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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Apr 28. 2023

아침에 퇴근하는 남자의 행복

맥주 한 잔을 통해 얻는 삶의 풍요로움

일주일에 4일은 집에서 홀로 지냈는데 아내가 2주 동안 재택을 하기에 은근히 힘들었다.

라면도 끓이고, 돼지고기찌개도 만들고, 짬뽕도 사주고, 냉커피도 타주며 남편의 의무를 성실히 감당했다.
"없는 것보다 났네!"  

이번 주부터 아내가 출근해 홀로 있기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31살이 된 젊은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된다.
"저는 결혼해도 주말부부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친구의 결혼관이다. 35년 정도를 함께 산 우리 부부도 떨어져 지내고 싶은 생각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 같다. 아내도
"당신은 친구도 없냐? 주말에는 좀 나가라, 나 혼자 있게"라고 대놓고 말한다.



당분간 일주일에 4일 정도는 홀로 있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 더 좋은 것은 중고서적을 9권 주문했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집에 도착하면 자신을 기다리는 책이 있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맥주 구입이다.  좀 싸다는 이유로 지하철역 앞에 있는 GS25를 이용하는데 맥주 8캔을 사서 10분 정도의 언덕길을 오르면 기진맥진한다. (이 때문에 맥주가 더 맛있을 수도 있다….) 오늘도 GS에 들어가 눈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맥주를 바라보며 선택의 즐거움을 누린다. 하지만 요즘은 망설이지 않고 에일 수제 맥주인 ‘광화문, 경복궁, 남산’ 등을 고른다. 할인판매 기간이라 4캔에 만천 원이다. 카스와 하이트로 양분된 맥주 시장에서 수제 맥주 붐이 일어난 것이 몇 년 되지 않지만, 이제는 소규모 크래프트브루어리에서 생산된 다양한 맥주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특히 라거 맥주에만 길들여 있던 소비자에게 에일 맥주는 신세계라 할 수 있다. 오늘도 세일에 현혹되어 8캔을 사 삘삘 거리며 집까지 걷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다가오는 고요함 때문에 벌써 입이 벌어진다. 우선 냉장고에 맥주를 넣고 언박싱의 즐거움을 누린다.  



요즘 김신지, 박연준 작가의 책을 즐겨 읽는다.
중고 책을 9권씩이나 주문한 이유도 김신지 작가의 추천인가? (확실하지 않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을 소개하기에 YES24에 들어가 검색을 했더니 절판이다. 아쉬움 속에 중고서적에서 검색해 보니까 책이 있다. 장바구니에 집어넣고 배송비가 아까워 몇 권 더 주문하기로 한다.   

박연준 작가의 ‘쓰는 기분’을 읽으며 남편이 장석주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급 호기심에 인터뷰 기사를 찾아서 읽었는데 연애사가 재미있다. 박연준 시인이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일 때 장석주 작가가 ‘소설 창작론’을 강의했다고 한다. 학생과 제자로 만났다가 사랑으로 발전이 되었는데 나이 차이가 자그마치 25년이다. 이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글의 힘을 보기 때문이다.   
"네 이름을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 개의 별들이 얼음처럼 부서진다. “     
이렇게 시작된 메일을 받고 박시인이 감동을 해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박연준으로 검색해 보니 결혼할 때 펴낸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가 보인다. 장바구니로….

다음은 남편인 장석주로 검색했더니 ‘예술가와 사물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보이길래 역시 장바구니에 담긴다. 이해인 수녀님, 공지영 작가, 노친네를 위한 책, 영화에 관한 책도 장바구니로 이렇게 9권의 책이 선택되었고 클릭과 동시에 며칠을 설렘으로 기다린다.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말할 때 ‘맥주와 책’이 으뜸인 삶을 사랑한다.

문제는 읽기를 위한 도서구입이 아니라 수집을 위한 책으로 바뀌고 있지만 ”언젠간 읽겠지!! “로 변명한다. 맥주와 책 그리고 홀로 있음이 함께하기에 행복한 날이다.
더군다나 창문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로 비행기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공항 근처에 살고 있기에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은 김포가 주는 선물이다.

사온 맥주는 보이지 않게 짱 박아두고 냉장고에 있던 필스너를 꺼냈다. 라거의 원조로 알려진 체코의 필스너. 쌉쌀한 쓴맛이기에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마실수록 깊은 맛을 느낀다. “카” 소리만 나오는 한국의 라거와는 맛이 다르다. 한 모금 마시고 한 권씩 목차를 흩어본다. 이때의 감정은 책과 연애하는 느낌이기에 기분 좋음으로 다가온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
란 기대감은 연애편지를 뜯을 때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한 잔의 술은 삶을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인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예술은 디오니소스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창조한 것이다. 혹시 자신도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란 착각 때문에 헤매고 있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ㅠ.



집에서 마시는 술이 좋은 이유는 과음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꿈꾸는 삶과 가까워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김신지 작가의 글은 맥주 예찬으로 가득하지만 글에서 언급되는 맥주는 삶의 활력소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은 아니다.  

책맥(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영맥(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본다)
음맥(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수 있는 작은 사치다. 이런 호사는 더 많이 누려도 괜찮지 않을까?

오늘이 행복한 이유는 맥주도, 책도, 홀로 있음도 아니다. 맥주로 인해 만들어진 정서와 감성, 순수가 내 안에서 작동될 때,

맥주 한 잔과 함께
”기억될 수 있는 하루“
를 만드는 것은 내 삶의 소확행이다.      


배경음악은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 입니다.

https://youtu.be/Eoci-dP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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