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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Apr 24. 2023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

영화 '러브스토리' 리뷰

 로맨스 영화의 3요소로 여주인공의 눈부신 아름다움, 거기에 뒤지지 않는 영화 속의 풍경, 그리고 배경음악을 꼽는다. 그러나 영화 ‘러브 스토리’는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을 제외하곤 이 공식에 맞지 않는다. 

우선 여주인공 알리 맥그로우는 그렇게 매력 있는 여배우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39년생이 맞는다면 30살이 넘은 나이에 제니퍼역을 맡았기에 20대 초반의 귀엽고 예쁜 이미지보다는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또 영화의 배경도 대부분 하버드 대학이 아니라 뉴욕의 한 칼리지에서 찍었기에 그렇게 기억 남는 장소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아직도 로맨스 영화의 고전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는 명대사들의 힘이다. 그리고 영화 속의 장면에 딱 어울리는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이 있기에 5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도 ‘러브 스토리’는 내 감성을 흔들고 있다.



병색이 깊어가는 제니퍼(알리 맥그로우)는 올리버(라이언 오닐)가 흥겹게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짓는다. 이때 배경음악은 그녀의 마음과는 정반대인 경쾌하고 신나는 ‘Skating In Central Park’이 흘러나온다. 올리버가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일 것이다. 정말 제니퍼는 죽음을 맞이했고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올리버는 제니퍼를 회상한다. 이때 ‘Theme From Love Story’가 맑고 깨끗한 피아노 선율을 따라 흐르며 올리버의 뒷모습을 페이드인 시킨다. 

앤디 윌리암스는 이 테마를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며 제니퍼와 올리버의 슬프고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사랑을 노래한다. 

한 시인은 ‘떠날 때가 언제인지 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했지만 제니퍼의 떠남은 아직 때가 아니기에 남은 자의 뒷모습은 숙연하고 그 아픔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올리버의 독백

 ‘25살에 죽은 한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름답고 총명했으며,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고, 비틀스 그리고 저를 사랑했습니다.’ 

확률로 따지면 25% 밖에, 순서로 따져도 맨 마지막에 해당되는 올리버였지만 영화 속에는 모차르트나 바흐 비틀스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오직 올리버에 대한 사랑만 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아련했는가를 알 수 있다. 

5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영화팬의 가슴에 이 영화가 남아있는 이유도 낭만주의 사랑에 대해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떠난 사람에 대한 미련이나 상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어리 섞음으로 치부하고 쉽게 새로운 만남에 익숙한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두 사람의 사랑은 신파극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허리우드나 단성사, 피카디리 같은 영화관에 향수를 가지고 있는 중년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역시 남몰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 사랑에 감동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보스턴 명분 집안인 바렛가의 4대손이며 하버드 대학의 법대생, 거기에 아이스하키 선수 그리고 미남 등 요즘 식으로 말하면 완전한 엄친아인 올리버와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 가정에서 자란 제니퍼는 만남 자체가 불행의 소지를 안고 있다. 어느 나라나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은 불가능하기에 신데렐라의 탄생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올리버는 적극적으로 제니퍼에게 다가간다. 맑고 총명하고 발랄한 제니퍼 와의 만남은 모든 로맨스 영화에서처럼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키워간다. 

그다음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여자 친구에게 아들의 결혼을 허락할 리가 없다. 결국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올리버는 아버지와 의절을 하고 주례자도 없이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이때 올리버가 제니퍼를 위해 낭송하는 시가 휘트먼의 ‘Will you give me yourself?’라는 것을 이 리뷰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돈 보다 더 소중한 내 사랑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살아있는 날까지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휘트먼의 시 중에서)

그러나 올리버의 바람은 그녀가 백혈병에 걸림으로 사랑의 종말을 맞이한다.

젊었을 때는 올리버와 제니퍼의 사랑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두 사람의 사랑보다 올리버의 아버지 바렛 3세(Ray Milland) 와의 갈등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 자신도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 된 5천 불을 빌려주면서 그 못마땅한 표정과 실망감을 보여준 아버지 상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아버지와 의절했다 할지라도 올리버가 솔직하게 도움을 청했다면 어떤 아버지가 거절할 수 있을까?
나중에 제니퍼의 입원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병원으로 찾아온다.

왜 그런 사정을 말하지 않았니? 내가 도와줄게”
"제니는 이미 죽었습니다.”
“미안하다.”




이때 올리버는 제니퍼가 해준 말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며 아버지에게 말한다. 
정말 올리버는 사랑의 의미를 알고 아버지를 용서한 것일까?
남녀 간의 사랑도 소중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이에 못지않다. 어쩜 아버지는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한 며느리 때문에 더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 같다. 나 자신도 버렛 3세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딸의 20대 시절이니까 10년 전쯤의 이야기다. 새벽 2시 30분에 핸드폰이 울려 깼다. 발신자 표시가 되어 있지 않기에 
혹시 일본 여행 간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
라는 걱정 때문에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카톡을 했더니
 
지금 호스텔에서 나가려고! 저녁에 또 연락할게요…….ㅎㅎ” 
그러더니 며칠 동안  무소식이다.
부모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자식은 모른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ㅠ
다 부모 나이 돼서야 그 사랑을 안다. 

같은 영화를 봐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러브 스토리’는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지만 그 사랑 속에는 잘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도 숨겨져 있다. 그 사랑의 넓이와 높이, 깊이를 나중에 알기에 언제나 그 사랑도 뺨을 따라 흐르는 눈물이 있다. 

올리버가 제니를 보내며 사랑을 회상하는 것처럼 부모를 보내며 처진 어깨를 뒷모습으로 보여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그렇게 바라고 기대하던 버렛 4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분에 눈뜨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들도 아버지로 변한다. 그러기에 그 사랑이 가치 있는 것이다.  

https://youtu.be/tTDvtgoK2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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