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보다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김혜남은 80만 부가 팔린 인기 도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등을 통해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내가 만일 인생을 다시 산다면’을 작년 가을에 출간했는데 벌써 30만 부가 팔렸습니다. 저자는 의사에 교수, 병원 원장, 베스트셀러 작가등 사람이 부러워할 조건을 가지고 있기에 그녀의 삶은 누가 봐도 흠모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녀도 인생의 가을, 아니 겨울 초입에서 만난 병마와 함께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흔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달렸기에 아직도 꿈꾸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마흔세 살의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이 병을 앓다 죽었다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데, 저자의 글을 읽어보면 이 질병이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혜남 작가는 20년 이상을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저자를 통해 소중한 인생의 배울 수 있습니다. 지식전달이나 일방적 교훈을 전달하는 책이라면 반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녀가 체험하고 이겨낸 삶의 기록이기에 책 속에는 진정한 감동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배우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저자는 오늘도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중국어 공부도 제대로 해 보고 싶고, 진짜 끝내주는 요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고, 서해 남해 동해를 한 바퀴 쭉 둘러보고 싶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사는 게 재미있다. 앞으로 병이 다시 악화되어 책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더라도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인생의 어둠 때문에 좌절하고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면 이 책은 분명 짙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한 줄기 햇살처럼 삶을 빛나게 해 줄 것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광경은 제 눈물샘을 가장 많이 자극했기에 명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발장은 사랑하는 딸 코제트를 축복하고 ‘Bring Him Home’을 부르며 죽음을 맞는데 알피 보(Alfie Boe)의 미성과 함께 제 가슴을 더 먹먹하게 하는 것은 이 노래의 가사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님 절 이제 데려가 보호해 주세요. 당신이 있는 곳에 나도 있게 해 주세요. 날 데려가 주세요 ‘
얼마나 감동이 되었으면 이 노래를 제 장례식 때 진혼곡으로 쓰고 싶었을까요?
아니 쓸 것입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친숙했던 이름들의 부음 소식을 들을 때마다 죽음은 한여름 밤에 내리는 소낙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찾아올 수 있는 어두움입니다. 그런데도 감사한 것은 장발장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자신도 있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죽음은 소망과 함께 맞을 수 있습니다.
‘욥을 위한 변명’은 그런 면에서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안석모는 목사이고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다 폐암에 걸려 60세의 나이로 고인(故人)이 되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6개월의 투병 과정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그를 사랑했던 친구들은 이 책을 통해 그의 삶을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리움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이 잘살았다는 증거겠죠? 안석모 목사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 그를 진단한 한의사는 “책을 놓으라”라고 권하지만, 저자는 “책을 끊는다면 무슨 재미로 사나”라는 혼잣말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장 이상적인 죽음을 ‘구구 팔팔 이삼 사(9988234)’로 표현합니다.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4일째 간다는 뜻이라는데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죽음이 비극적인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암 선고를 받았을 때 “눈물짓지 않고 애써 태연 하려 하였다. 더욱이 나는 목사이지 않은가!”라고 담담히 말합니다. 목사이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도 달라야 합니다. 이것을 당위라고 믿기에 죽음은 자신에게도 부담과 함께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안 목사의 병상일지는 살고자 하는 희망과 목사이기에 죽음도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는 존엄 속에서 썼습니다.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의 글은 정직한 내면의 고백이기에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끄러움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더 성숙한 믿음의 자세를 안 목사는 친구들에게 전합니다. ‘신앙과 종교가 내게 힘이 되고 의미가 있는 것은 오히려 이 질병을 통하여 삶을 더욱 깊이 있게 보고, 생각하고, 고통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한다는 데에 있다. 아니, 그런 길 자체가 신앙이고 종교이다.’(99쪽) 저자는 이 믿음을 가지고 투병 생활을 지속하기에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비칩니다. ‘욥기를 위한 변명’은 살아있는 자에게 삶의 귀중함을 깨닫고 엉터리로 살지 말 것을 각성하게 합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4월도 중순이 되었습니다. 아침, 저녁은 아직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벌써 여름이 온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감수성을 가지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지만 늘 머릿속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기억되는 하루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군요. 내 마음이 가 있는 몇 사람의 이름을 일기장에 기록하고, 몇 쪽의 글이라도 읽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제 인생도 겨울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 각성은 삶에 긴장감과 절실함을 가져다줍니다. 꿈꾸는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삶의 지혜를 가지고 성숙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종로에서 직장생활을 하니까 좋은 것 하나는 사계절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창덕궁이 바로 앞에 있기에 마치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습니다. 천천히 왕의 걸음을 흉내 내며 궁궐을 산책하는데 홀로 있음이 좋은 시간입니다. 인생의 겨울 앞에 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김혜남 작가와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안석모 목사의 생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을 도전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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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도와 멀어진 삶이지만 가끔은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가에 눈물이 맺힐 때가 있습니다.디모데 후서 4장 21절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합니다.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에 바울은 아들이 보고 싶었고 네가 올 때 꼭 자신이 읽었던 책을 가지고 오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바울에게 책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가슴에 안아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거운 질문이지만 답을 준비해야 하는군요. 가끔 새벽에 깨면 좋은 이유는 자신을 돌아보며 진지해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