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가는 튤립 뒤로 장미가 왔다
꽃을 정기구독하기로 했다. 농장에서 직접 정기적으로 꽃을 배송해 준다는 것이다. 첫 번째 꽃은 봄의 전령사 튤립이다. 농장주가 랜덤으로 여러 가지 색깔을 골라서 보내준다고 하니 어떤 색의 튤립이 올지 기대가 된다.
네덜란드 화가 암브로시우스 보스하르트의 “네 송이 튤립”이라는 그림을 보았다. 흰색 꽃잎에 분홍빛이 살 짝 감돌고 붉은 꽃잎에 하얀빛이 물결치는 꽃, 노랑 바탕에 주황색 줄무늬가 화려한 꽃들이 투명한 유리 화병에 꽂혀 있는 그림이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화려한 색채의 튤립이다. 황금기 네덜란드에서 비싼 가격으로 매매되었던 튤립을 그린 것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특이한 튤립은 ‘모자이크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병균에 감염돼서 그렇게 강렬하고 다양한 색상을 가지게 된 것이라니 놀라웠다. 그림 속 꽃의 푸른 줄기에는 연노랑 작은 나비가 앉아 있다. 새 봄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정물화가 칼뱅교의 종교화 역할을 대신했던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꽃잎이 왕관을, 황금빛 꽃술이 금전과 부를, 뾰족한 잎사귀가 검의 형태로서 분별력과 명예와 용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 구근 하나가 웬만한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엄청난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시들기 마련 아닌가. 그때나 지금이나 대상이 달라졌을 뿐 투기는 여전한 세상이다.
오랜만에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추운 날씨 덕분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튤립과 수선화 구근이 심어진 곳에 눈길이 갔다. 눈이 내려 하얗게 쌓여 있었다. 캄캄하고 차가운 땅속에 들어앉은 구근을 떠올려 보았다. 어둠을 헤치고 솟아날 응축된 기운을 그려 보았다. 언제부턴가 구근에서 꽃이 피는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히아신스, 수선화, 튤립 등등.
어느 해 봄, 두 딸과 떠났던 유럽 여행이 떠올랐다. 처음 도착한 파리의 거리에는 벚꽃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푸른 정원에는 노란 수선화가 만발했고 모네의 정원에서 여러 가지 꽃들을 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튤립이었다. 뤽상부르 공원이나 거리 곳곳의 작은 화단마다 피어 있어서 유독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스위스로 넘어가던 날, 우리는 모르주라는 도시에 내렸다. 오로지 화려한 튤립 축제를 보려고 간 곳이었는데 아직 준비 중이라 꽃이 조금밖에 피어 있지 않았다. 꽃을 많이 보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웠지만 멀리 설산이 보이고 드넓은 호수에 백조가 떠다니는 정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드디어 주문한 꽃이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었다. 빨강, 노랑, 분홍 세 가지 색의 꽃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끔 꽃다발을 선물 받거나 사봤지만 튤립은 처음이었다. 투명한 유리 화병에 꽂아 놓았다. 키우고 있는 화분의 아기자기한 꽃들과는 달리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연두 빛 기다란 잎과 동그스름한 봉우리가 우아하고 수줍은 소녀의 마음처럼 다가왔다. 특히 분홍색은 꽃잎의 끝부분이 핑킹가위로 자른 듯 특이한 모양이다.
중세시대 유럽에 불었던 튤립 구근의 투기 열풍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지금은 누구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옛날에 이 정도로 아름다운 꽃이라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튤립의 고왔던 꽃잎이 하나둘 시들어 상심에 잠길 무렵, 거짓말처럼 싱싱한 장미가 도착했다. 장미의 싱그러운 생동감에 집안의 공기마저 금세 달라졌다. 꽃에 따라 사람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제 나는 수국의 풍성함으로 마음까지 꽉 차오를, 그 충만한 계절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