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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May 02. 2023

너의 반창꼬가 되어 줄게

영화 '반창꼬' 리뷰

고등학교 때는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친해진 친구가 있다. 조그만 사업을 하기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그는 언제나 나를 불러내 1주일에 두 세 밥 사는 고마운 친군데 나를 부끄럽게 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공원에 나가면 많은 할아버지들이 효도 라디오라 불리는 휴대용 mp3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귀는 생각지도 않은 채 할아버지들만 즐겁다. 때로는 음악에 맞춰 춤까지 추는 모습을 보며 “난 늙으면 절대로 저런 행동은 절대로 삼가야지”란 다짐을 하는데 내 친구가 요즘 이 할아버지와 정말 닮았다. 어느 날 빨간색 효도 라디오를 내 앞에 턱 내놓으며 “나 요즘 이 노래에 빠졌어”라는 것이 아닌가?
“내 나이가 어때서, 안동역에서” 이란다. 그것도 반복하기 버튼을 누르며 열심히 들으며 따라 부른다. “야, 남들이 듣는다.”며 볼륨 낮추라고 채근하지만 “친구야, 이제 우리가 남 의식할 나이는 아니잖니?” 그러나 이 친구 옆에 있으면 난 쪽 팔린다…….ㅋㅋ


“그럼 너는?”
“난 아직도 품격, 고상, 분위기를 중시 여기지, 책, 영화, 음악은 내 인생을 지탱하는 3요소야!!”
이 고상함 때문에 아직도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그리움, 상처, 아픈 사랑, 등을 적당히 넣은 OST를 들으며 자신에게도 이런 사랑이 찾아올 것을 꿈꾸고 있다면 나도 올바른 정신은 아니다…….ㅠㅠ 그렇다면 친구가 좋아하는 “내  나이가 어때서”는 정작 내가 좋아하고 부를 곡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런 가사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이제 자신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지 않기에 사랑은 언제나 환상적인 모습만 가지고 있다. 비록 화면이지만 로맨틱 영화 속의 여주는 늘 천사 수준의 외모와 착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주의 울음은 가슴속으로 스며들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상처는 연민으로 다가 오기에 마음은 남주보다 더 그녀를 향해 열려있다. 영화 속의 여주와 완벽한 한 마음이 되어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이유다. 그러기에 이런 장르의 영화를 보며 작품의 완성도를 따지거나 주인공의 심리를 분석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코미디가 된다는 생각을 한다. 분석할 영화가 있고, 입 벌리고 헤벌레 웃으며 봐야 할 영화가 있는데 ‘반창꼬’는 후자에 딱 어울린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여주 한효주의 힘이 크다. 시인 서정주는 그의 시 ‘자화상’에서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이 영화도 8할은 한효주의 힘이다. 물론 남자니까 그렇겠지! 아마 여성 관객들은 8할이 남주 고수의 힘이라고 말할 수 도 있겠다.^^ 자신과 함께 살을 섞으며 사는 현실적인 여자를 벗어나 2시간 동안 예쁘고, 착하고, 환한 미소의 여자와 함께 하는 데이트를 싫어 할 남자가 누가 있겠어?



더군다나 미수(한효주)는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예쁘지, 섹시하지, 스펙 빵빵하지! 지깟게 날 왜 거절해?”


누가 이 귀엽고 예쁘고 착한 여자를 거절하겠어, 바보 아냐!!


이 영화의 압권은 미수가 강일(고수)에게 대놓고 내놓고 연애하자고 대시하다가 퇴짜를 맞은 후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잠수대교 난관에 서 있다가 미끄러질 때다. 강일이 놀라 간신히 그녀의 두 다리를 붙잡지만 미수의 치마는 홀랑 뒤집혀 그녀의 으뜸 가리개가 다 보이는 장면이다.


“보지 마, 보지 마” 다급하게 소리 지르는 그녀를 보며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마당에 그게 문제야” 고수의 대답
“나에겐 그게 문제야”


사랑하게 될 남자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미수를 보면 그들의 사랑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 봤으니까. 책임져야지^^”
이 장면 보면서 많이 웃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니까 심지어 돌려보기도 했으니까…….ㅎㅎ^^. 누가 저렇게 귀여운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어.



사랑하게 될 남자를 향한 무한 질주와 함께 동반되는 그녀의 푼수기, 남자 같은 털털한 성격, 그리고 의사답지 않은 단순 무식함과 함께 그녀의 필살기인 애교, 그녀가 하는 욕도 사랑스럽고 귀엽게 들린다면 이 영화를 통해 많은 남성들은 대리만족을 얻고 그날 밤 잠자리에서는 필히 꿈속에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리라.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터 드러나는 미수와 강일의 상처는 두 사람의 사랑이 필연이 되는 이유다. 어렸을 때 집에는 가정상비약으로 늘 아까징기라 불리던 빨간약과 반창고가 있었다. 밖에서 놀다 넘어져 피가 나면 엄마는 언제나 빨간약을 바른 후 그 위에 반창고를 붙여 주셨다.



사랑은 언제나 첫인상으로 시작되지만 그 사랑을 연결시키는 것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알 때다. “이 사람에겐 내가 필요해” 한 사람을 향한 연민은 그가 가지고 있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줄 때 완성된다. 엄마는 언제나 빨간약을 상처에 바르면서 “후” 하는 소리와 함께 상처에 바람을 보냈다.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 이유다. 로맨틱 영화의 장점이 많이 있겠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을 예쁘고 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 왜냐하면 마음이 정화되며 자신의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을 알려주니까.......


안도현 시인은 그의 시 ‘연탄 한 장’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화려함이나 거창함은 아니다. 연탄 한 장이나 반창고와 같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값싼 것들이지만 감동이 되는 이유는 자기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짜증 나고, 사는 것이 별 재미없고 갈라진 논처럼 마음이 타들어 간다면 기필코 로맨스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 세상은 아직도 설레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ㅎㅎ


배경음악은


반창꼬 OST 중에서

NOEL(노을)의 'LOVE 911'입니다.


https://youtu.be/HVhm10m8q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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