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 Jul 21. 2020

너를 만나고 싶지 않아

 비 오는 날이면, 저는 기본 동작도 따라 하지 못해 연습실에서 쫓겨난 무용수처럼 까치발을 하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패배자처럼 걷습니다. 바로 ‘그들’ 때문입니다. 그들 중 한 무리는 무겁지도 않은지 등에 한가득 짐을 지고 이동하고, 다른 무리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합니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제 갈 길 가는 꿋꿋함까지 갖춘 그들은, ’ 달팽이‘입니다. 달팽이, ‘ㅇ’이 동그랗게 굴러가는 모양이 아주 귀여운 이름입니다. 사실 단어의 모양이 꽤 그럴싸하게 생겼습니다. 오묘한 느낌을 주는 ‘달’이라는 음절이 붙어 해로운 존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이름에 굉장한 유감이 있습니다. 대체 누가 저들을 이토록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는지, 아마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들을 저런 단어로 명명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며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호소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그들을 싫어하게, 무서워하게 된 시작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굉장한 절망감과 우울감을 안겨주는 세 가지 사건이 있는데, 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무서운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섯 살 무렵, 때때로 놀이터에서 만나 같이 모래로 성을 쌓던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어린 저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친구네 집 초인종을 눌렀는데, 처음으로 ‘친구네 집’에 입성하게 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아마 저는 그전부터 그들을 무서워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 집 식탁에는, 친구네 어머니가 키우시는 그들이 작은 대야 안에 들어 있었고, 그 위에 얹힌 얇은 유리판 하나가 그들과 세상을 단절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식탁에 둘러앉아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저는 몸이 얼어붙어 유리판에 달라붙은 그들을 응시하며 소름이 돋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머, 왜 한 마리가 없지? 하는 소리가 들렸고, 숫자를 세어보는 손가락까지 등장했습니다. 어머어머, 정말 없어졌어.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왔고, 저는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여 친구네 집 전체가 일그러지며 몸을 조여 오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공포에 질린 저를 보지 못하셨고, 공포심이라는 감정이 낯설 때라 왜 이 집에서 이렇게 나가고 싶은지 어머니께 설명드리지 못해 가만히 굳어 어디선가 실종된 그것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열심히 눈을 굴리며 집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그 뒤로 없어졌다는 그것이 그 친구에게 달라붙어 올까 봐, 놀이터에서 만나도 서먹한 사이가 되려 노력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도 저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들을 좋아하는 척했던 시절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몇몇 학급 친구들은 등굣길에 기념품이라도 하나씩 들고 오듯이, 축축해진 땅을 즐기러 나온 그들을 교실로 데려왔고, 다른 친구들에게 적선이나 하는 듯이 만지게 해 주었습니다. 화장실로 피해 볼까 고민하는 사이, 제 차례가 다가왔고 저는 그것이 마치 곰인형이라도 된 냥 와아, 정말 귀엽다 따위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이것 봐, 난 이만큼 용감한 아이야, 다른 친구들을 향해 웃었습니다. 무얼 그렇게 찾는지 더듬이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것을 손등에 올려놓고, 정말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는 연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손등을 정복했다는 사실을 그리도 자랑하고 싶은지 투명한 액체를 뿜여 내며 전진했고, 저는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수업 시간이 되자 그 친구는 그것을 필통 안에 가뒀고, 저는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의자 끝에 엉덩이를 간신히 걸친 채 그것이 무슨 짝사랑하는 상대나 되는 듯 힐끔힐끔 쳐다보았습니다. 그 친구의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이 갇혀 있던 파란색 플라스틱 필통만큼은, 그대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합니다. 


