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과 교감하다
폭설이 오고 하루 만에 눈이 녹았다. 베란다 문을 열다가 화분 걸이 위의 접시에 눈길이 갔다. 접시가 텅 비었다. 새들이 먹이를 물어 간 것이다. 신장개업은 성공이다. 접시 위에 해바라기 씨앗 한 줌을 다시 놓아두었다. 눈 속에서 먹이가 부족한 새들이 경계심을 풀었나보다. 드디어 새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으나 며칠 동안 새가 오는 모습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창가로 박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왔다. 먹이를 물고 가까운 나뭇가지로 옮겨 앉는다. 참새처럼 작고 머리와 목에는 푸른빛이 도는 검정색을 띠고 있다. 흰색 뺨이 매력 포인트이다. 나뭇가지에서 씨앗을 부지런히 먹고 다 먹으면 다시 접시 위로 날아든다. 그는 의심이 많다. 아니면 적이 나타날까 불안해서 안전한 장소에서 먹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결코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 조심성 많은 새라고 한다.
곤줄박이가 두 번째 손님으로 나타났다. 몸은 밝은 갈색이고 머리는 *감숭감숭했다. 머리 가운데로 가리마처럼 흰 줄이 나 있다. 곤줄박이의 ‘곤’은 ‘까맣다’라는 ‘곰’의 의미이고 ‘박이’는 일정한 장소에 박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검정색이 박혀 있는 새’라는 의미다. 그는 옮겨가지 않고 그대로 서서 먹었다.
덩치가 큰 직박구리가 날아오자 곤줄박이는 자리를 피한다. 직박구리는 큰 몸집만큼 오랫동안 많이 먹는다. 너무 포식하는 것 같으면 작은 새들을 위해 가까이 다가가 쫒아버리기도 한다. 아마도 해바라기 씨 맛집이라고, 이 집 인심 좋다고 소문이 났나보다. 우리 집 부근에만 새소리가 요란하고 분주하게 손님들이 들고 난다. 모이 접시 옆에 놓인 물 한 모금 먹고 다시 씨앗을 쪼아 먹는다.
한동안 우리 집을 찾는 새는 이렇게 세 종류 뿐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여쁜 동박새가 찾아왔다. 전체적인 몸 빛깔이 연한 녹색이고 눈에는 하얀 띠가 둘러져 있어 앙증맞다. 한 마리가 날아온데 이어 부부인지 또 한 마리가 등장해 물을 마시고 그릇에 퐁당 뛰어들어 함께 목욕을 했다. 겨울인데 춥지 않을까. 목욕하는 새는 처음이었다. 목욕하고 먹이를 먹으려다가 다른 새가 오는 바람에 그냥 날아가서 안타까웠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새들은 잔잔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불멍’이 아닌 ‘새멍’에 흠뻑 빠졌다.
지나간 겨울에도 새들의 먹이가 걱정되어 같은 장소에 해바라기 씨앗을 놓아 둔 적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새들이 찾지 않았다. 그 이유를 찾아보았더니 위험 때문에 오픈 된 공간을 좋아하지 않고 접시의 색깔도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색의 그릇에 놓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란 접시 대신 갈색 접시로 바꿔 주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치우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들이 경계심을 갖고 지켜보는 단계를 기다리지 못했던 것 같다.
창문을 열고 내 손바닥 위에 씨앗을 올린 다음 새들을 기다려보았다. 새들은 주변을 맴돌 뿐 가까이 오지 않았다. 아직 그만큼 친해지지는 못했나 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다큐에서 늘 먹이 주는 사람에게는 손 위나 어깨 위에 앉는 것을 보았다. 아침이면 주인 집 창가에 와서 먹이를 달라는 듯 유리창을 부리로 콕콕 쪼아 잠을 깨우는 모습도 보였다. 나도 열심히 먹이를 주며 친분을 쌓고 새와 교감하게 될 날을 그려본다.
한파로 베란다에 놓인 세탁기가 얼었을 때 새들은 얼마나 추울까 걱정이 되었다. 예전에 흔하디흔했던 참새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적응력과 생존력 강하기로 소문난 참새지만 환경오염과 서식지 파괴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제 참새는 환경부가 지정한 ‘보호조수’라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딜 가든 새 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이러다 미래의 아이들은 새 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드 피딩’이라는 말이 있다. 버드 피딩은 야생 새들의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모이통을 베란다 밖이나 나무에 걸어 두는 행위이다. 영국 · 미국 등 해외에서는 버드 피딩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이처럼 버드 피딩이 흔한 나라에서는 모이통을 이용한 개체 수가 이용하지 않은 개체 수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단독 주택과 마당이 흔한 두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버드 피딩이 쉽진 않은 상황이다.
남편은 새들을 바라보는 것이 소확행이라며 물도 떠다주고 해바라기 씨앗을 큰 포장으로 두 봉지나 구입했다. 나는 나무색 예쁜 새집을 주문했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새들에게 포근한 보금자리를 선물하고 싶다. 집 앞 큰 나무에 매달아 줄 예정이다. 어떤 새가 입주할지 행복한 만남을 기다려본다.
*감숭감숭: 털 같은 것이 매우 가무스름한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