게 나오면 그걸 갖고 궁극의 빵 만들기 콘텐츠를 적어 보는 것으로 한다. 그때까지 여러분도 천연 발효종 하나 키워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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