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는 리윰미술관에 둘만 온 게 아니라 둘만 시간이 되었다고 카톡에 올렸다. 오해하지 마 이런 뜻이다. 원래는 4명이 오기로 했지만 2 친구가 시간적인 제약과 선약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둘만의 데이트라고 여기기에 눈에 인공눈물도 넣고, 가글도 하고, 오버핏 와인 셔츠를 입었다. 머리는 젤을 바르고 앞머리는 두 줄의 머리카락을 내려 애교머리를 했다. 비 온다고 해서 다이소에서 어제 우산 구입도 했고 Y가 나를 학구파라고 여기기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전시회에 관한 내용을 출력도 했다, 마지막으로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좋아하는 텀블러에 채우고 간식용 과자와 함께 가방에 넣어 회사를 나왔다. 살짝 안개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분다.
“비 오는 날 데이트한다.” ㅋㅋ
Y와 11시에 리윰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어제저녁 카카오맵으로 검색했더니 20분 정도 걸린다. 여유롭게 회사 동료와 이어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10시 20분에 회사를 나왔는데 다시 검색해 보니까 아차 35분이 걸린다. 그렇다면 늦을 수도 있기에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늦으면 미안한데”
종 3역에서 3호선을 타고 6호선으로 갈아타 한강진역에 내렸더니 바람은 계속 심하게 불고 약간의 비는 여전하다.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리윰에 도착하니까 11시 1분이다. 다행. Y에게 전화했더니 로비에서 전화를 받으며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첫 번째 한국 첫 개인전 이조백자 군자지향 전시회’
비바람이 부는데도 많은 관람객이 입장해 로비가 꽉 찼다. 안내석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Y와 나누어 하나씩 목에 걸었다. 티겟을 제공해 준 Y의 친구를 만났다. 혹시라도 Y에게 폐가 될 것 같아 살짝 긴장하면서 인사를 했다. 친구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외모에서 풍기는 모습이 잘 살아온 사모님이다. 물론 Y도 해당된다. 로비에서는 연극배우 박정자 씨를 중심으로 한 행위예술이 진행되고 있는데 배우들의 분장이 사회에서 낙오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약자의 모습이다. 박정자 씨의 분장도 노숙인과 별 차이가 없으니까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카텔란전과 Y의 반전 매력
먼저 카텔란전을 보기로 했는데 작가는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현대미술가로 꼽히는데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른 직업을 떠돌다가 미술계에 들어왔다고 한다.
Y의 이미지는 중성적 모습과 남성적 성격이기에 조금 센 언니라 생각했는데 지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림도 그렸고, 잠깐 멈추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리겠다고 한다. 친구들과 전시회를 다니며 작품에 대한 안목을 키운 훈련이 되어 있는데 거기에 학창 시절에 무지막지하게 책을 읽은 독서력도 가지고 있다.
카텔란 전은 행위미술이기에 작가의 의도는 쉽게 드러나지 않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추상미술이기에 아는 것이 쉽지 않은데 Y는 작품을 볼 때마다 제목을 척척 맞춘다. 그렇다면 작품을 보는 눈이 있는 것이다. (놀라워라. 이 정도쯤 되면 나는 교주를 신봉하는 광신도로 변한다) Y 옆에서 다소곳이 고개 숙이며 그녀의 설명을 듣는데 도슨트가 필요 없다. Y가 옆에 있으므로 인해 전시회에 자주 오고 싶은 충동이 들고 이론적인 무장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선 책꽂이에 꽂혀있는 미술 서적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좋은 만남은 상대로부터 머리를 때리는 자극을 받을 때 이루어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예전에 밑줄 쳐 두었던 이주헌의 '지식의 미술관'을 꺼냈다. ‘그림은 인문학의 대상이기 이전에 감상의 대상이며, 감상자의 개인적 삶의 경험과 감정이 어울려야 의미 있는 그림이 된다.' 나의 약점은 직관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더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그러나 예술은 지식의 세계가 아니라 감성이기에 필요한 것이 직관이다. 논리가 아니라 시각, 청각, 촉각 등을 통해 이미지를 연상하고 자신에게 다가온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감상법이다.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사전지식으로 검색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은 ‘그 뜻이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의지’라고 정의된다. 그렇다면 자신도 전시회를 통해 어질고 덕과 학식이 높은 마음을 발견해야 한다.
백자전은 리움미술관이 2004년 개관한 이래 도자기만을 주제로 기획한 첫 특별전으로, 국가지정문화재 59점 중 절반이 넘는 31점(국보 10점, 보물 21점)과 일본에 소재한 수준급 백자 34점을 포함해 총 185점을 선보인다. (인터넷 검색에서 찾은 글)
카텔란전을 나와 조선의 백자전에 입장했을 때 작은 탄성이 나왔다. 어둠 속에 전시된 백자 한 점 한 점이 관객의 시선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고고하고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Y는 작품 한 점 한 점을 자세히 보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다. 다행인 것은 오디오 가이드가 작품에 대해 해설을 해주기에 이해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자신의 관점을 만들지 못했다. Y 친구의 말처럼 이 전시회는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다. 또 봐야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오래 보기를 하면 그 당시 가마에서 백자를 굽고 있는 도공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백자에 대한 사랑,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고뇌와 아픔 등을 떠올린다면 시대를 초월한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앞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은 분석보다는 직관인데 그것은 많은 작품을 대할 때 가능하다.
Y와 다정하게 백자를 감상하는 모습을 Y의 친구가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둘이 열중해 작품을 보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럼 데이트 맞네…. 하하)
‘미술관에 자주 와야겠다. 아직 꿈으로 남아있는 수채화 그리기’
을 숙제로 안은 채 미술관을 나섰다.
2시간 넘게 관람하고 Y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으며 살아온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Y는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삶은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남편이 7년 동안 나를 쫓아다녀서 결혼했어.”
그래, Y는 당연히 그런 매력이 있는 여자다.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기억하고 싶은 하루로 일기장에 적는다. 아직도 이슬비가 살짝 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지하철 안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