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기획전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돈을 찍을 수 있는 기관인 만큼 '화폐박물관'이 있고, 특히 요즘 특별한 전시를 진행 중이라고 해서 가봤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화폐로 만나는 우크라이나] 전시다.
먼저, 최근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은 예약제로 진행된다는 점을 꼭 참고 바란다. 예약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홈페이지(링크)를 통해 할 수 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구본관을 사용하고 있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갈 때 종종 마주치는 건물이라 볼 때마다 '신기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 건물로서 완성도도 높고 건축사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날 이곳을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화폐로 만나는 우크라이나"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요즘 억울한 일을 당하는 나라인 만큼 나 나름의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발걸음이랄까...
그런데 예상과 달리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관람 동선이 하나의 선상으로 이루어지게끔 구성되어 있어서 이 기획전을 보기 위해서는 1층 전시실부터 순서대로 모든 전시를 보면서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체력 이슈로 박물관을 갈 때마다 대부분 특별전이나 기획전만 보고 상설 전시는 건너 뛰어왔기 때문에 약간 좀 어색하기는 했지만 상설전시를 보는 것도 나름 알찬 시간이었다. 그래도 일단 이 포스팅에서는 기획전만 다룬다.
전시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눠진다. "황금의 땅, 우크라이나"라는 제목의 Part1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어떤 나라인지, 또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설명한다.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주요 사건들을 연표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그냥 연도와 사건을 써놓기만 한 게 아니라 해당 사건과 관련된 기념주화나 지폐를 함께 놓고 볼 수 있어 재밌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거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체르노빌 원전 사고라든지 소련의 붕괴로 인한 우크라이나의 독립 등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들을 우크라이나에서 어떻게 기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파트2에서는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 화폐의 역사를 다룬다.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도안 속의 모델은 주로 문학가들이었다.
사진으로 담아온 100흐리브냐 속 인물은 우크라이나의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타라스 셰브첸코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지배를 당할 당시 러시아에 저항해 고초를 겪고 농민부터 지식인까지 모두 읽을 수 있는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우크라이나 표준 민족어 탄생이 기여했다고 한다.
마지막 Part3에는 다양한 기념주화를 모아놓았다.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있으나 사진을 잘 찍질 못해서 아쉬웠다. 유리장에 자꾸만 카메라가 비치고 해서 예쁘게 나오질 않더라고...
페트리키브카"라는 전통회화 양식이 소개되어 있는데 꽃무늬로 장식된 곤봉이 유독 눈에 띄고 인상적이었다;; 도자기로 만든 것 같아 보였기 때문에 실제 무기로 사용된 물건은 아닐 듯하고... 장식으로 저런 살벌한 걸 해두는구나 싶었다.
출구에 포토존과 간단한 우크라이나어 공부 등 귀여운 요소들이 설치되어 있다.
전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화폐를 통해 어떤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접한다는 콘셉트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그런 콘셉트에 맞춰서는 되게 알차게 꾸며진 전시라고 생각이 들었다.
화폐나 기념주화 같은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가 선행되면 감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처럼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나 화폐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앞의 상설전시를 모두 보고 올라오는 것이 기획전시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화폐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만나는' 전시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대해서 여러모로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우리에게 이름은 익숙할지 몰라도 참 멀고 낯선 나라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놓고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도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세계인들의 분노와 함께 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과 응원도 늘고 있다.
특히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땅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면 그냥 러시아 사람들이 싫어서?
그런 이유들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고, 민주주의는 푸틴 같은 독재자하나의 결정에 수천, 수만 명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명분 없는 전쟁을 두고 온갖 왜곡과 과장, 망언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우리 입장에서 새겨야 할 교훈도 결국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거철이다 보니 위정자들이 또다시 해묵은 감정과 상식에 어긋난 논리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또 그런 가치들을 지키려면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권자 나름의 판단이 필요한 시기다.
1월 25일 시작한 이번 전시는 11월 13일 끝난다. 전시 기간이 넉넉하니 여유가 될 때 방문하여 우크라이나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