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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r 29. 2023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진행 중일 뿐이다

수십 번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성격의 우유부단함도 있지만, 병원은 누구나 그렇듯이 가고 싶은 곳은 아닌데 2주 전부터 오른쪽 종아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평지를 걸으면 참을만하고 걸을 수 있는데 층계를 내려가면 종아리가 접히면서 심한 고통이 왔다. “병원에 가야 하나?”란 생각이 들어서 네이버 검색을 했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히말라야 산속에 살고 있다는 전설적인 새의 이름은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라고 한다. 이 새는 낮에는 연인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여행자들의 마음을 빼앗고 위로하며 산의 아름다움을 소리로 들려준다고 한다. 그러나 햇살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온 히말라야는 칼바람이 불고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새는 추위에 떨며 혹독한 바람 속에서 끝없이 후회하는 울음을 터트린다고 한다.

"아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 “

이 이야기를 상기해 보면 자신의 모습도 이 새와 다르지 않다. 밤만 되면 통증으로 인해  ”내일은 꼭 병원에 들러 진찰을 받아야지 “라고 다짐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이 변한다. 종아리도 주물러보고, 혹시 약 과잉복용 때문인가 해서 건강보조제도 끊으며 ”좋아질 거야 “란 주문을 걸었다. 신기하게도 마법이 통한 것처럼 다리가 조금 좋아지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층계를 내려가면 종아리가 땅기지만 참을만하다. 자신도 놀라는 주문의 힘 ㅠ.
그러나 다음날이면 다시 통증이 찾아오고 밤에도 아픔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악화가 되었다. 할 수 없이 동네 정형외과에 예약했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병원에 내원했는데 감사하게도 대기인원이 거의 없다. 이름과 생년월일 확인을 하고 제1 내과에 들어선다. 젊은 의사 선생님이 증세를 물어보기에 ”오른쪽 종아리가 아프고 왼쪽 무릎에 통증이 있어 계단을 내려가는 데 불편합니다. “
“최근에 무릎을 다치시거나 무리하게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우선 엑스레이를 찍어볼까요? “

엑스레이 실로 가서 10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다. 무릎을 중심으로 허리까지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밖에서 잠깐 대기하라고 한다. 사진이 판독된 후 다시 선생님을 만났는데 순간적으로 찾아온 불안감 ”혹시 수술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관절도 연골도 다 정상입니다. “
안도하며 ”그런데 왜 종아리가 아프죠? “
”근육이 놀라거나 피로감이 있으면 아플 수 있어요. 또 하나는 노화로 인해 경고신호가 올 수도 있고요. “

치료 없이 약 처방받고 가면 될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연골 주사를 맞으시고 물리치료를 받으세요”라며 처방전을 써준다. 무릎과 종아리에 10방 정도의 주사를 맞았다. 주사 앞에서는 누구나 긴장하겠지만 살짝 쫄며 두려움이 있었는데 찌를 때마다 통증이 느껴진다. 무사히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실로 향했다. 종아리 마사지. 허리 안마와 수액까지 맞았다. 진짜 환자가 된 느낌. 끝난 줄 알았는데 물침대에서 마사지를 받으라고 한다.



”물침대? “
말은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보거나 사용해 보지 않았기에 호기심이 생긴다.
”천장을 보고 누우세요. “
누웠더니 놀랍게도 침대가 출렁이며 파도가 밀려와 내 몸을 애무하는 느낌인데 이거 기분이 좋다. 마치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가장 편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침대 마음에 든다. 약간 부정적인 모텔의 물침대가 아니라 건강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물침대 말이다. 개운한 기분으로 병원을 나서는데 파란 하늘이 보인다. 봄이 왔다.

내 몸이 봄으로 회춘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인생의 순리는 알 수 있다. 난 이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 중에서 늙고, 병드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인정하자. 몸은 문득문득 자신이 나이 들었음을 알게 하는 사인을 보낸다.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력 감퇴, 지하철 층계를 걸어 내려가는 젊은이들의 탄탄한 다리, 냉커피를 들고 즐겁게 길을 걷는 젊음은 부러움이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100세까지는 아니어도 난 아직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고 내 의지로 모든 것을 결정할 힘이 있다. 또 하나 봄이 오면 내 인생도 피어날 것이라는 계절의 신호를 읽을 수 있다. 뚜벅이 걸음으로 서울을 걷고 싶다. 종아리의 통증도 사라졌고 빠른 걸음은 아니라 할지라도 내 연골이나 관절은 아직 튼튼하다.

히말라야 전설의 새인 ‘아아 날이 새면 집 지으리라’고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란 희망이 봄바람처럼 피부에 와닿는다. 봄의 뜻은 ‘spring’인데 갑자기 뛰어오른다는 뜻이 있다.

”오를 수 있어 “
자신에게 나지막이 속삭여본다.

자축의 의미로
맥주 한 잔 ㅎ



배경음악은
'Keep on Running' - Tom Jones입니다.


https://youtu.be/Qqm9GnNXW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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