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세계
사진 속의 그녀를 따라 다니고 싶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찍을 것인지 지켜보려고 살며시 뒤를 밟는 상상을 해본다. 그녀는 뉴욕의 한 거리를 천천히 걷고 있다. *새들거리는 기분을 가라앉히고 눈길을 끄는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다. 카메라를 목에 건 여자의 시선은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약간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길 양쪽으로 높은 건물들이 서있고 도로에는 차들이 지나가고 있다. 그녀는 가게 한 면의 커다란 유리 앞에 서더니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렌즈를 통해 구도를 잡은 다음 신중하게 찰칵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사진들은 강렬한 것이 많았지만 그 사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헝클어진 커트의 생머리, 꼭 다문 입술의 무표정한 얼굴과 상반신만 찍힌 사진에는 세로로 절반이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고 절반은 햇볕에 드러나 있다. 절반의 그림자는 세상 속에서 숨고 싶은 생각과 그 반면에 드러나고도 싶은 마음 또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 사람의 이름은 비비안 마이어다.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났는데 평생 독신으로 보모, 가정부, 간병인으로 일하며 남의 집을 전전하였다. 수십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2009년 죽는 순간까지 아무에게도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사후에 15만 장의 필름을 보관해 둔 창고가 임대료를 내지 못해 경매에 붙여졌다. 필름은 그 과정에서 역사가 존 말루프의 손에 들어갔다. 비로소 빛을 본 사진들은 그 가치를 알아 본 말루프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고 전 세계에 걸쳐 전시되면서 천재적인 사진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마이어는 발걸음을 옮기며 신문 가판대에서 졸고 있는 노인을 찍고 건물 이층에서 유리창을 닦는 여자를 향해서도 셔터를 눌렀다. 나의 시선도 계속 그녀 뒤를 따라갔다. 문 앞에 서있는 귀여운 소녀들 한 컷, 차 안에 누워 낮잠을 자는 남자를 찍으려고 자동차 창안으로 카메라를 불쑥 집어넣기도 했다. 다정하게 손을 잡은 남녀의 뒷모습, 버려진 의자가 불타고 있는 광경, 사고를 당해 도로에 누워있는 사람 곁의 경찰관과 군중의 표정 등등. 그녀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타인이나 사물의 풍경을 찍다가 틈틈이 자화상을 찍었다. 실내의 거울이나 도로 반사경에 비친 모습, 상점의 유리나 거울에 비친 모습 등에는 언제나 카메라를 목에 건 채였다. 수많은 자화상 중에서 절반은 검은 그림자에 가려진 그 사진이 유독 내게 와 닿았던 것은 마이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진들을 찍었는지 직접 드러내지 않았지만 자화상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자신의 사진들이 공개되고 천재 사진가로 명성을 얻었다는 것을 본인이 알 수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마이어는 늘 남성들을 경계했고 남성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오면 어김없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주변인들은 그녀가 어렸을 때 폭력이나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또한 다양한 가명을 사용하고 독신으로 살며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과거 때문에 세상에서 숨어 지낸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따라서 그 경험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개인사는 고독했지만 자신의 예술 세계를 독특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까닭이라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흑백 사진 속 얼굴은 이십대 후반의 젊은 청춘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웃사이더의 고독함이 느껴진다.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잡은 양손에서 만큼은 굳은 의지가 읽힌다. 아마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높은 곳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또 무엇을 담아볼까 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가의 눈빛과 이상이 담겨있다. 침묵하고 있지만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수많은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침실에 딸린 욕실을 찍은 사진에는 현상액을 담그는 통과 걸어놓고 말리고 있는 네거티브 필름들이 보이는 것을 보면 직접 사진을 현상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집에도 사진에 미쳐 사는 사람이 있다. 필름 사진을 찍고 직접 현상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익숙한 풍경이다. 상상 속에서나마 마이어의 뒤를 계속 따라다니며 보니 우리 집 사진가에서 느꼈듯이 사진은 즐거움이자 중독이라는 것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생활고로 인해 인화되지 않은 수많은 필름도 발견되었다. 필름 한 통 한 통 마다 그녀의 채 못 다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영원히 사장될 수도 있었던 작품들이 사후에라도 발견되어 세계적으로 전시된 것은 뛰어난 작가로서의 예술성이야말로 반드시 드러나고야 말 운명이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속 그녀의 옷차림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마이어는 또한 여러 가지 것들을 수집하기를 좋아했다. 엽서, 모조 보석, 우표, 라이터, 병따개 등 종류가 다양하다. 신문을 통째로 모으거나 스크랩 하는 등 그 분량이 파일 수백 권에 달했고 책도 수천 권을 가지고 있었다니 이지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인간관계의 복잡함이 불편했던 마이어에게는 사진이 유일한 친구로서 세상과 교류를 나누었던 편안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보모나 가정부로 살았지만 매우 지적이었던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이 더욱 궁금해진다. 탁월한 시선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한 예술가의 자화상을 보며 사각 프레임 안에 담아낸 마이어의 세계에 흠뻑 빠져 본다.
*새들거리다: 마음이 들떠서 돌아다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