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대 올리기

무심하게 화초 키우기

by 해은

화초를 사랑하지만 일주일 동안 들여다보지 않을 때도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다. 어쩌면 나는 내 꽃대만 밀어 올리느라 애쓰고 있었나 보다. 한 박자 느리게 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 보았다. 한파가 시작되고 추운 곳에서 겨울을 나야하는 수국과 국화만 베란다에 그대로 두었고 다른 화분들은 모두 거실로 들여왔다. 2단짜리 화분 받침대와 작은 나무의자에 빼곡하게 자리를 차지한 화초들은 식물 등의 빛을 쐬고 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집인데 겨울에는 그나마도 아주 짧게 들다 사라져서 식물 등의 존재를 알고 바로 구입했다.


식물 등의 빛은 자연광만큼은 못 미치나 비슷하게 대체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애정은커녕 오래 바라봐 주지 않았던 화초들을 둘러보았다. 누렇게 된 잎은 전지가위로 잘라주고 겉흙이 마른 화분에는 물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카틀레야와 호접 난을 십 수 개 모아놓으니 소설 속 비밀정원이 부럽지 않았다.


식물을 키우면서 문제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정성을 쏟는 가운데서도 시들시들 죽어버린 화초에 상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를 넘겨 살아남는 것들이었다. 사 올 때 흐드러지게 피었던 수국은 다음해에는 꽃봉오리를 맺지 못했다. 호접 난도 꽃대를 올리기 위해 온도 차이를 주느라 애썼지만 마찬가지였다. 내 정원은 수려하고 예쁘지 않았고 제멋대로 자라나거나 점점 못생긴 식물들만 늘어나고 있었다.


열심히 비료 주기, 가지치기, 분갈이 등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주었다. 그런데 햇볕이 부족한 것은 어찌할 수가 없나보다. 식물의 생장에 좋은 환경을 비슷하게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풍성한 잎과 꽃을 피운다는 결과가 나오진 않았다. 예쁘지 않게 자라고 있지만 그것은 어쩌다 내 베란다 정원으로 오게 된 식물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요즘 화초들에게 꽃대를 올려달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 남향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그나마 잘 자라고 있어 기특하다고, 푸른 잎들만으로도 싱그러운 기쁨을 얻는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나 펜, 매일 마시는 찻잔처럼 함께 살면서 일상의 공간을 구성하는 수많은 것 중의 “기분 좋은” 대상으로 충분하다. 통제할 수 있는 다른 것들과 달리 식물은 통제할 수 없고 오로지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돌봐야 하는 존재들이다.


호접 난에 꽃대가 올라올 것이라는 기대를 접고 그저 함께 지내자고 생각하던 어느 날,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한 화분의 잎과 잎 사이에 연두색의 아기 손톱만한 무언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자라고 있는 그것은 분명 꽃대이다. 우리 집에 온지 1년6개월 만이다.

그 난은 오랫동안 성장이 멈춘 듯 새 잎이 나지 않았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를 텐데 눈에는 그 내면의 변화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나의 글쓰기, 문학적인 성취가 멈춘 듯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난은 더디고 느리게 새 잎을 키웠고 드디어는 꽃대를 밀어 올렸다. 더디게 자라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난 잎이 쪼글쪼글 말라 죽을 때 나는 좀 더 가드닝에 솜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글쓰기 또한 재능이 부족함을 탓하기도 했다. 햇볕의 부족함을 식물 등이 대체했듯이 글쓰기에도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것이리라. 침체되어 멈춘 듯 보이는 나의 글쓰기도 꽃대를 밀어 올리는 날이 올까.


소중한 식물들에게 좀 더 민감해지고 정성을 쏟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어떻게 하든 그들도 이 공간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또한 죽는 것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한편으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민감하게 식물들과 오래 함께 살아가고 싶다.

keyword
이전 08화이런 선물 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