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인 1954년 7월 21일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서 15년 동안의 내분이 끝을 맺었고 베트남이라 불렸던 나라를 둘로 분리하는 하는 것을 조인했다.’
는 자막이 오르며 영화 ‘인도차이나’는 끝이 나지만 머릿속은 영화를 정리하느라 복잡해진다. 특히 까미유(린 당 팜)은 자신의 삶에 유일한 소망이었던 장 밥띠스뜨(뱅상 페레 분)와의 사이에 낳은 유일한 혈육인 아들 에티엔 마저 버리고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부분이다.
몰락한 안남 황족 출신인 까미유는 식민지의 지주계급을 상징하는 고무농장의 대지주 엘리안느(카트린느 드뇌브)의 양녀로 입양되어 왕족의 딸 다운 대우를 받으며 성장한다. 엘리안느는 까미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며 자신을 이어 고무농장의 주인이 될 것을 기대한다. 실제로 엘리안느는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5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까미유에게
“너를 위해 집과 땅 모두를 남겨 놓았다”
그러나 까미유는 냉정함을 잃지 않은 채 차분하게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프랑스의 지배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상류 사회의 문화, 물질적 풍요로움과 우아한 삶을 살았던 까미유는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며 자신의 조국 베트남의 실상과 민중들의 처절한 삶에 눈뜨기 시작한다. 이제 그녀에게 조국의 독립은 위대한 사명이 되었고 까미유는 기꺼이 여전사로서의 삶을 결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친딸처럼 키워준 양 엄마 엘리안느와 유일한 혈육인 아들 에티엔 마저 떠나야 한다. “과거는 없어요” 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그녀의 얼굴은 단호하지만 아들의 이름을 물어보며 우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내 눈에서도 눈물이 핑 돈다. 엄마에게 자신의 아들과 함께 프랑스로 떠나라고 말하며 그녀는 “인도차이나는 죽었어요”라는 말을 남기며 그들을 떠난다.
인도차이나의 독립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까미유는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 그녀의 결단을 이해하기 위한 제네바 협정은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 이래 구(舊)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는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에서의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호찌민 등의 군대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 간에 인도차이나 전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1954년 5월의 디엔비엔프전에서 프랑스군이 패한 직후에 개최된 상기 제네바 회의에서 본 협정의 조인에 이르러 북위 17도를 군사경계선으로 하는 남북 베트남 분할에 의한 적대행위의 종결과 그 감시체제 등을 정하였다. 본 협정에 의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3국의 독립을 프랑스가 정식으로 승인하여 인도차이나 전쟁은 종료하였으며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네바협정 [Geneva Agreements]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인용
1954년 7월 21일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성취하지만 제네바 협정으로 인해 우리와 똑같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 북쪽은 사회주의로 남쪽은 민주주의로 나뉘며 베트남은 우리나라처럼 통일을 위한 내전에 돌입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것을 두려워해 내전에 개입하게 되는데 어쩜 우리 역사와 꼭 닮았다.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까?
영문도 모른 채 태극기를 흔들며 청량리역에서 월남 파병 군인 아저씨들을 환송했던 기억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이 군인 아저씨들이 위대해 보였는데 베트콩을 죽이고 그 나라를 공산주의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한 파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이익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 정설이 되고 말았다.
영화 ‘인도차이나’를 보는 관점이 다양하겠지만 난 이 영화를 통해 엘리안느와 까미유, 즉 엄마와 딸의 이념적 갈등이 만들어 논 결과물에 감동한다.
두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달랐지만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일 뿐이다. 이 영화를 계급투쟁으로 몰아가는 평에 대해 극단적인 생각이라며 반대하는 것은 이념보다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념보다, 국가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의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감동은 사랑이 만들어낸 결과물에서 나온다.
엄마 엘리안느는 식민지 지배자로서 인도차이나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자신의 부를 만들어 가지만 그리 악독한 여인은 아니다. 아니, 입양한 딸이지만 그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딸의 자유를 인정하며 떠나보낼 줄 안다. 그것이 딸을 위한 가장 소중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까미유는 자신의 안락한 현실을 벗어나 자신이 태어난 나라 민중들의 고달픈 삶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만의 삶을 살아왔던 그녀가 모든 것을 버리고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조국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는 베트남 협상 팀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좋은 영화를 결정하는 조건은 여운에 있다.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영화가 있고 눈요기만으로 남는 영화가 있다. 예전 영화가 그리운 것은 세월을 같이한 배우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카트린느 드뇌브는 우아함과 섹시함의 대명사였다. 소개된 영화는 몇 편 되지 않았지만 ‘세브린느’는 가학적인 성(性)을 주제로 한 영화였기에 보고 싶은 영화 일 순위이었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관람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녀의 모습은 기품과 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여배우다. 이 영화를 명작으로 꼽는 이유 중의 하나도 그녀 때문이다.
또 하나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베트남 하롱베이를 여행을 했을 때 운전기사가 이 지역을 배경으로 인도차이나가 촬영되었기에 버스에서 DVD를 틀어 주었다. 좋은 영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로 보지 않고 집에서 여유롭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하롱베이를 생각했다. 이 영화의 배경이기에 더 기억에 아련히 남아있다.
배경, 여배우, 서사, 음악은 언제나 내가 선택하는 좋은 영화의 조건인데 이 영화는 음악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 1순위로 다가오는데 기회가 된다면 영화 ‘인도차이나’를 함께 보며 수다 떠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