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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Feb 27. 2022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 下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이 궁금하다면 이전 포스팅과 함께 봐야 더 좋다.

국립공주박물관은 규모가 그리 크진 않다. 1층에는 두 개의 전시공간이 있는데 입구에서 오른쪽이 기획전시실이고, 왼쪽은 상설전시실 중 하나인 '웅진백제실'이다.


이전 포스팅에서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을 다루며 마치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만 이번 특별전인 것처럼 썼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른 기사들이나 포스팅을 찾아보며 생각해 보니까 웅진백제실까지 포함해서 특별전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공간적으로는 두 전시실이 별개이나 원래 무령왕릉 출토 유물이 웅진백제실에서도 많이 전시되고 있기도 했고, 총 5232점의 유물을 한 공간에서 다 보여주기는 무리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어쩐지... 기획전시실에서 본 것만 가지곤 좀 부족하다 싶었다.

웅진백제실 입구로 들어가면 백제의 역사가 벽면에 연표로 정리되어 있다. 백제는 한 번은 타의로, 한 번은 자의로 수도를 옮겼는데, 그 수도에 따라 시대를 구분한다. 이 중 백제가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퇴하며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내려와 있었던 시기를 '웅진백제' 시대라고 한다.


웅진백제는 그 시작과 끝 앞뒤로 너무 임팩트가 큰 사건들(한성 함락과 관산성 전투)이 자리 잡고 있고 기간 자체가 60년 남짓으로 길지 않으며 그 시기마저도 왕권이 극도로 흔들려서인지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그래도 무령왕릉 발굴을 비롯해 학자들의 지속적인 연구로 그 모습이 많이 구체화된 것 같다.

들어가서 처음 만나게 되는 유물은 '받침이 있는 은잔'(동탁은잔)이었다. 어이가 없지만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고 멀리서 찍은 거랑 꼭지 부분 클로즈업한 것만 남아있었다;;; 이때부터 슬슬 지쳐가고 있어서 집중력이 다소 흐트러진 모습...


동탁은잔은 크기가 아담하면서 잔 받침, 잔, 뚜껑의 구성의 비례나 균형감이 좋은 느낌이었다. 특히 뚜껑이 반원형으로 그냥 덮어지는 형태가 아니라 UFO 모양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면서 아래쪽이 넓어지는 스타일로 되어 있는데 그 표현이 인상깊었다.


표면에 새겨진 다양한 동물과 연꽃 문양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구성이나 문양의 표현이 백제금동대향로와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다. 인면조도 있고 다양한 동물이 많다고 하니 벽에 그려진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한동안 시선을 빼앗겨도 좋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령왕의 흉상이 나온다... 이거저거 근거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붙어있긴 하다만 이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무령왕릉 출토 유물이 공주박물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만큼, 웅진백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이 무령왕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순 없다. 이전 수도인 위례성(한성)이 고구려에 의해 함락되고 왕(개로왕)까지 참살되는 대위기 이후 도망치듯 내려온 웅진에서 전임자들이 연달아 제 명에 못 죽는 혼란기를 겪은 끝에 왕위에 올라 백제 중흥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특히 521년 무령왕이 양나라에 보낸 국서에 등장하는 '누파구려 갱위강국'(백제가 고구려를 여러 번 격파하여 마침내 다시 강국이 되었다)라는 문구는 백제사의 명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시련과 역경을 이겨냈다는 의미에서 인간적인 감동도 느낄 수 있는 부분...

메인 전시공간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모습.


전시실 벽면에 그려진 무령왕릉 출토품 발견 상태가 흥미로웠다. 졸속 발굴 탓에 이것이 정확한 재현인지는 확신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정확하다고 믿는다면 무령왕릉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1971년을 넘어 무령왕이 죽고 이 무덤에 묻힌 525년의 모습까지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무령왕과 무령왕비의 금제 관식이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왕은 검은 비단관을 머리에 쓰고 이를 작은 금꽃으로 장식했다고 되어있고* 현재는 이런 금제 관식을 양옆에 달아 장식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아무튼 크기라든지 한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은 신라 금관에 미치진 못하지만 세부적인 표현이나 눈앞에서 실제로 활활 타오르는 것만 같은 생동감은 다른 어떤 유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력이 있었다. 확실히 왕비의 관식보다는 왕의 관식이 더 화려하고 입체적이었으며, 왕의 관식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불멍' 때리듯이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건 꼭 실제로 봐야...