 난 그들이 정말 무서워,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쯤, 전 고향을 떠나 비 하나만큼은 끈질기게 오는 도시, 런던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거의 매일 비가 왔고, 어찌나 비가 많이 오는지 해가 잠시라도 뜨는 순간에는 말입니다, 사막에서 간신히 물 한 모금 발견한 길 잃은 나그네처럼, 온 동네 사람들이 공원으로 몰려들어 햇빛을 한 모금씩 마시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저는, 그런 이상한 나라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 저는 비로소, 아, 대한민국 토양의 질이 정말 형편없고 또 형편없는 것이구나. 하는 제 인생과 하등의 상관이 없던 토양의 질 같은 것을 진지하게 분석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에는 백과사전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의 다양한 크기, 색깔, 모양을 가진 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크기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정말 컸습니다. 감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그들은 태아의 크기이고,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그들은 어엿한 성인의 모습을 갖춘 모습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이국적인 모습의 그들을 보게 되었지만 그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용감한 척’ 하며 애써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시련은 거대한 그들을 잠깐씩 마주치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옆 방 친구의 은밀한 생활까지 강제적으로 알게 되는, 교도소 방처럼 획일적이고 어두운 기숙사에서 살던 저는 부동산에 달려가 집 계약서에 사인을 함과 동시에 그 교도소 같은 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꿈에 그리던 저만의 보금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1층이었고, 햇살은 반만 들어오는 곳이었습니다. 겨울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가지고 있는 모든 양말을 신고 생활할 수밖에 없는, 어설픈 거주지라고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온돌 시스템의 위대함을 발바닥으로 깨닫게 해 준 뜻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 앞의 아름다운 공동 정원을 가꾸시는 정원사 아저씨들의 규칙적인 가위질 소리와, 가끔씩 먹이를 찾아 집 앞에 찾아오는 청설모들은 발바닥의 한기는 잊게 해 주고 웃음을 짓게 만들었습니다. 어엿한, 집이었습니다.
  거실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면 1층에 사는 주민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개인 정원이 있었고, 힘들었고 또 힘들었던 제 타국살이에서 저는 유일하게 이 곳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집 밖에는 다르게 생긴 사람들과 낯선 공기 냄새가 마구잡이로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어느새 그런 것들이 저라는 개인을 침범하는 느낌이 들어, 그 작은 정원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하늘은 제게 단 하나의 숨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저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존재가, 제 공간을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입니다. 거리에서 마주치면 시선을 멀리 둔 채 피해 갈 수 있었던 그들이, 바로 제 옆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의 공간에 허락도 없이 들어왔는지, 그들이 제 공간을 침범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엄연한 도전이고 해코지였습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했는지 정원의 고장 난 전등 주위에서 매일 모임을 가졌고, 때로는 이탈하여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서로를 본 게 반가운지 몸을 비벼대며 안부를 묻는 장면도 종종 목격했습니다. 사방으로 정원을 차지한 그들은 안타깝게도 저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저만 그 공간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가진 생물체처럼 굴었습니다. 
  기분 나쁜 소름이 등 뒤에서부터 돋아나 뇌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이 공간을 포기하느냐, 마느냐, 저에게는 일생일대 최대의 고민이었습니다. 한동안 여길 찾지 말아 보자, 결심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며칠 지나지 않아 정원으로 가는 문을 열었고, 인사하듯이 문 쪽으로 다가오는 그들을 열심히 피해 구석 한편에 자리를 잡고 음악을 들으며 홀짝홀짝 차를 마셨습니다. 차와 음악, 완벽한 조합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듣고 있어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움직임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시선을 두게 되어 한참을 바라보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찻잔 밑바닥에 그들 중 하나가 숨어 있는 역겨운 상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토록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생활 용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그들을 죽이는 약을 발견했습니다. 그 나라에는 그들의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열심히 가꾸어 놓은 정원을 상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가판대에 올려진 그 약을, 정원을 열심히 가꾸게 생긴 중년의 금발 여성이 계산대로 들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호기심이 일어 약이 올려진 선반으로 걸음을 옮겨 외관을 관찰해 보았습니다. 가루로 된 약이었는데, 표면에는 대문짝만 하게 그것의 사진이 박혀 있어 차마 그 사진 뒷면에 있는 사용법은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사용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소중한 공간에서 그들의 존재를 없애버리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간절함이 이 약을 발견하게 해 준 게 아닌가, 제 손에는 카드와 이것을 들고 갈 가방까지 있었습니다. 바라보기도 힘든 약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무르던 저는 그냥 그 가게를 나왔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 날이 공식적으로 그들과의 ‘공존’을 택한 날입니다.
  저는 드디어 미친 것인지 아침에 정원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안녕, 미안한데 제발 오지 말아 줘, 제발 그 위에서 떨어지지 말아 줘, 라든가 밤새 비가 세게 내려서 다친 그것을 보면 어머, 어떡해, 라는 말들을 내뱉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작은 정원을 좋아하는 존재들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정원을 생각하면 따뜻함과 공포감이 함께 떠오릅니다. 참으로 이상한 공간입니다.
  길고도 짧았던 타국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저는, 마음 한 편으로 이제는 난 그것들을 언제, 어디서든 조우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자신감에 차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좀 뻔뻔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나라에 있는 그들과 비교해서 크기가 훨씬 작은 걸 알고 있으니 공포심도 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주변에 있는 공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날이 더워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체의 그것이 공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제 시야에 그것이 들어온 순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봉인해 두었던 공포심이 아우성치며 풀려났고, 여섯 살 때 친구의 집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줄행랑쳤습니다. 그리고 인정했습니다. 난 극복한 게 아니라 ‘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비 오는 날이면 다섯 발가락으로만 중심을 잡은 채 느리게 먼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발 뒤꿈치를 자유롭게 바닥에 대고 당당히 걷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제 발바닥이 그들에게 흉기고, 또 그들이 저에게 흉기입니다. 캄캄한 밤에는 바닥에 눌어붙은 검은 껌 자국이나 작은 돌멩이들도 마치 그들처럼 보이기 때문에 저를 두렵게 합니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실수로 그것을 밟게 될 때가 있습니다. 와그작, 하는 선명한 소리가 납니다. 그럴 때면 이 축축한 날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없음을 분명히 앎에도 ‘나는 비 오는 날 어쩌다가 존재하는 뻣뻣한 낙엽을 밟았다.’라고 의미 없는, 저에게는 의미 있는 최면을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저는 하늘이 울 때면 이 넓은 땅 위에 발바닥 하나 편히 얹지 못하고 고개도 당당히 들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비 오는 날, 까치발을 하고 이리저리 빈 공간을 찾으며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는, 고개를 푹 숙이고 괴상하게 걸어오고 있는 사람을 보셨다면, 그런데 그 사람이 지나갈 길에 있는 그것이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면, 제발 말해주십시오. 얘, 저 사람은 너보다 훨씬 큰데 네가 무섭대. 너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대. 그러니 괜찮다면 잠시 풀 숲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줄래?라고 말을 전해 주십사 간곡히 청해봅니다. 부탁합니다.

<달팽> Copyright © 고운 All Rights Reserv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