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가꾸기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고 어둑해지는 저녁, 그 골목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빈 터에는 여전히 잡초와 쓰레기 뿐 이었다. 가꾸는 이 없어 방치된 땅에 잔뜩 버려진 일회용 컵들과 담배꽁초를 비닐에 주워 담고 잡초도 재빠르게 뽑아냈다. 준비해 간 “씨드볼(씨앗폭탄)”을 군데군데 뿌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그 사이 완전히 해가 졌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어둠이 가려주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일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야생화 씨앗이 잘 싹터서 꽃이 피기를 바라며 버려진 땅을 *갈음한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산책길에 나서면 동네 주택가의 골목에서 아기자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어 좋다. 담장 옆, 발그레하게 익어가는 앵두나무는 어릴 적 살던 시골집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 화분에 빨간 덩굴이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살펴보니 야생 뱀딸기였다. 뱀딸기를 화초로 키운다는 것은 적잖이 놀랍고 신선했다. 화원이 아닌데 수십 가지의 화분이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도 있고, 올라가는 계단마다 화초가 놓여있는 이 층 집의 모습도 정겹게 다가왔다. 각자의 정원을 가질 수 없는 도시에서 정원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읽혀진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다가 “게릴라 가드닝”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게릴라(기습적인 행동)와 가드닝(정원 가꾸기)의 합성어로, 도심 속 방치된 공간에 게릴라처럼 몰래 꽃과 나무를 심어 가꾸는 환경 개선 운동을 말한다. 나도 평소에 골목길을 산책하며 버려진 작은 땅에 꽃을 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시에서 자투리땅에 손바닥 공원을 만들었을 때 기뻐했는데 일회성에 그치고 말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예쁜 꽃이 핀 곳에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다큐를 보았고 실천하게 된 것이다.
“씨드볼”은 흙과 물을 섞은 반죽에 씨앗을 넣어 작은 폭탄 모양으로 만드는데 도시 곳곳의 땅에 살며시 놓아두면 알아서 씨앗이 발아되고 성장하기 때문에 게릴라 가드너의 무기가 된다. 폐공장처럼 넓은 공터에는 새총을 이용해 씨앗폭탄을 날리는 방법도 보았다. 씨드볼의 장점은 흙을 파 씨앗을 심는 기존의 방식을 따를 필요 없이 주머니에 챙겨 산책길에 원하는 곳에 툭 던져 놓으면 된다.
“게릴라 가드닝”의 역사는 1970년 미국 뉴욕, 휴스턴 거리의 공터에서 한 예술가와 그의 친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한밤중에 지저분한 공터의 쓰레기를 치워버리고 꽃밭을 만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한국에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한가보다. 이러한 활동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땅 주인이 불법 침입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하거나 애써 심은 꽃과 나무를 뽑아버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지저분한 곳을 깨끗이 치우고 꽃을 가꾸며 아름답게 변화된 마을과 도시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더 나아가 예술과 결합시키는 점이 경이롭다. 다큐에서 무명의 화가가 빈 깡통에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어디서든 잘 자라는 종류의 식물을 심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밤이 되자 식물이 담긴 여러 개의 깡통을 자전거 바구니에 담고 도시를 누비며 가로등 아래에 매달아 놓았다. 그가 그린 그림은 몬드리안의 추상화 같은 느낌을 주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멋진 미술 작품 안에 자라나는 식물까지 감상하며 미소 짓는다.
“꽃과 식물은 의식의 혁명이다”, “식물은 이 사회의 고동치는 심장이다”라고 외치며 열심히 활동하는 게릴라 정원사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갈음하다 : 본디 것을 대신해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