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가져도 좋은 것은?

여행. 친구와 가족

by 이세일

1. 여행 – 어딘가 허술한 남자


삶의 주도권은 언제나 아내가 가지고 있다.

”1박 2일 목포 여행 가자“며 아내가 기차표 예매하라고 하기에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매를 확인했는데 거의 매진이다. 바쁘게 승차권을 끊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출발하기 20분 전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다. 버거킹에 들러 햄버거와 커피 한 잔을 맛있게 먹고 개찰구 앞으로 갔는데 8시 22분발 목포행 열차가 보이지 않는다. “뭐지?”라며 열차표를 확인하는 순간 출발역이 용산이다. ㅠ

순간 마누라 눈치를 보며

”출발역이 용산이야“

아내가 남편을 향해 즐겨 쓰는 말

”당신은 어떻게 한결같이 써먹으려고 하면 평생 도움이 안 될까?“


또 이 한 소리하며 낙심하는 아내의 표정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부드럽다. “어떻게 하지?”라며 이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기에 마침 옆에 승무원분이 있으시기에 사정을 말씀드렸다.

”우선 열차표 취소하세요. 만원 정도 위약금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미 오늘 열차는 다 매진되었기에 확신할 수 없지만 용산역에서 발권을 해보세요!“

”고맙습니다“을 두 번이나 씩씩하게 외치고 아내와 용산역 지하철을 탔다. 창구에 가서

”목포행 가장 빠른 열차를 탈 수 있을까요?“

”10시 42분 열차가 있는데 특실밖에 좌석이 없습니다. 가격은 14만 7천8백 원입니다. “


”다행이다“을 연발하며 아내에게

”당신 오늘 호강시켜줄게. 특실 예매했어“

라며 비굴하게 아내 앞에서 실실거렸다. 우선 목포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 전화로 사정을 말하고 1시 10분 도착이라고 했다. 처음 타보는 특실은 조금 비싸지만, 일반실보다 한결 편하다(나도 슬슬 돈의 위력에 물들기 시작한다. ㅠ) 호남선은 언제나 창밖의 풍경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드는데 개발에서 소외된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친구 – 갈수록 소중함을 더하는 남자


목포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나서는데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20대 시절에는 나보다 훨 무게가 많이 나가는 친구였으나 지금은 호리호리해졌다. 반대로 나는 늘고 또 늘어 뚱땡이가 되고 말았다. 아마 5년 만에 만나는 모양이다. 1주일에 1번. 1시간 정도는 늘 통화 하기에 오래 만나지 못해도 떨어져 있는 느낌이 없는데 아내들끼리는 20년 넘게 안 만났기에 반갑게 인사한다.

”횟집 예약해 놓았으니까 점심부터 먹자“

친구가 북항 쪽으로 차를 몰았다.

대학 동창인 친구는 해남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올해가 20년째다. 농담으로 ”원로 목사 될 자격이 있네” 그만큼 세월이 많이 지났다. 가끔 시골 생활의 무료함에 관해 이야기하는 친구의 아픔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만 남아 있는 시골을 지키며 그분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바른 목회자란 생각을 한다.

항구 앞에 있는 횟집에는 관광차들이 몇 대 서있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층으로 올라와 앉으니 햇살이 눈 부실 정도로 환하게 비춘다. 전라도답게 곁들이 안주가 상을 덮는다. 우리 나이엔 만나면 자녀와 건강 이야기가 핵심이다. 장가를 가지 않겠다던 친구는 8년 연하의 아내를 맞이했다. 나는 7년인데 (이때만 해도 목사에게 눈먼 처녀들이 많았다. ㅎㅎ)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했지만 3명의 자녀가 있고 지금은 모든 부모가 부러워할 직장을 다니고 있기에 “하나님의 은혜”라며 친구가 말한다.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다. 점심을 먹고 친구와 함께 갓바위를 걸었다. 이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바위를 보며 우리의 삶도 저렇게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누는 대화도 앞날의 꿈보다는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에 집중된다. 내일도 함께하고 싶지만, 주일이기에 예배가 있어 동행할 수 없음을 아쉬워한다. 저녁에 간식으로 먹으라며 친구는 목포의 유명한 빵집에 들러 빵을 사준다.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긴 세월을 함께 했고 함께 할 친구가 있음에 감사한다.


3. 아내 – 갈수록 미안함이 커지는 여자


저녁을 먹은 후 아내가 유달산 조각공원을 걷자고 한다. 둘이 숙소를 나와 한적한 길을 걸어 조각공원에 도착했는데 조명으로 장식된 공원의 모습이 화려하다. 아내는 소녀처럼 이곳저곳에서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난 열심히 찍지만, 아내는 한 번도 내가 찍어준 사진에 만족한 적이 없다. 자신의 얼굴이야 세월의 흔적 때문에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지라 항상 구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 배경을 살려야 사진이 살지“

삶에 대한 주도권을 양보한 지 오래된지라 ”알았어”라며 다시 한 장을 찍어내지만, 아내의 만족도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캔맥주와 몇 가지 마른안주를 샀다. 숙소는 100년이 넘은 한옥이기에 운치는 좋은데 춥다. 아내와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살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때 아내는 1주일을 울더니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아이 둘을 훌륭하게 키워놓았고 딸아이는 작년에 시집을 갔다. 아내하고 보내는 시간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주말이면 아들과 함께 맥주 몇 캔을 놓고 살아온 것에 대해 복기(復棋)를 해보는 것이다. 역시 결론은 ”하나님의 은혜야!“

아내는 23살 어린 나이에 나를 만났다. 유일하게 ”내가 좋다“며 사랑 고백을 했던 여자(물론 본인은 아니라고 한다)는


”너무 거룩한 사람이기에 그림자밟기도 어려운 사람이에요“

라며 존경을 표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큰소리치며 살고 있다. 둘이 있을 때는 결연하게 주도권을 주장하지만 3명만 되어도 아내는 조신한 자세로 남편을 세워준다.(이 2중성이 나쁘지 않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사랑’이라고 했다. 이 사상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기에 성경을 찾아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로 시작해

‘견디느니라’ 로 끝이 난다.

사랑이 쉽지 않은 것은 자신의 희생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 좋은 이유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 친구, 가족은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어도 좋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가 좋다니 ㅋㅋ

나훈아의 '사랑'입니다


https://youtu.be/aTue-cEOf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