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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y 31. 2023

오늘 기억되는 추억이 행복이다.

'두물머리'에서의 만남

이틀 동안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3일째 아침이 되니까 안개비로 바뀌었다.  

대체휴일인 29일에 친구들과 양수역에서 만나 두물머리를 걷기로 했기에 하늘부터 봤는데

우산 쓰고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를 꼽으라면 성산봉, 남이섬, 두물머리다. 특히 두물머리는 팔당을 지나 양평으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를 좋아했는데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에 마음을 뺏기기 때문이다.   

    

안개비도 그치고 하늘이 개이기에 우산이 필요 없을 것 같아. 백팩 하나만 짊어지고 회사를 나왔다. 12시 약속이기에 지금 가면 10시 30분이면 도착할 것 같다.

“뭘 하지?”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먼저 걷자는 생각을 하고 옥수에서 양수역 전철로 갈아탔다. 예상했던 대로 전철은 노인관광열차 느낌이다. 앞이나 옆 어디를 둘러봐도 원색 등산복을 입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미 경로석도 만석인지라 서서 가야 한다. 이때 본능적으로 "어느 자리가 빌 것인가?"를 예지해야 하는데 모르겠다. 운에 맡기자고 했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앞에 앉은 분이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냉큼 앉았다.


책을 읽으려고 태블릿을 꺼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는 음악이 최고이기에 이어폰을 꺼냈다. 핸드폰에는 클래식, 올드 팝, 재즈, 크로스오버, 영화음악, 가요등으로 분류되어 저장된 곡이 3천5백 곡 정도 되기에 선곡의 재미가 있다.


“여행하는 날이니까 경쾌하고 리듬 있는 곡으로 하자”     

‘Boney M’의 ‘The Greatest Hits’ 앨범이 보인다.


‘Rasputin, Rivers Of Babylon, Daddy Cool, Sunny’ 등 그들의 대표적인 곡들이 들어있기에 살짝 들뜬 마음으로 음악을 들으며 간다. 간간히 발로 리듬을 맞추면서...     


이때 G로부터 톡이 왔다.  

“나도 11시쯤 도착하니까 먼저 보자”

    


양수역에 도착하니까 10시 30분이기에 역 주변을 걷기로 했다. 내 눈에 가장 신기하게 보이는 것은 쫄쫄이 바지에 헬멧을 쓰고 달리는 자전거 동우회 회원들의 모습이다. 나처럼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과는 정반대의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며

“이 더운 날에!~”      


기차역 주변을 돌아보는데 눈에 많이 익은 노란 꽃과 흰꽃이 바람에 날리며 흔들거리고 있다. 네이버 렌즈로 사진을 찍었더니 ‘금계국, 개망초’란다.  

“아하, 좋은 세상”    

 

G가 도착했다.

약 3년 전쯤에 용문에 전원주택을 구입해 혼자 살고 있는 친구다. 몇 번 그의 집을 방문했기에 은근 전원생활에 대한 부러움이 있는데 친구가 말한다. 가족이 서울에 살고 있기에 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이라고 한다. 도시에 있으면 전화 한 통으로 친구와 즉각적 만남을 가질 수 있지만 G가 살고 있는 곳은 하루에 버스가 6대 밖에는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다. 누구와 마음을 내려놓고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의 쓸쓸함은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사람이 보고 싶은 원초적 감정을 좋아한다.

연인일 수도 있고, 가족, 친구, 아니면 요즘처럼 형아나 동생, 누나로 부르는 만남일 수도 있다.누구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개인적인 아픔을 듣는 생활을 오래 했기에 진지하게 오가는 대화를 즐기는 편이다.      

G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참되게 들었다. 나하고 다른 삶을 살아온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다가오는 숙연함이 있다. 친구도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삶을 살았다. 대우(주)에서 오랜 기간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IMF 때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삶의 위기를 맞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선택했는데 사진이다. 고등학교 사진반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카메라가 없기에 거절당했던 아픔부터 직장생활을 하면서 성능 좋은 카메라를 구입했을 때의 기쁨까지. 그 뒤 응모 전에 계속 입상하면서 사진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종양인데 계속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인슐린 조절이 안되어 약으로 버티고 있어”


남의 이야기하는 것처럼 친구는 무심하게 말하지만 아픔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외로움이 더욱 깊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만남의 유일한 여성인 H는 명랑, 상쾌, 발랄이 몸에 배어있는 친구다.

나를 ‘어린 왕자’라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그녀와의 만남은 그래서 재미있다. 그러나 H는 가녀린 외모와는 다르게 투쟁적인 삶을 살아왔다. 민노총에 소속되어 오랜 시간 투쟁의 시간을 보냈던 그녀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바로 얼굴과 기사가 검색될 정도로 투쟁현장에서는 알아주는 여성이었다.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아직도 그녀는 말한다.

“자비를 들여서라도 10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도와주고 싶어”     


12시가 조금 넘자 5명의 친구들이 모여 인근 식당에서 낮술 겸 점심을 먹으면서 웃었다.

같은 세월을 살아왔기에 공감대가 넓은 것이 이 모임의 장점이다.


“이해 범주냐

아니냐”

는 각자의 판단기준이겠지만 자기 세계란 말로 마무리된다.   

    

졸혼을 한 친구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대화의 주제인데

“행동으로 옮길 수 있나?”

는 각자의 몫이다.      

살아온 삶을 인정해 주고 기꺼이 그 삶을 응원해 주는 것이 친구란 생각을 한다.    

  

두물머리를 걷기로 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H가 팔짱을 끼며 친구들에게 말한다.


“나 오늘 세일이하고 손 잡고 걸을 거야!”   

  

웃었다. 내 로망을 알기에 기꺼이 내 편에 서 주는 친구. 그녀가 예쁜 이유다.

손을 잡고 두물머리를 걸었다. G는 작품을 만들겠다며 손 잡고 걷는 두 사람의 모습에 연신 셔터를 누른다.

오지 못한 여친이 카톡에 올려진 사진을 보고   

   

“오십 대 선남선녀가

데이또 잘했네

넘 잘 어울리면 안돼안돼~~돼

ㅋㅋㅋㅋㅋ

넘 보기 좋아라~~~~”     

(근데 어린 왕자가 너무 배가 나온 거라 ㅠ ㅠ)



나이 들어서 인생을 멋지게 사는 분이 있다면 이근후 교수를 꼽고 싶다.

그분이 쓴 책 몇 권을 읽었는데 나이 들어 즐겁게 사는 법에 대한 확실한 지혜를 갖고 계시는데 그중의 하나가 ‘함께’다.      


“나이가 들면 여행이든, 공부든, 봉사든,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좋다. 안 그래도 일상이 단조롭고 행동반경이 줄어들고 인간관계가 협소해지는 시기다. 노년의 삶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외로움이다. 외롭지 않으려면 내가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사람을 찾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이든 함께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 내 인생이 행복한 이유다.


돌아오는 길에 G가 말했다.      

“세일은 영혼이 맑아서 좋아”     

 

집에 돌아와 7줄 일기장을 꺼내어 읽었다.

당시의 즐거웠던 만남이 자세히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은 웃음을 가져온 친구의 이름이 있다. 설렘으로 다가왔던 감정의 소중함. 마주 보며 오갔던 웃음, 카톡에 담긴 마음. 함께 기울였던 술잔 등은 잊을 수 없는 삶의 값진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남은 생은 명예나 돈을 위해 살지 않는다. 오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내 삶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일기장에 친구들의 이름을 적는다.      


배경음악은

김민기의 ‘친구’입니다.   

   

https://youtu.be/siMfVqkTD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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