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축제 여행
마을 길목에 피아노가 놓인 무대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예쁜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들과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차려 입은 남자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부모님과 축제를 구경 온 미래의 피아니스트들이다. 여학생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남학생은 긴장을 풀려는 것인지 연습하듯 허공에 손가락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진지했다. 작은 무대이지만 훗날 좋은 경험으로 아이들의 마음속에 각인 되지 않을까.
딸과 함께 강원도에서 열리는 계촌 클래식 축제에 다녀왔다. 둘이서만 오롯이 음악을 즐기는 여행이다. 축제가 열리는 계촌은 강원도 평창의 작은 시골 마을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돌도 안 된 아기부터 유치원생 어린 아이들을 데려 온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지난 2009년 계촌초등학교는 전교생을 단원으로 하는 오케스트라가 창단되면서 폐교의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이후 계촌중학교 별빛오케스트라 창단으로 이어졌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졸업생들이 매주 계촌 마을을 찾아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계촌클래식 축제의 막을 올리게 된 지 십 년째가 되었다.
딸과 나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이 있거나 공연을 찾아가는 편은 아니다. 나는 공부할 때 배경 음악으로 깔아 놓고 혹은 집안일하며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을 종종 듣는다. 딸은 대학 다닐 때 좋아하는 앨범을 찾아서 많이 들었다면 직장인인 요즘은 회사에서 주변 소리가 시끄럽다고 느껴질 때, 지적인 허영심을 채우고 싶을 때 주로 듣는다고 한다. 딸에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회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던 딸은, 사연을 적어 보내서 선정되면 두 명에게 무료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축제에 신청을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협연한다고 해서 신청자가 너무 많아 선정 문자가 늦어진다는 연락이 왔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는 동안 조바심이 커질 때쯤 드디어 사연이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우리는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뛸듯이 기뻤다.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접하고 자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딸이 어렸을 때 피아노는 조금 배우다 싫증을 느껴서 그만 두었지만 좋은 음악 공연은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천원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매달 클래식 장르의 공연에 신청해서 선정되면 티켓 값으로 천 원만 내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실시되고 있다. 나에게도 생활의 숨통이 트이는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딸도 좋은 추억이라고 기억한다. 그 영향인지 대학 때 복수전공으로 예술사를 공부했다. 딸은 이러한 내용들을 사연으로 쓴 덕분에 선정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공연은 티켓이 있어야 하지만 현악4중주, 재즈, 오페라, 기타, 관악기 합주 등의 프로그램은 누구나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공연장의 조용하고 약간은 무거운 분위기보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음악을 들으며 간단한 음식에 곁들여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그야말로 음악 축제의 분위기가 무엇보다 좋았다.
첫째 날, 별빛 콘서트는 크누아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한예종 학생들로 구성된 대학오케스트라였다. 학생들의 연주가 신선하고 활기찬 분위기였다면 둘째 날, 경기필하모닉은 노련하고도 힘찬 소리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협연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는 리허설 때부터 소리가 남달랐다. 한 음, 한 음이 깊고 풍부해 생동감이 넘쳤다. 똑같은 피아노곡을 연주해도 피아니스트마다 소리가 다른 것은 음악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쓸 때도 남다르게 표현 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가까운 자리에서 보기 위해 땡볕에 장시간 줄 서 있던 고생도 모두 날릴 정도로 조성진의 연주를 듣는 시간은 행복했다. 야외 공연장에 사천 오백 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섬세하고 투명한 피아노의 선율에 집중했다. 그의 표정까지 잘 보이는 위치였는데 온 몸과 영혼으로 연주하는 리듬이 잔잔한 파도처럼 슬금슬금 다가왔다. 앙코르 곡은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인 김선욱과 헝가리 무곡을 함께 웃으며 신나게 연주했는데 두 명의 조합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었다.
이번 공연으로 우리는 지휘자의 매력에도 흠뻑 빠졌다. 정치용 지휘자가 절제된 손동작과 날카로운 표정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면 김선욱 지휘자는 퍼포먼스 적이고 열정적인 지휘를 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피아니스트, 지휘자 등 음악가로 사는 삶은 어떠할까 궁금해졌다.
음악은 우리 삶에 색채를 더하고 물결처럼 감동을 전해준다. 음악은 감정의 언어이자,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대신해주기도 하며 삶 곳곳에 인상적인 흔적을 남긴다. “음악의 언어는 무한하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발자크의 말에 공감하며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음악 여행이었다.
* 이 글은 2024년 계촌 클래식 축제에 다녀와서 쓴 글이다. 올해도 다가오는 6월 6일~8일에 열리는 축제에 참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