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 이야기
가구도 인연이 있는 것일까. 나는 유독 콘솔이 갖고 싶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쉽게 가질 수 없던 콘솔을 남편이 맞춤 가구로 주문해 놓았다. 그는 천천히 아름답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단다. 콘솔을 갖게 돼 기쁜데 그의 말이 더 감동이었다. 언제부터 나를 챙겨주려고 생각했을까. 그는 용돈을 아껴서 가끔 깜짝 선물을 주곤 했다.
미적 감각이 별로 없는 내게도 한때는 집안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꿈이 있었더랬다. 집 꾸미는데 관심도 없는 며느리라는 흉을 듣곤 마음이 아팠던 신혼 초기였다.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할 뿐이지 집을 잘 꾸미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커피 잔 하나 마음대로 못 사고 꽃병에 생화를 꽂아 놓는 것까지 간섭을 받고부터는 아예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혼 전 회사 선배가 ‘환상을 갖지 마, 결혼은 현실이야’라고 했던 말이 자주 떠올랐다.
집들이에 초대 받아 갔을 때나, 잡지를 볼 때 여러 가지 가구 중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콘솔이었다. 콘솔은 집안 살림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장식을 하는 공간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패션 가구였던 콘솔은 대부분 조각으로 멋을 내 화려했다. 내 취향은 앤티크 한 것보다는 모던한 디자인이 더 좋다. 예쁜 콘솔 위에 놓인 장식품이나 그림을 바라보며 부러워했지만 어느 결엔가 내 마음속에서 잊히고 말았다.
나는 정리정돈을 못하는 편이다. 반대로 남편은 정리정돈의 달인 급이다. 예전에는 못마땅해도 그냥 두고 보더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늘어가는 잔소리와 정리하는 습관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집안에서뿐 아니라 외식하러 식당에 갔을 때도 일단은 앉게 된 상위에 물통, 그릇 등을 걸리적거리지 않게 정리해야만 식사를 시작할 수 있다.
남편이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던 어느 주말, 책장과 서랍을 까뒤집어서 정리를 하며 주말을 보냈다. 가구의 위치를 효율적으로 바꾸거나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리고나니 훤하게 공간이 넓어졌다. 훤해진 자리에 얼마 전 지인이 만들어 준 나무 의자를 놓고 사진 액자를 올려놓았다. 꽃을 꽂은 꽃병도 의자 옆에 두었다. 자꾸만 눈길이 가는 운치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 다만 의자가 낮아서 사진이 눈높이와 맞지 않는 점이 살짝 아쉬웠다.
콘솔이라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의자 위에 올려 진 사진 덕분에 잊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남편이 목공에 취미가 있다면 좋을 텐데. 손재주가 많은 편이라 예전부터 DIY 소품가구라도 만들어 주길 바랐으나 그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목공을 하게 된 지인에게서 사진 찍을 때 쓸 소품용 의자 두 개를 마련했고 내게는 플레이팅용 도마를 선물했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도마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먹으면 레스토랑에 온 듯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작고 귀여운 의자는 평소에 화분이나 액자를 올려놓다가 손자들이 오면 앉아서 놀거나 사진 찍을 때 좋은 소품이 되었다.
어느 날, 앉은뱅이 작은 책상에서 글을 쓰는 내게 책상을 주문하자는 것이 아닌가. 지금 이것으로 충분하고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책상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멋진 책상을 갖게 된다면 왠지 글을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길 것 같기도 했다.
여보, 책상은 필요 없고 콘솔이 갖고 싶어. 콘솔이 뭔데? 한 때 내 로망이기도 했던 가구지. 사진을 찾아 보여 주며 가격이 비쌀까봐 망설이는데 그는 자기용돈으로 선물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맨날 정리 못하는 여자라고 구박만 하더니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고르고 놓일 위치에 맞게 가로 세로 높이를 재서 주문을 넣었다.
비가 내리던 주말 저녁, 드디어 콘솔이 도착했다. 비 맞을까봐 커다란 우산을 가지고 달려 나갔다. 우수고객 서비스라고 콘솔과 세트인 작은 의자까지 만들어 주었다. 조심스레 포장을 뜯고 제 위치에 놓았다. 콘솔 위쪽 벽에는 남편의 작품 사진을 걸었다. 무미건조하던 거실의 표정이 산뜻하게 바뀌었다. 서랍이 두 개 나란히 달린 오크색 콘솔은 나뭇결의 무늬에 반해 자꾸만 쓰다듬게 된다.
콘솔은 크기는 작아도 다른 가구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고 한다. 단순한 가구가 아닌 섬세한 예술작품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색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우리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도 콘솔의 나무색처럼 은은하게 물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콘솔이기에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콘솔 위에 무엇으로 장식을 하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