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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r 28. 2023

봄바람이 불고 있다.

종로와 광화문에서 젊음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먹고 마시고 취하면 되는 줄 알았던 철없음을 젊음의 특권이라고 오지게 착각했던 어리석은 시기다. 그 결과일까? 5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종로에서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다. 김포에서부터 직장인 우리소리박물관까지 1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먼 거리지만 “행복하다”는 주문을 외며 웃음을 짓는다. 

집에서 출발해 4,500보 정도를 걸어야 직장에 닿을 수 있는데 좋은 것은 정해진 길이 아니라 기분에 따라 내 마음대로 길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어제만 하더라도 봄을 느끼기 위해 김포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진 길을 따라 걷다가 경전철인 골드라인을 탔다. 1시간 정도 지하철 안에서 독서를 하면 종로3가역에 내린다. 지하철을 나오면 직장까지 갈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다. 가장 빠른 길은 창덕궁 방향으로 직진하면 되지만, 허리우드 극장을 지나 인사동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종묘 앞에서 동순라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또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인 익선동을 관통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신의 기분 상태에 따라 걷고 싶은 길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느끼는 직장생활의 큰 장점이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천천히 걷는다. 니체나 칸트처럼 사색을 위한 걷기면 좋겠지만 내 한계라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기에 눈길은 건물이나, 가로수, 사람 등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익선동 골목


봄이 되었기에 많은 인파가 앞을 지나가는데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미소를 짓는다. 우선은 대부분 쌍쌍이고 간간이 외국인들도 지나가는데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나 행복해”다.

“좋을 때다 이것들아”

라며 약간의 질투를 느끼지만, 자신도 해본 경험 아닌가?

문득 “애인은 아니고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연인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친구에게 잘난 척하며 할 말이 무척 많을 것 같다. 함께 깔깔거릴 수도 있고, 어깨를 툭 치며 공감을 표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앞에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젊은 커플이 보인다. 마주 보고 있는 젊은 남녀의 입술과 입술이 거의 맞붙어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래도 입술이 붙을 것 같아. 유심히 바라보았더니 포옹을 하며 웃는다.

“저것들이” ㅎㅎ

자신이 키가 작기에 키 작은 남자와 키 큰 여자가 함께 걷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지금까지 데이트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은 상대방 여자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보지 못한 것이다. ㅠ
영화에 보면 덩치 있는 남자가 작은 여자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걷는 데이트가 멋져 보였는데…. 그러나 손을 잡고 걷는 데이트가 더 좋은 것은 상대방의 체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이 따뜻해서 좋아, 무슨 남자 손이 내 손보다 작고 마디가 가늘어”

많이 들어본 말인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금은 보여주기에 부끄러운 손이 되고 말았다. ㅠ


                                                              동순라길


3월!
아직 바람은 쌀쌀하지만, 햇살은 빛나고 꽃은 만발하기에 조금 더 걷는 시간을 늘리고 싶다.

오원 작가의 ‘걷는 생각들’ 중에서 한 구절을 떠 올렸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운동이고 수련이며, 누군가에게는 영감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다른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자신만의 산책을 즐기자.

“나는 왜 걸을까?”
바라기는 자신의 존재를 사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마주 오는 사람의 얼굴만 보이지만 생각이 깊어진다면 걷기를 통해 사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건강도 걷는 이유가 되겠지만….

삶이 아름다워지는 시간은 산책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싶고 함께 걷고 싶은 이유는 봄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배경음악은

DON GIBSON의 'Sea Of Heartbreak'입니다.

https://youtu.be/FeiUPxG1P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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