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이 열려 있는 동안

두 번째 새장 개업

by 해은

폭설이 내렸다. 첫눈이었다. 보통 첫눈은 아쉬운 듯 잠시 흩날리다 그치곤 했는데, 베란다 화분 걸이 위에 밤새 흰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았다. 춥고 배고팠을 새들이 안쓰러웠다. 두 번째 겨울을 맞는 새장 개업 날이다. 우리 집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와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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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전은 필요 없었다. 먹이를 놓아 준지 얼마 되지 않아 첫 손님이 찾아왔다. 곤줄박이였다. 반갑다, 친구야. 그들은 작년 이맘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집 창가 근처를 맴돌며 문 열리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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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날아온 손님은 귀여운 박새였다. 어서 와. 너도 잘 있었니. 고소한 해바라기 씨앗과 따뜻한 물을 준비했어. 친구들아, 해바라기씨 맛집이 드디어 문 열었어. 빨리 와. 그들은 먹이를 쪼아 먹으면서도 쉼 없이 재잘거리며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화분 걸이에 씨앗과 물그릇을 놓고 가까운 나뭇가지에는 작은 새장도 달아 그 안에도 모이를 채워 두었다. 이내 소문은 빨리 퍼진 듯했다. 직박구리가 날아왔고 덩치 큰 비둘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참새 떼도 나타났는데 그들은 화단을 서성이며 쉽게 날아오르지 못했다. 서로 눈치를 보다 한 마리가 베란다 난간 위로 올라섰지만 다른 새만 지켜보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가까이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곤줄박이는 이제 경계심이 거의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살피는 듯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먹이를 먹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어떻게 소통하는지 그들의 언어에 궁금증이 생겼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붉은 머리 오목눈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남편을 부르며 한동안 심장이 빠르게 뛰기도 했다.


우리 집 창가를 찾는 새들은 서로 종류가 달라도 크게 다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여럿이 동시에 먹이를 먹지는 않았지만, 한 마리가 씨앗을 물고 나뭇가지로 날아가면 다른 한 마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번갈아 오가며 먹이를 나누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에 모이 접시를 내놓아도 기다리던 작은 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쇳소리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직박구리 한 마리가 머리 깃털을 곤두세운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접시를 잠시 들여놓았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은 자주 보았지만 새들에게 마음을 쓰는 이는 드물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탐조가들의 영상이나 기록들을 접하며,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새들의 세계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있음을 공감하게 되었다. 직접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는 숲과 공원에서 새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공원을 산책하다가 ‘새들의 먹이 공간이니 치우지 말아 달라’는 쪽지를 보았을 때, 그 글씨가 유난히 반가웠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 않게 이어진 마음들이 그날따라 눈에 들어왔다. 다른 생명을 바라본다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며 마음의 외연을 확장하는 일일 것이다.


새들의 습성을 자세히 알고 싶어 관련 책을 읽다 보니, 개발과 서식지 파괴로 멸종 위기에 놓인 조류가 해마다 늘어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환경 연합에 후원금을 보냈다. 베란다에서 새장에 모이를 채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를 가까이하기에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뒷마당 탐조클럽』을 쓴 작가 에이미 탄은 이렇게 말했다. 필요한 것은 다만, 조용히 머무를 수 있는 마음, 인내하는 자세, 세심히 주변을 관찰하는 눈, 그리고 발견한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따뜻함 뿐이라고 했듯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눈이 모두 녹은 뒤에도 아침이면 같은 자리에 모이를 놓는다. 새들의 날갯짓은 떠오르는 햇살 속에서 잠시 파닥이며 사라진다.

새장은 그 자리에,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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