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이 남긴 업적을 흠모하고 추종하는 삶을 배우기 위해 어렸을 때 의무적으로 위인전을 읽었다. 책은 낡았고 이미 많은 아이들의 손을 거쳤기에 찢어지고 곰팡이 냄새도 났지만 선생님의 칭찬 때문에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위인들은 한결같이 범상치 않은 사람의 탄생을 알리는 태몽이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제는 탄생신화가 허구에 가까운 창작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동은 사라지고 있지만 반대로 “사생활이나 성격, 인품이 평균치도 안 되는 사람들도 위인이라 불려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차반 인생을 산 사람들도 있다. 특히 예술분야 쪽의 위인들은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한다면 대부분 교도소에 집어넣고 콩밥을 먹여야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르며 “예술하는 사람은 달라.” 라며 면죄부를 준다. 요즘 본 몇 편의 인물 영화를 보고 느낀 결론이다. 우리 시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그들의 연애나 사랑은 선각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혼전 동거는 보통이고 상대를 수없이 바꾸는 카멜레온의 모습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현실 속에서 자유로운 남녀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사랑일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을 보면 영화 ‘모딜리아니’ 속에 나타난 사랑은 슬프고 비극적이지만 깊이만큼은 다르다. 한 남자 모딜리아니를 향한 진정한 순애보가 화면 가득 넘치기에 사랑앓이를 할 정도로 영화는 진정한 사랑의 깊이와 애절함, 아픔, 아름다움, 희생을 보여준다.
조각 같은 외모로 뭇 여성을 홀린 바람기 넘치는 화가. 천재적이지만 광기를 가졌고 그러기에 인생이 불행했던 화가. 알코올과 마약중독. 폐결핵으로 인해 36살의 짧은 인생을 살았던 화가. 그렇지만 그 옆에 한 여인 잔느 에뷰테른으로 인해 행복을 찾은 화가. 그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다.
영화 속에는 이런 그의 모습들이 순간순간 드러나기에 영화는 매력 있는 전개가 지속된다. 영화의 첫 장면. 배경음악은 서정적이고 차분하다. 이때 잔느 에뷰트론(엘자 질버스테인)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사랑이 뭔지 아나요? 진정한 사랑 그런 사랑을 해보셨나요? 영원히 비난받아야 할 그런 사랑을 요. 난 했죠?“
자신에게는 절실하고 진정한 사랑이었지만 그 시대의 도덕으로는 영원히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사랑을 우리는 흔히 불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사랑은 불륜은 아니다. 그녀는 18살의 어린 학생이었고 남자는 자신보다 14살이나 많은 바람둥이였기에 수많은 여자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총각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왜 이들의 사랑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것은 가톨릭 신자인 잔느가 어린 나이에 혼전 출산을 했고, 모딜리아니(앤디 가르시아)는 유태교를 가지고 있기에 종교적인 갈등도 있고 특히 잔느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모딜리아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아빠로 책임지는 삶이 싫었기에 기회만 되면 잔느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나쁜 남자의 대명사로 부족하지 않은 모딜리아니의 모습을 보면 잔느 혼자 아픈 사랑을 했는지도 모른다. 술과 담배와 마약, 쾌락, 그리고 예술로 상징되는 1919년의 파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술가인 모딜리아니, 피카소, 디에고 리베라, 앙드레 살몽 등이 모여 보헤미안의 삶을 즐기며 창작열에 불타고 있었다. 언제나 이들 모임의 중심에 있던 모딜리아니는 술과 마약에 절어 반쯤 포기한 인생을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스케치를 공부하고 있는 미술 학생들의 모임에서 잔느 에뷰트론를 만난다.
대책 없는 사랑일수록 운명적으로 포장하기 쉬운데 이들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쉽게 시작된 사랑은 잔느와 동거로 이어지고 18살의 어린 소녀는 출산을 하기에 이른다. 지금 시대도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수군거림이 심한데 그 당시는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에 가난은 잔느가 겪는 가장 심한 고통이다. 더군다나 잔느의 아버지는 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기에 버린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모딜리아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기에 나쁜 남자를 남편으로 만들고 결혼하기에 이른다. 또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 지오바나는 사랑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 행복도 잠깐이다.
1920년 1월, 모딜리아니는 신장염과 뇌결핵으로 파리의 자선병원에 입원하고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 24일 만에 이 세상을 떠난다. 뒤늦게 잔느의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인 모딜리아니는 행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의 슬픔은 지속적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잔느는 뱃속에 있는 8개월 된 아이에게 용서를 빌며 그다음 날 부모의 집에서 투신한다.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남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 합장한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무덤 -
하루를 사이에 두고 죽음을 맞이한 두 사람의 장례식은 함께 열리지 못했지만 후에 모딜리아니 집안의 간청으로 페르 라쉐즈의 묘지에 합장했다고 한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화가.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출생, 1920년 1월 24일 파리에서 사망. 막 영광을 움켜쥐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잔느 에뷔테른. 1898년 4월 6일 파리에서 출생. 1920년 1월 25일 파리에서 사망. 목숨까지 바친 헌신적인 동반자.‘
모딜리아니는 고흐처럼 살아생전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후에 인정을 받았고 잔느는 목숨까지 바쳐 헌신적으로 그를 사랑했다. 그녀가 없었으면 모딜리아니라는 이름은 역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 속의 사랑은 온통 슬픔과 아픔으로 채색되지만 잔느의 사랑은 모딜리아니에게 영감을 주어 천재적 화가로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헌신과 희생이 화면 가득 넘치기에 이 영화는 모딜리아니보다 잔느의 사랑이야기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예전엔 “목숨보다 귀한 사랑”이라는 말을 썼지만 우리 시대는 이제 쿨한 사랑에 익숙하다. 쉽게 만나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사랑에 익숙하기에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사랑은 그 깊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으로 인해 우리 시대 사랑의 교본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한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자신을 정화시키고 싶다면 ‘모딜리아니’는 가슴을 울리는 영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돌아볼 수도 있다. 이정하 시인의 시 한 구절 생각난다.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배경음악은 '모딜리아니' OST 중에서 Al Bano and Romina Power - Liberta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애절함은 다가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