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May 01. 2023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한 여행 강도 털이

오늘이 생일인 줄 몰랐다. 

정독도서관 가는 길에 S밴드 클릭했더니 H 누나가 “세일의 생일을 축하해”라는 글을 올렸다.
“엥, 오늘이 내 생일”
조금 뒤에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퇴근 중이야?”
“친구랑 점심 먹고 들어갈게”
“오늘 당신 생일인데”
“몰랐네, 집으로 갈게”

2시 약속을 취소하고 부랴부랴 돌아서서 집으로 가는 5호선을 탔다. 현관문을 열었는데 집이 휑하다.
“뭔 일?”

아들은 2박 3일 남해로 여행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내는 보이지 않고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식은 미역국만 보인다. 전화했더니 친구들과 캠프장에 있다는 거다.
아, 이 마누라”
“나 캠프장에 간다고 지난주부터 말했는데 몰랐어?”

순간 고민한다. 식은 미역국에 혼술로 조용히 생일을 자축할까?
아님. 친구와 만나 술 한잔 하며 같이 보낼까?
마침 친구가 “생일이면 식사할까?”라고 카톡 했기에 전화했다.

바람은 강하게 불고 약간의 이슬비가 내리는 거리를 걸은 후 전철을 3번 갈아타고 친구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2번째 방문이라 친숙한 장소인데 책상 위로 천 페이지는 되는 두꺼운 책이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에 가까이서 봤더니 한문 공부 교재다. 친구가 공부한 흔적이 남아있는데 대단하다.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에 비해 친구는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시험을 계기로 친구가 펼쳐갈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도 크고 이 공부가 Tuning Point가 되어 새로운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친구는 인천에 거주하는 S밴드 친구들에게 전화한 모양이다. 개인 시정이 있어 참석 못 하지만 G가 온단다. 작년 모임 때 처음 본 처음 보았는데 그녀의 첫인상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수줍음으로 피어나는 꽃, 우리는 곧 그녀의 향기에 취할 것이다’



3명이 앉아 점심을 먹으며 G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는데 내가 보았던 첫인상 모습 그대로다. 조용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고 다가가면 자신을 표현하기에 시간을 가지고 만나면 좋을 친구다.
친구가 “강화도 가자”라고 G에게 동의를 구한다. 속으로 “뭔 소리”했는데 그녀가 강화도가 고향이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셋이 G의 차에 올라 강화도로 출발했다.



글은 콘셉트인데 잠깐 고민하다가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를 생각했다.

1890년대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은행만 전문적으로 털었던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을 조율하는 에타(Etta Place)가 있다. 결말은 슬프지만 영화 속에는 그들이 은행 강도라는 나쁜 놈의 이미지보다 세 사람 간의 사랑, 우정이 화면에 가득하기에 즐거움으로 남은 영화다.
그래, 우리가 은행 강도가 아니라 여행 강도가 되어 셋이서 맛집과 풍경, 바다를 터는 거야.

“좋아, 어울려, 멋있어”라며 스스로에게 취해 글을 이어간다.



오늘 우두머리는 G다(우리는 덤 앤 더머).
그녀는 강화도가 고향이기에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다. (심지어 부동산 가격도 빠삭하게 알고 있다) 동막해변을 지나 일몰의 명소인 강화도 일몰 조망지, 포토 스폿인 스페인 마을,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의 측백나무가 생각나는 커피숍 ‘DORE DORE’의 정원 등을 돌아보며 기억에 남을 시간을 보냈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를 보면
1단계가 먹고, 마시고, 성적인 본능을 충족시키는 본능적 단계고 3단계는 사회적 동물로 어떤 조직에 속하는 것이고 4단계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S밴드 모임의 구성원이 되면서 내 삶에 찾아온 4단계의 행복을 반추해 본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감사하게도 넘치게 받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친구들의 예쁜 모습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넘치는 행복으로 가득 차올랐고, 부족한 글이지만 글쓴이보다 더 정성스럽게 읽고 멘트해 주는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은 좋고 싫음에 대한 감정적 표시가 쉽게 드러나는 못된 성격이지만 S밴드 친구들은 한결같이 들에 핀 야생화처럼 자세히 봐야 보이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첫인상에 혹하는 것보다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교제를 소중히 여기기에 만남을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기록해 놓는다.



김신지 작가의 문장을 좋아한다. 오늘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묻고 그 의미를 기록하는 그녀의 성실한 삶에 매료당하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한 건 하나뿐이야.
네가 지금 행복한지 아닌지. 충분히 너로 사는지. 여전히 주변을 환히 밝히는지. 하지만 무엇보다 빛나는 건 너인지. 내 삶에 남은 행운을 나눠줄 수 있다면 나는 부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김신지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에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때 이기적인 면이 강하기에
“지금 나는 행복한지,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빛나고 있는지”만 자문한다.

그러나 이 단계를 넘어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하는 친구가 있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자신의 생일보다 세일의 생일을 더 많이 축하해 주고 격려해 준 친구들.
오늘 진심으로 세일을 위해 시간과 돈을 나누어준 친구와 G에게 감사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의 얼굴을 만났는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옆에 비어있는 두 자리는 친구와 G를 앉히고 함께 가고 싶다. 오늘 두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으니까.

고마워^^


배경음악은


내일을 향해 쏴라 OST 중에서

B. J. Thomas 의 -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입니다.




https://youtu.be/_VyA2f6hGW4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에 퇴근하는 남자의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