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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Apr 27. 2023

사랑은 그리움 때문에 애달프고 아프다.

영화 '어톤먼트' 리뷰

20대 시절 허리우드 영화는 20세기 폭스사를 비롯해 유니버설, 콜롬비아, 파라마운드, 워너브라더스의 로고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영화사들의 만나기 지 않은 것을 보면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친숙한 로고가 있는데 영국의 ‘Working Title Films’이다. ‘프렌치 키스,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어리, 오만과 편견’ 등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로맨스 영화의 최고봉으로 기억되고 있다. 화면이 시작되며 워킹 타이틀의 로고만 보여도 가슴이 뛰는 것을 보면 이들의 작품에 충성도가 높은 관객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톤먼트’에 대한 기대감은 ‘워킹 타이틀’의 제작과 이 회사의 대표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라 이틀리가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된다.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 되었기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타자기 소리가 들리며 영화는 어둠 속을 나오며 화려하고 격조 높은 영국의 대저택을 보여준다. 배경음악의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긴박함을 가지고 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오빠를 위해 연극 대본을 완성한 열세 살 소녀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는 자기 집 정원사의 아들인 로비(제임스 매커보이)를 좋아한다.

그 나이에 무슨 사랑의 감정일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이의 감정은 너무 강렬하기에 비극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아이에게 연적이 있는데 언니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로비와 세실리아는 다투는 것 같더니 언니는 속옷 차림으로 분수 속으로 뛰어 들어가 화병 조각을 들고 나온다. 이때 젖은 몸 때문에 그녀의 나신이 드러나고 로비는 애써 그 모습을 외면한다. 브라이오니도 그 광경을 보고 화들 짝 놀란다. 자신이 좋아하는 '로비' 앞에서 나신을 들어낼 정도로 언니 세실리아가 옷을 벗는 장면을 보며 아이는 상처를 받는다. 이때 창문에서 윙윙 소리를 내며 출구를 찾고 있는 벌을 본 그녀는 단숨에 제압해 버린다.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저 벌처럼 생명을 잃을 것이란 암시를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 서재에서 언니와 로비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브라이오니는 망연자실해하고 질투의 감정은 분노로 변한다. 저녁 시간 롤라의 쌍둥이 동생이 가출선언을 하고 집 밖으로 사라진 것을 안 저택의 사람들은 정원을 수색한다. 이때 브라이오니는 롤라가 어떤 남자와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다. 롤라는 어린 나이에 낯선 남자와 정사를 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강간이라고 둘러대고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그 남자를 봤다며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졸지에 강간범으로 몰리고 감옥에 수감된 로비. 단 한번뿐이었기에 더욱 뜨겁게 남아있을 사랑, 상대방의 체온이 식기도 전에 사랑은 이별로 파국을 맞는다.

몇 년 후 로비가 감옥에 있을 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사랑은 그리움 때문에 애달프고 아프다.
전쟁 속에서도 로비의 마음은 세실리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타오르고 세실리아는 로비를 찾기 위해 간호사로 지원한다. 영화의 중반부는 이들의 애달픈 사랑이 화면을 채우는데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식당에서 두 사람이 재회할 때 로비에게 커피를 타주며 설탕을 몇 스푼 넣었는지 잊어버렸다고 할 때 짤막하게 2스푼이라고 말하는 로비의 표정 속에서 세실이아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서운함이 표출된다. 로비의 손을 잡는 세실리아. 그러나 그는 살짝 눈물을 머금으며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거부한다. 30분밖에 허락되지 않은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헤어짐에 대한 진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버스를 타고 돌아서는 그녀를 향해 로비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버스를 뒤 쫓지만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어톤먼트’ 에는 아픈 사랑의 장면들로 채워지기에 감정이입이 깊어진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전쟁의 폭력으로 인해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5분 30초 동안의 전쟁신은 일체의 편집 없이 롱 테이크로 찍었다고 한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하염없이 로비를 기다리는 세실리아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다시 돌아갈 거야”

라는 로비의 독백이 공허하게 들린다.

“그녀와 다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치욕 없이 살 거야.”

그러나 로비의 염원과는 달리 전쟁의 참혹한 장면이 이어지며 불가능함을 사실적인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폭격을 맞아 불타버린 공장의 모습, 30만 이상의 장병이 죽었지만 이 해변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병사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고 로니는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로비를 향한 브라이오니의 마음을 보면서 성경 속의 ‘세례 요한과 헤로디아의 딸’ 이 생각난 것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탐욕과 욕망을 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살로메란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통해 세례 요한과 헤로디아의 딸과의 관계를 욕망적인 사랑으로 만들었다. 세례 요한을 사랑했으나 그의 냉정한 거부로 모욕을 느꼈던 살로메. 그녀는 자신의 욕망과 복수를 위해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하고 그의 입술에 입 맞췄다고 하는 유명한 왜곡된 사랑 이야기,

어쩜 브라이오니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만큼 탐욕적인 사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는 대상이기에 더욱 질투와 분노로 표출된 사랑은 비극을 잉태하고 전쟁은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 사살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은 너무 순수하고 비극적이기에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13살 때의 질투로 인해 한평생 속죄의 길을 가는 브라이오니의 모습을 보면서 측은함으로 그녀를 보는 것은 영화의 제목처럼 어톤먼트(속죄)에 대한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루어진 사랑보다 비극적인 사랑이 더 여운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영악한 아이의 비뚤어진 욕망과 광기 어린 전쟁은 가슴 아픈 사랑의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에게 이런 사랑이 있었다면 비극이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미학(美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에 언제나 인간의 마음은 이중적이다. 미학적 관점을 길러주는 사랑의 교과서로 다가오기에 이 영화는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배경음악은

'어톤먼트' ost 중에서
Lewis Capaldi(루이스 카팔디) - Before You Go(사랑하는 이가 떠날 때)
입니다.

https://youtu.be/hgHR7pgE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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