*두산백과 무령왕 금제 관식(링크). 네이버 지식백과.

전시실 중앙부에는 무령왕릉 출토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지석 위에 오수전이 놓인 모습 등 글로만 보았던 장면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 뒤에는 왕과 왕비의 목관도 전시되어 있다. 기획전시실에서 본 재현품이 아니라 출토된 실물이다. 발굴 당시에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목관이 다 무너져 내려 있었으나 박물관 측에서 원래 모습처럼 조립을 해서 전시하고 있다.

화려하고 웅장한 유물들 가운데 놓인 '유리동자상'과 '동물 모양 흑옥장식'은 뭔가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크기가 작아서 사진에서 잘 보이지도 않네. 당시에는 이런 걸 부적처럼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더 재밌는 건 이렇게 작은 조각상에 바지나 저고리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의 복식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활용된다는 것이다. 학문의 세계는 정말 놀라워...


오른쪽 사진은 왕의 부장품인 고리자루 큰 칼(환두대도) 머리 부분. 환두대도는 우리 역사에서 워낙 유명한 유물이기도 해서 자연스레 눈이 갔다. 고대사는(어쩌면 현대사도...?) 치열한 전쟁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병장기의 출토는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다.

왕비와 왕의 금귀걸이. 


오른쪽 사진이 왕의 금귀걸이인데 끝에 곡옥으로 장식된 것이 포인트로 아주 예뻐 보였다. 왕비의 금귀걸이도 잘 보면 둥근 옥이 붙어 있다. 전체적인 완성미나 세부적인 표현 모두 뛰어나 보였다. 왕비 금귀걸이는 국보로 지정된 게 한 쌍 더 있는데 사진을 안(못) 찍었다.

왕의 은허리띠와 금, 은 허리띠드리개다. 허리띠 하면 신라 고분에서 나온 화려한 금제 허리띠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은 허리띠드리개에 나타나는 두꺼비와 도깨비 모양이 너무 귀여워서 눈에 띈다. 왕의 부장품에 이렇게 익살스러운 모양들이라니...


이외에도 청동거울이라든지 무령왕비 은팔찌처럼 기억에 남는 유물이 너무 많다. 하지만 하나하나 주절주절 다루는 것보다는 직접 가서 보시라는 의미에서 내가 정말 인상 깊게 본 것들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만약 가서 본다면 무령왕릉 발굴이 문제가 많았음에도 왜 한국 고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굴 중 하나로 여겨지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주 방문을 계기로 백제사에 대해서 되게 공부를 많이 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나 시험을 통해 배웠던 역사는 아무래도 중요한 결과 위주로 접근하다 보니 마치 '스포 당하고 보는 영화'와 같아서 갱위강국이니 뭐니 해도 결국엔 망국의 역사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절대적인 기록의 양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물론 무시할 수 없겠으나 사료에 대한 다각적인 해석과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모습이 드러난 백제의 복잡한 국내/국제 정치적 상황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권력투쟁, 외교전 등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 미디어에서 '역사 예능'이 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몇 연사들이 '광대' 취급을 받고 지금은 무대에서 내려갔지만, 이들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이유는 '백제멸망(660)', '고구려멸망(668)', '삼국통일(676)' 같은 말보다 거기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열망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이렇게 지식을 쌓고 재미를 얻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박물관 방문은 늘 정말 소중한 경험이 아닌가 싶다. 가능하면 진부한 표현은 지양하려고 하지만, 국립공주박물관은 한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 봐야 할' 장소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음 방문지로는 부여, 익산이나 경주 방문을 고려하고 있다. 아마 지금 백제사 뽕이 좀 차오른 상태이기 때문에 부여나 익산 쪽이 될 확률이 높지만 이번에 열린 경주박물관 특별 전시가 꽤 괜찮아 보여서 경주로 갈지도 모르겠다. 거길 가면 또 거기도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모르겠네. 뭐 아무렴 어때...


근데 이 전시는 3월 6일 끝난다. 사실상 1주일 남은 전시... 가능하다면 끝나기 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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