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을 날로 뺏겼다

영원한 짝사랑

by 해은

봄꽃들이 피고 있는데 어쩌나 싶었다. 흐린 하늘에서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거세게 불면서 이내 함박눈이 휘몰아쳤다. 이삿짐을 싣고 가면서도 막내딸이 시집간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온실 속에 키우던 화초를 눈 내리는 세상에 내어놓은 심정이 되었다. 이삿날 눈이 내리면 잘 산대, 남편의 말에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신혼 집은 새집이라 깨끗하고 둘이 살기 아담하니 좋아 보였다. 짐 정리를 해주고 같이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으나 그냥 돌아와야 했다. 사위는 둘이서 정리 하는 것이 편하다고 했고 사돈도 와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찬찬히 둘러 보지도 못하고 짐만 내려놓고 나오는데 가슴 한 구석이 허전했다. 지가 먼저 이삿날은 짜장면 먹어야지 하더니 그 약속을 못 지키네. 이제 그녀의 시계는 시집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딸은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게 되었다. 멀리 떠난 것도 아니지만 아주 먼 곳으로 떠나 보냈다는 것을 안다. 큰딸을 결혼시키고 한동안 생각만해도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적응할 만하니까 막내딸마저 가서 두 배로 더 서운한 마음이다. 남편은 자기 배 아파 낳지 않아서일까, 나만큼 섭섭하지 않아 보인다. 딸의 짐을 빼자 마자 자기 방을 꾸민다고 좋아서 난리다. 카메라 진열할 장식장을 새로 산다, 가구 위치를 바꾼다 하며 줄자 들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녀가 먹고 갈 스프를 끓이거나 도시락 싸줄 일도 없어진 아침은 한갓지다. 주말에 딸에게서 신랑이 아침을 차려줬다는 문자를 받았다. 다정하고 잘 챙기는 남편을 만나서 마음이 놓이지만, 으슬으슬 춥고 먹어도 자꾸 허기가 지는 것은 나의 봄이 사라진 탓이다. 나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않는데 남편은 가구 위치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정리정돈을 했다. 허전한 마음을 그의 방식대로 달래는 중인가 보다.


아침 저녁으로 조잘조잘 지저귀던 어여쁜 동박새는 새 보금자리로 날아가 버렸다. 헌 둥지는 적막강산이다. 그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 이야기, 직장인이 되어서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루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모두 얘기해 주었다. 나도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은 전부 이야기하는 친구 같은 딸이다. 몸이 약해서 잔병치레를 하는 편인데 살림하며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만하다.


하루 종일 나의 안테나는 온통 그녀에게로 향해 있다. 몸은 아픈데 없니? 말짱해, 내내 피곤한거 빼고는, 엄마 반찬만 털고 있어, 그럼 엄마챤스 써, 아냐 나도 혼자 먹고 살아야지, 적응할 동안만이라도, 애쓰다 아플까봐.

음식이든 살림이든 앞으로 야무지게 잘 하고 살것이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그녀의 안테나는 이제 신랑에게로 향해 있다.


나는 사위에게 드라마 대사처럼 말해주고 싶다.

“너는 니가 뭘 받아 가는지 아냐? 내가 너에게 나의 천국을 준다, 내 딸 크는 30년 동안 아무것도 한게 없는 너에게…”

나는 그렇게 짝사랑을 날로 뺏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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