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의 나이로 충분한 인생이 있다
영화 '라밤바' 리뷰
라디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그 시대를 대표하는 DJ를 꼽으라면 ‘두 시의 데이트’의 김기덕과 ‘팝스 다이얼’의 김광한이라고 할 수 있다. 김기덕은 그 후 97년부터 골든디스크 김기덕 입니다를, 김광한은 99년부터 추억의 골든팝스를 진행하게 된다. 연말이 되면 이 프로는 청취자들이 보내온 신청곡을 집계해 청취자가 좋아하는 이 시대의 팝 100선, 20C 최고의 영화음악 100선을 선정해 노래들을 들려주곤 했던 기억이 있다. ‘La Bamba’가 20C 최고의 영화음악 100선에서 85위에 오른 것을 보면 그 당시 이 노래가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노래를 부른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의 나이가 고작 17살이라는 것이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 타는 것을 극히 꺼렸던 발렌스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집으로 전화를 한다. 엄마가 교회에 갔기에 대신 전화를 받은 형 밥과의 통화에서 진한 외로움이 묻어난다.
“나도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원하는 걸 다할 수는 없지? 난 정말 가족이 그리워”
형을 향해 발레스는 많은 말들을 쏟아낸 후 전화를 끊고 운다. 가슴이 짠해지는 장면이다. 어린 나이에 얻은 명예와 부는 그의 인생을 흔히 말하는 스타로 만들었으나 17살의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진한 외로움이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사랑했던 어머니나 여자 친구 도나, 아니 형이나 매니저라도 있었으면 그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리라.
1959년 2월 3일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악천후였지만 다음 공연지로 떠나기 위해 소형 전세 경비행기는 아이오와 클레오 레이크를 이륙한다. 하늘을 날던 비행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 사고를 일으키고 만다. 비행기에는 22살의 바비 홀리, 17살의 리치 발렌스, 29살의 JP 리처드슨이 타고 있었다. 신예 Rack & Roll로 가수로 촉망받던 3 사람의 젊은 청춘이 전설 속의 인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순간 피었다가 한 순간에 떨어지는 봄꽃처럼 짧은 인생을 살았던 그를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에 무슨 감동이 있을 것인가? 란 생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영화 속에는 보통 사람이 살았던 삶의 모습이 절인 배추에 속을 넣은 것처럼 골고루 배어 있다. 북(北)캘리포니아의 이민촌에서 과일을 따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멕시코계 소년 리치의 힘든 삶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그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로큰롤 스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부모의 직업에 따라 대학도 결정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이런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다는 자괴감을 먹고사는 아이들은 1950년대이기에 우리의 현실과 어긋난다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삶은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진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중의 하나가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주 적은 숫자에 불과하겠지만 꿈을 이룬 사람은 분명 우리 시대에도 존재하기 마련이고…….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는 찾아오는 법이다. 리치는 카우보이 칼라스라는 작은 클럽에서 로큰롤을 노래한다.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그의 노래는 델파이 레코드 사장인 발킨을 만나게 되고 드디어 싱글 앨범 ‘컴온 넷츠고’를 발매한다. 이 노래는 총알처럼 빠른 반응을 일으키고 유명세를 탄 리치는 룸메이트인 도나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멕시코계 가난한 소년에 불과한 리치와의 사랑을 반대한다. 17살의 나이라면 누구나 첫사랑을 할 나이다. 짝사랑이나 풋사랑에 불과할 수 도 있지만 처음 찾아온 사랑의 열병은 예방주사를 맞은 후 찾아오는 미열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도나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질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지고 그 사랑은 ‘Donna’라는 명곡을 만들어 낸다.
밤이 깊은 시간 전화박스 속에서 기타를 치며 리치는 그녀를 위해 이곡을 노래하는데 〈Donna〉는 1958년 12월 15부터 18주간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리고 리치의 대표곡인 ‘La Bamba’는 영화 개봉 당시 큰 인기를 끌면서 1959년 1월 19일부터 8주간 상위권을 차지한다.
성공하면 반드시 엄마에게 집을 사주겠다고 했던 리치는 그 약속을 지킨다. 눈을 가렸던 어머니의 눈이 떠지자 그 앞에 그림 같이 예쁜 집이 드러난다. 활짝 웃는 엄마의 미소가 정말 인상적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가지고 싶어 하는 미소를 보며 부러움이 드는 것은 자녀를 통한 부모의 행복을 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렇게 17살의 착한 소년이 이룬 꿈을 통해 찾아온 행복이 전의 되기에 마음을 편하게 한다. 물론 리치가 살아서 더 좋은 노래를 많이 남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가 살아온 17살의 삶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의 짧은 인생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은 소중한 삶의 가치를 배우기 때문이다. 특별히 17살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있다. 시대는 변한다 할지라도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중에 가장 귀한 것. 누구나 꿈꿀 수 있고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면 이 영화는 소중함으로 남는다.
배경 음악은 영화 '라밤바' OST 중에서 ‘La Bamba & We Belong Together’입니다.
쉼이 있는 시간에 어깨를 살짝 흔드는 것도 좋겠군요!!